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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Aug 10. 2020

수업시간에 좀 자본 솜씨

쉬어가는 한컷 기억_01





너, 나 할 것 없이 야행성 식구들이 그득그득한 집안이라, 아이도 행여 꼴딱꼴딱 밤을 지새 울까 낮잠시간, 밤잠 시간 맞춰보려 애쓰던 날이 있었다. 부지런한 엄마들처럼 잘 해내진 못했던 것 같지만 나름 수면 패턴이니, 생활 루틴이니 따져가며, 종이에 어플에 적어가며 어울리지 않는 짓을 했더랬다.

낮잠을 재우고 재우다 못 자고 넘어가는 날이면, 아이는 꼭 밤잠도 아니고 낮잠은 더더욱 아닌 7시쯤 기절하듯 잠이 들었는데,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10시쯤 일어나 몇 시간을 논 뒤 새벽에나 잠이 들었다. (2-3시간을 푹 잔 아이의 에너지를 그 새벽에 30대 어미가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진짜 겁-나 피곤하다)

한 날은 낮잠을 건너뛰어 5시 즈음되니 벌써 꼴딱꼴딱 넘어가는 고개가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재워도 될 법 한데 한창 밤잠 시간 고민이 많았던 터라, '어떻게 해서든 8시까지 버텨보리!!' 하는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후다닥 이른 저녁을 먹여, 잠을 한 번 깨우고, 노래에 율동에, 책도 읽고,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동원해 놀아주다 아이가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은 순간! '안 되겠다 최종 보스 물놀이다!' 하며 아이를 화장실 앞에 식탁의자를 끌어다 앉히고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는데!!! 수도꼭지를 올린 동시에 뒤에서 '코-' 하는 불길한 소리가...(약간의 비염이 있는 아이는 가끔 코를 곤다)

분명 새벽 근무 확정인 그 광경을 보며, 황당하고 어이없어하면서도 (그 순간 혼자 누구보다 바빴던 2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렸는가) 마치 수업시간에나 볼 법한 자세로 잠든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운동 중인 아이 아빠에게 곧장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화면에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들이댔다. 그리곤 둘이서 화면 하나 사이로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이 소리 죽여 깔깔대며 웃었다. 남겨둔 사진 한 장에 세시 가까이 연장근무를 하면서도, 남겨둔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너 내감마! 다 남겨놨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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