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완성 자서전 Apr 26. 2023

완벽하지 않은 딸이 되기로 했다

미국에 사는 딸내미를 보기 위해 먼 길을 오셨던 부모님이 다시 한국으로 떠나셨다. 서로를 만나지 못했던 지난 2년간 쌓인 회포를 모두 풀기에 한 달은 참 짧았다. 나에게 한 달이 유독 짧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내가 풀어내야 했던 것이 20년 간 쌓인 그리움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공부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 그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을 모두 합쳐도 2년이 안 된다. 그러니 부모님과 평범한 일상을, 그것도 한 달이나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먼 길을 달려와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을 선물해 주신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


머리가 큰 후로 난 부모님께 내가 원하는 걸 부탁드려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부모님께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잘해주셔서 그렇겠지만, 부탁을 잘하지 못하는 내 성격 탓도 크다. 엄마, 아빠인데 부탁을 왜 못하냐 할 수 있겠지만 난 그랬다. 부모님이 부탁하시는 건 누구보다 빨리 해결해 드리려 그렇게 애를 쓰면서도 부모님께 부탁을 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부모님께는 늘 완벽한 딸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한 달을 함께 보내면서 난, 내가 완벽한 딸이 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아빠는 아침마다 제일 먼저 일어나 직접 첫째 손자의 등교를 시켜주셨다. 학교까지 운전해서 가는 길도, 학교 앞 지정된 곳에 차를 세우고 아이의 하차를 돕는 것도 이제야 적응이 되었는데 한국에 가야 한다며 아쉬워하셨다. 어느 날, 등굣길에 그 어떤 실수도 없었다며 뿌듯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둘째 손자가 울 때면 늘 제일 먼저 달려오셨다. 딸을 힘들게 하는 손자가 뭐가 그렇게 좋다고 늘 어르고 달래주셨다. 그리고 장모님이 해주신 음식이 맛있다는 사위의 말에 그게 뭐가 맛있나며, 만들기 제일 쉬운 음식이라고 겸양의 말씀을 하시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보이곤 하셨다.


그렇다.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는 건, 아직도 당신이 자식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 바로 그것이었다. 그 뿌듯함 속에서 젊은 날 느꼈던 그것에 비하면 덜 뜨거울 순 있지만, 어쩌면 더 소중하게 느껴질 당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지금부터라도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부족한 딸이 되어보려고 한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나 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을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


“엄마, 아빠!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두 분이 함께 더 행복하게 지내시길 부탁드려요. 그 기쁜 소식이 있어서 두 분의 부족한 딸이 힘을 내서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사랑해요. “

매거진의 이전글 애매한 외로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