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지 않을 리가 없잖아
"아니야- 하나도 안 무서워"
어른들이 겁을 집어먹은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주문같이 외는 말. 무서움을 느끼면 패배자라도 되는 것처럼, 무서운 게 이니라고. 괜찮다고 무서울 리 없다고 이야기한다.
무서운 것은 무서운 건데,
왜 아무도 무서워해도 된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나는 세상 둘도 없는 쫄보다. 신중하다기보다는 겁이 많아서, 돌다리를 두드리고 두드리다, 돌이 움푹 패일 때까지 두드려보다 결국 돌아가는 길을 택해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따금씩 후회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온다. 작게는 치과를 멀리했던 일부터 관계가 무서워 회피했던 일 크게는 어린 날 선뜻 발을 내딛지 못했던 수많은 도전의 기회들까지
두려워서 돌아갔던 인생의 작은 숙제들은 누군가 해결해주지 않았고, 이전에 넘었더라면 좋았을 나지막한 언덕이 쌓이고 쌓여 큰 산이 되어버린 것 같을 때가 많았다.
이제야 조금씩 밀린 숙제들을 해나가려니 쉽지만은 않다. 아직 때는 늦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이른 것도 제 때도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 언제나 내 아이는 태생이 '무던하여 강한 아이'가 아니더라도, 두려움을 건강하게 맞설 줄 아는 '용감한 아이'가 되길 바랐다. 나와 같은 겁쟁이로 태어날지라도 두려움을 이겨보는 작은 승리의 경험들이 쌓여, 삶에 용기의 인이 박히기를 바랐다.
나의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는 예상했던 것처럼 태생이 무던한 아이는 아니다.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고, 섬세하다. 두 돌이 채 안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면, 언니 오빠와 놀고 싶어 하면서도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너무 당연하다. 어른들도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 나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한 날은 모래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에게 두세 명의 아이들이 다가왔다. 아직 대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생전 처음 보는 세 살 아이를 배려하며 놀리 없었고, 손에 쥐고 있던 삽까지 가져가기 일 수였다. 엄마가 곁에 있으니 어느 정도 중재는 가능했지만, 이내 아이는 그 자리가 불편하고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유주야, 오빠가 유주 삽 가지고 가서 속상했어?"
"응 속상했어"
"유주가 '오빠 삽 줘'하면 오빠가 줄 거야. 같이 가볼까?"
아이는 조금 망설이는 것 같더니, 놀던 자리로 돌아가 오빠에게 손을 내밀며 달라는 의사표현을 했다. 그 날 이후 비슷한 상황은 늘 있었지만. 아이 안에 생긴 아주 작은 승리의 경험이 또 다른 작은 용기를 낼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여전히 아이는 어떤 아이들처럼 만나자마자, 신나게 어울리지 못하고. 진료실 앞에서 싫어요 소리가 먼저 나온다.(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만 알 수 있는 아이의 이전과 다른 용기를 볼 때 기특하고, 뿌듯하다. 매번 진료실 문만 열면 울던 아이가 무릎에서 바들바들 떨며 참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같은 상황과 환경에도 각기 받는 두려움의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우리는 가끔 어리석게도 나의 좁은 식견으로 상대의 두려움의 크기를 재단하고, 타인의 용기의 크기를 판단한다. 스스로도 그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면서 말이다.
우리가 할 것은 그저 내 아이가, 타인이 느끼는 그 두려움을, 무서움을 인정해주고, 작지만 그 무엇보다 큰 산을 넘을 수 있도록 그저 손 잡아주는 것이 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