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테마 <30대의 일> 그 첫 번째 연사
창업하기까지, 30대를 돌아보다
올 2019년 월간 서른의 테마 <30대의 일>의 첫 번째 연사는 문학 스타트업 "스튜디오 봄봄"을 운영하고 있는 이선용 대표입니다.
이선용 대표는 창업하기 전에 은행원이셨습니다. 은행이라 하면 보통 안정적인 - 금융권의 높은 연봉이란 키워드가 생각납니다. 이런 좋은 직장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던 이선용 연사가 창업자가 되기까지 매 순간 치열했다고 느껴졌습니다. 순탄치 않았던 길이 있었음에도, 다시 퇴사하겠냐고 물으면, 그렇게 하신다고 합니다.
왜 퇴사를 결심했고,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먼저 이선용 대표가 창업한 <스튜디오 봄봄>을 소개해주시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스튜디오 봄봄은 문학 스타트업이며, 출판사인 동시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곳"으로 운을 띄우셨습니다. "스튜디오"는 앤디 워홀의 FACTORY(작업실)에서 영감을 받아서 지은 이름으로, 작가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을 꿈꾸며 그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서비스는 크게는 2개
판다 플립 - 인터랙티브 소설 플랫폼 ( 출판 브랜드이자, 웹소설 플랫폼 )
새벽 두시 - 이야기 창작 커뮤니티
스튜디오 봄봄의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는 "초단편"소설. 2,000자 내외의 3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으로 일명 손바닥 소설이라고 불리는 서비스를 론칭하기도 하고, 글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소통하는 플랫폼 - 새벽 두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론칭하는 일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소개해주셨습니다.
이야기는 연사님의 20대 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전공은 법학과였고, 경제학을 복수 전공. 졸업이 다가오는 25살에 사시 준비를 위해 신림동을 향하게 됩니다. 신림동에 들어가기 전에 2달 동안 1,000페이지 넘는 책을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짧은 시간에 끝내고 나와야지 했는데, 안타깝게도. 처음에 학원 가서 시험 성적은 꼴찌. 그 뒤에도 몇 번을 꼴찌를 하게 됩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거 같다고 생각되어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리고 바에서 알바를 시작합니다. 그곳에 자주 오시는 40대로 우기시는 50대 초반 손님에게 진로에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그분이 "좋아하는 것을 해라"라는 답변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연사님은 좋아하는 것이 없어진 상태. 그래서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냐?" 다시 물어보자. "없다면 다음 기회 집합을 줄이지 않는 선택을 하라"라는 답변을 듣게 됩니다.
그 결과 연사님의 선택, 은행에 입사를 하게 됩니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얻게 된 띵언. 그 뒤로도 선택의 기로에서 좋아하는 것을 선택 or 없다면 이번 선택으로 다음 선택이 좁아지거나 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금도 중요한 삶에 있어서 원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덕동에 있던 지점에서 기업대출을 시작하며 첫 직장을 시작하게 됩니다. 보통 은행에 있다 보면 기계적으로 손님을 응대하는데, 처음이기도 하고 연사님은 사람이 '궁금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왜 LG화학을 그만두고 사업을 해서 이 고생을 하고 계실까, 족발집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 근처 효성 임직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귀담아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근무했던 3년 내내 오셨던 분들과 친분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OO은행 똑똑한 직원들이 들어와 1.5만 명이 왜 적금을 팔고 있는가? 카드를 팔고 있는가. 그러면 괜찮은 것을 파는 것인가? 다른 곳과 차별화되거나 안 파는 것을 팔기보단. 비슷비슷하다. 카드를 받아간 고객은 바로 잘라버린다. 고객이 잘 안 쓰게 되는 상품을 을 판다고 하니, 자긍심이란 것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만약 본점을 간다면 바꾸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고 2~3가지 정도의 기획안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기회가 닿아서 본점에 발령을 받습니다. 그것도 기획부서로 그간 준비한 기획안을 반영이 될 수 있을 만한 팀으로 갑니다.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다 까입니다. 빛을 보지 못합니다.
1년을 준비해서 온 본사에서 1년 내내 까이는 경험. 제안한 것들이 조직 문화적인 안건부터 새로운 사업에 대한 것 까지 있었습니다. 은행이 규모의 경쟁보다 새로운 기회를 잡고자 하는 것들을 제안(지금의 토스와 비슷한 모델까지도)했지만 역시나 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 되는 것을 보면서 이게 조직 문화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애사심을 갖다가도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것은 매우 빠르게 사그라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직 VS 존버 사이 고민을 하게 됩니다.
경제&법학을 전공하고 석학으로 회계를 공부해서 금융계 근무를 시작. 이직해서 직장을 가진다. 결국 다른 금융사? 연봉은 올릴 수 있겠지만, 금융권이라는 보수적인 집단에서 순혈주의. 생각해보면 임원이 되는 것이 목표일 수 있는데 이직해서 임원은 그러면 못 단다. 여기서 더 기회를 보자.
그래서 첫 번째 선택, 존버를 선택하였습니다.
일단 존버를 했지만. 정말 답이 없을까 고민하며 사업은 미친 짓이다 문장에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붙여보기 시작합니다.
사업은 미친 짓이다?
돌이켜보니 지점에서 만났던 분들부터, 사업을 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아져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업하는 것도 다른 "보기(선택지)"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어느 날 사업하는 지인 중 한 분이 토니 셰이 <딜리버링 해피니스 책>을 추천해줍니다. 대학 때 2번을 엑싯하고, 펑펑 놀다가- 신발 파는 사업을 인수하고 돈 먹는 하마인 이 사업을 하면서. 나는(토니 셰이)는 왜 사업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고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고. 이 독특한 사람을 보면서, 사업이 재밌을 수 있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급여일의 다른 의미
주변에 사업하는 형들과 또 만나서 듣는 이야기. 급여일은 좋은 날 vs 머리 아픈 날. 물론 직장인은 월급통장에서 로그인되자마자 로그아웃되긴 하지만, 잠시나마 기분 좋은 날입니다. 하지만,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급여일이 제일 무섭고 머리 아픈 날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런 힘듬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뭔가 "사업"이라는 것이 선택의 보기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돕니다.
그러다가 창업에 부스터를 밟게 해 준 책이 등장합니다. 인생은 도로에 비유한 책. 비포장도로, 인도에서 걷는 사람 어떤 사람은 서행 차선. 어떤 사람은 추월차선으로 간다. 왜 나 혹은 회사원은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선택을 해야 할까?
그리고 결정타.
그 당시 뉴스에 창업을 창업하는 사람 40대 후반 50대 초반이고, 금융계가 많은 수를 차지함. 그리고 차리는 것이 대부분은 브랜드 치킨이나 국숫집. 그런데, 폐업이 가장 많은 것이 치킨집.
80세의 인생에서 요즘 55세에 퇴사했다가, 치킨집 2번 말아먹게 되면, 퇴직금이 다 없어지게 되는구나. 그러니 55세의 고민을 지금 해보자. 그리고 지르게 됩니다.
추진력과 무대책의 경계
이 두 개의 차이, 혹은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은 "겁"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3번 (심각할 정도라고 하시면서) 있었는데, 1주년 기념 여행에서 팔라우에서 와이프와 다이빙을 배우게 되고, 스스로 차고 들어가는 장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조금씩 극복되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도 무섭긴 하지만, 전처럼 심각하게 무섭지 않고. 트라우마를 극복해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불가능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일 수 있겠구나. 그러면서 나의 선택지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34살 첫 창업을 시도하게 됩니다. 바로 스쿠버 다이빙을 중계하는 서비스로.
제주도에 5군데를 계약을 따내서,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되며 제주도에 다이빙 제재가 생깁니다. 6개월 정도 기다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 접었습니다. 실제 이 제재는 2년이 지나고서야 풀렸다고 합니다. (매우 현명한 판단이셨던 것으로..) 그러고 나서 지금 아시는 책과 관련된 판다 플립을 35세에 창업하게 됩니다.
왜, 다이빙 - 책인 것일까요? 돈을 벌려고 창업을 시작했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 중에서 아이템을 골라 시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려고 했으면, 그냥 은행에 있었으면 되었으니까요.
판다 플립을 만들기 위해서 비개발자로서 개발자를 삼고초려의 시작. 그러나, 기획서 달랑 1페이지 가지고는 개발자를 합류시키기가 힘들었습니다. 개발자분이 "작가 50명이라도 모아 오면 생각해볼게요"라는 말에 주위 지망생, 방송작가 카페 등 노력 끝에. 안될 것 같았는데 두 달 만에 작가수 120명을 모아 오게 됩니다.
그래서 공동창업자 7명 = 개발자 2명, 회계 1명, 출판 1명을 모아 시작하게 됩니다.
드디어 바라던 창업을 하게 되지만, 1. 동업이란 무엇인가? 2. 계약서란 무엇인가? 3. 우정이란 무엇인가?
이런 부분을 생각하는 험난한 시기를 보내는데요. 누군가에 가 지분을 더 많이 주겠다고 잘못된 소문이 나있기도 하고, 그래서 지분을 공식화시키려고 계약서를 써야 하는 과정 속에서 설득-협상의 과정. 서비스도 되어있지 않고, 제대로 된 기획서는 없는데 투자사가 IR 이런 이야기도 왔다 갔다 하니 앞으로 될 것 같은 기대감만 잔뜩 부풀어 있었던 상태였다고 합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봤을 때, 이때쯤 "뭐가 문제였는지 알았어야 했었다고 한다"라고 이야기하시더군요. 결과적으로 창업 초반에 참여했던 지인도 , 개발자 분들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 원래 그렇게 될 것이었던가, 나는 이러한 사태를 방관한 것인가에 대한 씁쓸한 질문을 하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달콤한 꿈에만 젖어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고.
이제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앞으로 진짜 일을 하기 위해서 "누가 같이 일할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자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시다는 여성 창업 멤버 중 1분이 그런 분이셨다고 하네요. 처음 사업 창업 멤버는 아니었고 작가로서 지원을 해서 작가 OT에 뵈었는데 많은 아이디어와 펼치려는 사업에 생각이 많았던 인재였던 것입니다.
이러면서 다시 한번 3번째 추천 책이 나옵니다. <승려와 수수께끼>
2015.08.01 드디어 서비스가 출시합니다. 1년 1개월간 준비했던 것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완성도를 높여 출시하자란 이야기도 있었지만, 작가님 200명 정도, 그리고 기다려준 독자(리뷰어)들 300명 정도가 있었고. 그러면 400~500명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루기보다는 출시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대만큼 드라마틱하게 올라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초반 일주일에 약 1,000명씩 들어오던 숫자가 점차 점차 하락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투자를 받은 시점 아니기에 크게 마케팅 비용을 쓸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고, 가용할 수 있는 몇백만 원 예산을 가지고 고민하다가 1등 상금 300만 원을 내걸고 <공모전>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일반형태의 공모전으로는 임팩트가 약하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작가에 대해서 비공개(블라인드)되어 심사받고, 투표를 통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며 그때마다 추가 회차(연재 분량)가 공개되는 방식을 고민하고 내놓았다고 합니다. 또한 심사위원으로 퇴마록으로 유명하신 이우혁 작가님을 섭외를 성공시키며 홍보에 날개를 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촘촘하게 잘 기획한 공모전을 통해 6개월 동안 모은 사용자수를 1달 만에 모은 효과가 있을 정도의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첫 투자유치를 받게 됩니다. 비록 몇 천만 원 수준이지만. 그로 인해 급여에 대한 인상 이슈도 있었지만, 넉넉한 상황이 아니기에 멤버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플랫폼에 가장 인기 있는 작가님이 희망으로 처음으로 "종이책"을 내보는 시도도 하게 됩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종이책을 내는 일, 알음알음 알아가며 제본을 마치고 아무 일 없이 잘 되어가나 싶었는데. 하필, 배송사고가 일어납니다. 첫 책을 주문받을 시점에 댓글 하나가 올라옵니다. "책이 구겨져서 왔어요. 속상해요. 그냥 볼게요" 그 뒤로... 30분 만에 유사한 댓글이 40~50개가 달리는 사태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예판이자, 우리 회사의 첫 책을 이렇게 안 좋은 경험을 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전체 다 재배송 해주는 용단을 내리고 밀어붙이게 됩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좋을 수 있었고 혁신적인 생각이었을 수 있었지만 출판 시장에서 통용되는 관례(파본을 받고, 재배송)와는 맞지도 않고, 비용적 현타와 같이 일하는 팀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회사를 운영하는데 구조조정도 해야 하고, 급여를 삭감해야 하는 시기도 찾아오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빚을 점점 커져가면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던 실정이었습니다. 빚을 내서 회사를 키우긴 했지만, 돈이 떨어지면 이 일도 그만둬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스텔스 모드로 창업 모드로 본업인 은행은 언제까지 다닐 것인가 고민이 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와이프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퇴사의 조건 2가지
회사가 턴어라운드를 하거나, 10억 이상의 투자를 받으면.
그러던 중 진짜 38살, 2번째 투자가 10억을 받으며 연사님은 이제 "퇴사"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이루어낸 일을 은행원이라는 본업과 병행하며 이루어낸 것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목표했던 투자를 받아 퇴사를 하였으나, 최대 주주가 아니라는 것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영화 혹은 글로만 봤던 주주 일들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고, 의사결정을 혼자 하지 않게 되고, 작지 않은 무게감을 견디어야 하는 순간순간이었다고 고백을 하십니다.
그리고 투자를 받았고 이제는 본업이 되었기에 생존(외주업무)과 우리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을 할 수 있을까라는 딜레마를 풀어내는 힘듬과 선택의 고난도 있었고,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들이 누적되어 건강에서 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회사를 더 키워야 한다는 판단하에 조직문화나 롤모델 기업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책 추천이 있었습니다. 회사를 키워가는 과정과 치열함과 투병생활이 연사님에게 크게 공감 포인트가 되며 뒤늦은 잡스 앓이를 시작, 스티브 잡스에 대한 책과 롤모델로 삼고 싶은 기업 픽사에 대한 책 추천이었습니다.
글로도 정리하면서도 꾀나 긴 스토리였습니다.
긴 이야기였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분 정말 "치열하게" 매 순간을 고민하고 선택하며 보내셨구나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한 자 한 자 꾹 꾹 눌러서 글을 쓰듯이 창업을 준비했고 오늘 하루도 만들어 나가고 계시는 구나란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치열하고 과감했던 기나긴 30대의 이야기의 끝에, 40대 스스로의 다짐이라고 공유해주신 멘트가 여운으로 남습니다.
건강하게, 여전히 과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