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생장피에드포르트
엉덩이에 뿔나겠다. 1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내리자마자 버스를 10시간이나 타다니, 난생처음으로 엉덩이에 뿔이 나고 있다. 절대 야간 버스 탑승을 권하지 않는다. 몸이 극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드골 공항에서 타는 사람은 적었다. Bercy에서 많은 사람들이 탔다. 선혜 씨와 혜지 씨는 흑인 언니들이 무서웠다고 한다. 나는 봉사하는 난민 듀니즈와 후손이 생각났다. 듀니즈도 무섭게 나온 자신의 사진을 카톡 프로필에 올렸다. 누가 보면 주먹 쓰는 사람인 줄 알 거다. 실상은 착하고 예쁜 청춘이다. 나는 안 쫄았다며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깜깜한 밤 여기저기 코 고는 소리, 색색 숨소리가 들린다. 더불어 쩌든 담배냄새까지. 자다 깨다 반복을 하는 중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외국어 소리에 눈을 떴다. 옆좌석 수다쟁이 아저씨가 영상통화를 한다. 진짜 쉴 수 없이 말한다. 게다가 쓰윽, 쩝 추임새도 넣는다. 아이팟을 끼고 백색 소음을 틀었다. 데이터가 훅 줄어들어 다시 껐다. 휴게소에서 내려 수다쟁이 아저씨 흉을 봤다. 그는 아침에는 다리를 쭉 뻗고 고이 잠들었다. 남자들 사이 맨 뒷좌석에 동양인 여성이 있다. 휴게소에서 산티아고 가세요? 물었다. 대만인이다. 낯을 무척 가린다. 와, 근데 혼자 온 강자다. 바욘에서 이틀 머물 거란다. 같이 밥을 먹자고 해도 사양한다. 우리는 셋인데 그가 참 외로워 보였다. 나는 이렇게 외국인과 한국사람을 빨리 사귀긴 처음이다. 낯선 곳이 나에게 용기를 주나 보다. 두 명도 바욘에서 하루 머문다고 한다. 이제 나 혼자가 되었다. 참 나는 혼자 여행 왔지? 잠시 까먹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녁 버스에서 창문 밖 봄 풍경을 보며 아름답다, 행복하다는 말을 수십 번 했다. 이제야 우리 각자는 여행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면서 타인의 존재가 느껴진다. 헤어지고 나 혼자 12시 35분에 생장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동양인이 없다. 외국인과 눈이 마주쳐서 미소를 짓었다. 어디서 왔냐, 서로의 이름을 물었다. 근데 갑자기 훅 솔로냐고 묻는다. 남편, 아들, 딸, 반려견도 있다고 했다. 자신은 솔로란다. 나는 진심으로 really?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주름진 얼굴이 수상해 보였다. 반갑다며 악수를 하고는 자기 자리에 앉는다. 나이, 직업 등을 묻는 것도 무례한 건데 저 사람은 미쳤다. 나는 풍경 사진 찍기 바쁘다. 그리고 그를 나쁜 사람이라 단정 짓는다. 혼자 온 여자를 쉽게 보면 큰코다친다.
드디어 1시 40분 생장에 도착했다. 혼자 있으니 좀 여유가 생겼다. 폭풍이 한바탕 지나간 기분이다. 제자리로 돌아온 나는 순례자 사무실에서 크레덴셜을 받고 미국인 할머니, 독일 아저씨, 알래스카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못 알아듣는 영어를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자 계속 말을 건다. 샤워하고 빨래하고 동네 마실을 나왔다. 까르푸에서 먹을거리를 샀다. 여기는 봄의 동화 마을이다. 성곽은 우리나라 돌성곽과 비슷하다. 가까이서 보니 창문에 나무덧문을 달았다. 와, 중세인 줄. 옛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꽃이 만발하는 봄이다. 내일을 위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만 산책을 했다. 성당 같은 곳도 들어가고 서점도 보고 예쁜 꽃 사진도 찍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잔 이틀이다. 이제야 잠이 쏟아진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