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탄의 만타
환상적인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들. 그 위로 떠오르는 햇빛. 하늘에서 바라보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천국 같았다. 엘니도는 필리핀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공항에서 내리자 우릴 기다리고 있던 건 뚝뚝 기사들이었다. 포장이 잘 안 되어 있는 시골길을 뚝뚝에 짐과 몸을 싣고 툴툴툴 달려갔다. 엘니도는 투어 코스가 다양할 만큼 많은 섬들이 있었고, 각기 매력이 달랐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사로 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시발탄이요?”
“네, 섬 맞은 편인데 차로 2~30분 거리에요. 물놀이 하기엔 최고에요. 관광객이 많이 없어서 정말 좋아요.”
우리에게 투어를 소개해 준 한국인 사장님은 우리가 다이빙을 좋아한다는 걸 알자 더 은밀하고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을 소개해주었다.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예약할래요!”
우린 엘니도 투어도 기대됐지만 시발탄이 더욱 궁금했다. 이미 관광객이 많은 곳은 한적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없을 때가 태반이고, 사람들의 손때가 타지 않은 곳의 바다가 훨씬 아름다워 다이빙을 하기에 더욱 좋기 때문이다. 우린 엘니도 투어 일정 중간에 시발탄 다이빙을 포함시켰다.
시발탄 가는 날 아침, 우리를 실을 밴 한 대가 숙소 앞에 섰다. 오리발과 다이빙 마스크, 수영복 등 물놀이 용품을 챙긴 우린 설레는 마음으로 밴에 올라탔다. 시발탄 가는 길은 한적했다. 보이는 거라곤 오직 산과 들이었다. 간간이 마을을 지나기도 했다. 높은 지대를 지나니 바다가 보였다. 문명의 것이라곤 보이지 않는 자연 그 자체의 섬이었다. 산을 넘어가 좁은 길로 들어섰다. 차는 바닷가 앞에 섰다. 한적함을 넘어 아무 것도 없는 바닷가였다. 리조트처럼 보이는 숙소가 있었지만 여느 관광지처럼 세련되고 정돈된 건물이 아니었다. 바닷가 옆 길을 따라 다이빙 샵으로 향했다. 넓은 바닷가에 유일하게 있는 건물이었다.
겉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다이빙 샵 안엔 사람이 꽤 있었다. 어디에서 이 촌구석으로 사람들이 모였나 싶게 전세계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한 보트에 함께 나갈 수 있는 인원이 모이자 다이빙 샵 직원은 설명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모두 반갑습니다. 오늘 다이빙 나가기 전에 다이빙 포인트 설명을 드릴게요. 오전에 두 번, 오후에 한 번 다이빙을 할 거에요. 오전엔 작은 상어를 볼 수 있는 포인트와 산호 리프를 갈 텐데 조류에 따라 마스터가 다이빙 포인트를 변경할 수도 있어요. 시발탄은 조류가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오후에 만타를 보러 갈 거에요. 이곳은 만타가 정기적으로 클리닝 하러 오는 클리닝 스테이션이 있어요. 만타는 깊은 수심에 살지만 매일 정기적으로 얕은 수심에 클리닝을 하러 옵니다. 우리는 해양 생물들을 리서치하는 인스티튜트와 연계되어 있어 매일 이 만타들을 관찰합니다. 이 친구들의 상태가 괜찮은지 관찰하고, 사진찍고, 인스티튜트에 정보를 공유하는 일을 해요. 만타를 보기 전에 자세한 설명은 마스터가 다시 해드릴 겁니다.”
만타의 클리닝은 만타의 몸에 붙은 기생충을 작은 물고기들이 먹으며 청소하는 행위를 말한다. 시발탄 다이빙 샵은 천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가득차 있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니도도 문명과 떨어진 곳이라곤 하지만 관광객이 적지 않은 곳이었다. 매번 사람의 손을 타야 하는 바다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시발탄은 그보다 더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어서 불편함은 있지만 자연은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어느 나라, 어느 바다를 가도 다이빙을 하기 직전에 물속의 생물들에 절대 손대지 말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시발탄에선 더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직원은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다이빙을 하다 큰 소리가 날 수도 있어요. 놀라지 마세요. 이곳은 아직도 어부들이 다이너마이트로 물고기를 잡아요. 사실 불법이긴 한데, 이곳 사람들의 생존 방식이에요. 소리가 크겠지만 2km 정도 멀리서 나는 거라 우리는 괜찮아요.”
그때만해도 폭발음이 들릴 거라는 말을 사람들은 그저 흘려 들었다. 우리는 곧 준비를 하고 보트에 올라탔다.
해변을 벗어난 지 얼마 안되어 우린 맑은 물이 있는 바다 한가운데 도착했다. 밖에서도 물 속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한 걸 보고 우리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햇빛이 비친 시발탄의 바닷속은 투명한 유리구슬 같았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형형색색의 산호들이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물고기들은 신이 난 듯 아침 햇살 속에서 산호의 보드라운 품을 즐기며 헤엄치고 있었다. 마스터가 때때로 어딘 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작은 상어가 산호 사이를 헤엄치고 있었다. 얕은 수심이어서 영화에서 보던 커다란 상어는 아니었지만 뾰족하고 날렵한 꼬리를 가진 매끄러운 몸통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있었다. 평온하고 여유로운 다이빙이었다. 우린 수심이 깊은 곳 얕은 곳을 넘나들며 산호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 때였다. 쿠쿠쿠쿵! 엄청난 굉음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나와 남편은 물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것이다. 샵에서 미리 조언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지진이 난 걸로 착각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울림이었다. 다이버들은 당황하지 않고 조금 더 유영하다 물 위로 올라왔다. 사람들은 장비를 벗으며 그제야 대화를 나눴다.
“소리가 엄청났어요.”
“예전에 인도네시아에서 다이빙을 하다 비슷한 울림이 있었어요. 그 땐 정말 지진이 난 거였더라고요.”
서로가 소리가 났던 순간을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독특한 경험을 함께 한 공유자로서, 함께 생존한 사람들로서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어찌보면 우리가 매 순간 살아있는 게 기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폭발은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호와 물고기들이 다이너마이트로 터질 수 있다고 상상하니 아찔해졌다. 그러나 현지인들에겐 그것이 생존의 한 방식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삶의 아이러니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두 번째 다이빙까지 신나게 한 뒤, 보트는 점심 식사를 위해 무인도에 정차했다. 섬이 가까워질 수록 에메랄드빛 바다는 점점 투명해지고, 사람들은 계속 물에 있었음에도 보석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보고 다시 흥에 겨웠다. 전 세계의 많은 바다를 가본 건 아니지만 시발탄의 바다는 보배임에 틀림없었다. 다이빙 샵 직원들은 점심 준비도 친환경적으로 했다. 우리는 바나나잎에 올려진 음식들을 원하는 만큼 집어 나무로 된 도구로 먹었다. 화장실도 따로 없었다. 쓰레기는 최소한으로 만들었고, 있어도 모두 챙겼다. 점심을 먹은 사람들은 나무 밑 그늘 아래 누워 쉬거나 물에 들어가 수영하며 놀았다. 나 또한 맑은 물속이 보고 싶어 다시 마스크와 핀을 착용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동남아의 뜨거운 오후 햇살이 물위로 살짝 나온 살을 갈색으로 태우는 느낌이 났다.
보트는 다시 달려 드디어 만타의 클리닝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마스터는 입수하기 전 브리핑을 했다.
“우리는 물속을 구경하다 만타 클리닝 스테이션으로 갈 거에요. 거긴 거의 모래밖에 없어요. 어느 순간 제가 멈춰서 손으로 신호를 하면, 여러분은 그 자리에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만타가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바닥에 완전히 가라앉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만타를 만지거나 만타에게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하시고요.”
만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흥분했다. 만타 클리닝 스테이션은 마스터의 말대로 모래 밖에 없었다. 산호가 가득했던 오전 다이빙 포인트의 바다 모습과 달라 더욱 흥미진진했다. 한참을 가던 마스터는 어느 순간 속도를 늦췄고, 사람들에게 수신호를 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 마스터가 가리킨 방향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수심이 깊은 곳이 아니었다. 물고기들이 춤추는 듯 헤엄치며 만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너울과 물고기들의 춤으로 모래가 흩뿌려져 점점 시야가 뿌얘졌다. 만타는 커녕 그 많던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만타를 못 보는 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눈을 부릅 떴지만 움직이는 거라곤 물속을 유영하는 모래 뿐이었다. 마스터는 오지 않는 만타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보트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에게 수신호했다. 우린 점점 수심이 얕은 곳으로 이동했고, 어느 덧 상승만을 앞두고 있었다. 마스터의 손가락만 바라보던 우리에게 갑자기 마스터가 물속에서 종을 울렸다.
‘댕댕댕’
물속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더욱 크고 힘찼다. 우리는 놀라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어마어마하게 큰 만타 한 마리가 저 멀리에서 헤엄쳐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아니, 날아오고 있었다. 거대한 새 한 마리처럼 우아한 날개짓이었다. 커다란 담요 같았다. 오죽하면 ‘만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만타’는 스페인어로 ‘넓고 평평한 담요’를 뜻한다. 날개를 천천히 들어 날갯짓을 한 만타는 한 번에 먼 거리를 스윽 이동해 어느 덧 바로 우리 옆까지 날아왔다. 만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순했다. 물속의 생물들을 도감으로 보면 기괴함이 이 세상의 생명체가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실제 물속에서 본 그들은 바다 세계의 정복자이자 생활자였다. 만타는 그 자체로 카리스마 있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웠다. 이 세상에 만타가 존재한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린 만타를 보기 위해 몸을 돌려 헤엄쳤다. 3m 가량 되는 녀석은 우리를 아랑곳 하지 않고 유유히 클리닝 스테이션으로 가고 있었다. 4~5m를 훌쩍 넘는 성체에 비해 아직 어린 만타였다. 나는 날아가는 만타의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 만타의 꼬리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녀석을 보고 또 봤다.
감동에 휩싸인 채 물 위로 올라온 나는 지구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아직도 이 지구엔 많다. 동시에 한 편에선 그 아름다움이 망가지고 있다. 도시의 삶에 익숙한 나는 어떻게 자연이 파괴되어 우리가 삶을 유지해왔는지 알지 못했다. 시발탄에 오자, 인간의 생활을 위해 자연을 포기하는 순간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물속에서 다이너마이트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아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이 행성을 온전하게 유지할 방법을 나부터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발탄에서 얻은 것은 만타를 본 경험만이 아니었다. 지구를 위한 삶을 생각하게 된 것이 진정 내가 얻은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가끔 시발탄의 바다를 생각한다. 그리고 매일 그곳을 날아다닐 만타가 무사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날갯짓을 하는 아기 만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