가난한 처지가 똑같은 남자에게 동정심을 느껴 결혼을 하게 된 여자는 바람을 피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착하고 성실한 남편에게 말한다. 그러나 남편은 반응이 없다. 아내는 용서를 구하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알리는 고백을 한 것이다. 남편은 자꾸 말을 거는 아내에게 수면제를 몰래 먹인다. 이 사실을 안 여자는 남편을 죽인다. 단지 자기 몰래 수면제를 먹였다는 사실이 화를 나게 한 것이다. 그리고 10년 후 동거 생활을 하는 박창수가 자꾸 술을 먹고 사고를 치자 수면제를 먹여 재운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를 두려워 한다.
영화 "마이 시스터 키퍼"에서 언니의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태어난 맞춤형 동생이 자기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더 이상 언니를 위해 수술대에 오르지 않겠다고 부모를 고소한다. 11살 소녀의 당돌하고 어찌 보면 이기적인 모습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니 언니를 위해 태어난 부분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에 충분히 고통스러운 부분인데 본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오로지 언니를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맞는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영화 속에서는 언니가 가족의 희생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어린 동생에게 시킨 일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부모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재판 결론이 나온다.
자기 결정권은 대단히 중요하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권리이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좁은 의미로 음식을 선택할 때도, 넒은 의미로 직업을 선택할 때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이 부분이 틀어지거나 무시당하면 모든 갈등의 원인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결국에는 네가 결정을 했다고 말하는 부분도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경우이다. 나의 인생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인생도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도 자기결정권이 결여된 금기로 가득한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등바등 절약을 하며 살아온 엄마의 인생도 금기로 가득 찬 인생이었다. 여자라는 울타리 속에서 우리는 웃고 울었다. 끈이 없어진 지금 엄마의 금기와 나의 금기를 벗어던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