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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Aug 14. 2020

좋아할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

기후위기. 엄마가 돼서야 느끼는 이전에도 있었을 위기

어김없이 오늘도 내리는 비
비를 싫어하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다 큰 어른이 되기까지 나는 비를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조금 늦더라도 우산 두 개를 챙겨 마중 나오는 엄마의 모습이 좋았고, 교복이 다 젖도록 비를 흠뻑 맞으며, 집에 뛰어 들어가는 날이면 온 몸에 나를 휘감았던 더러운 생각이나 감정들이 온통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또 퀴퀴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동네는 비가 무섭게 쏟아지고 난 다음 날이면, 늘 말끔해져 있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걷기 시작하니 그렇게 좋아했던 비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비가 오면 난 한 손에 아이를 안고, 한 손엔 우산을 들고, 짐은 비에 젖지 않게 아이를 안은 손과 어깨로 힘겹게 우산 밑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다 팔이 부들부들 떨려오면, 젖은 땅 위에 아이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고 나면 첨벙첨벙 물을 양껏 밟은 아이의 발에 옷이 더러워지기 일 수였다. 그래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비를 좋아하니, 조금의 힘듦을 감수하고 아이에게도 습하고도 시원한 그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종종 둘이 우비를 챙겨 입고 나가곤 한다.


비가 말 그대로 양동이로 쏟아붓는 것 같았던 주말 오전, 아빠의 품에 안겨 우산 속에서라도 비를 한껏 느끼려 양팔을 벌리고 기뻐하는 아이. 그런 아이의 모습을 그리며 이전에는 하지 않을 법한 고민에 빠졌다. 유난히 길어지는 장마, ‘기후위기’라고 불리는 이 비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런 시기에 나는 이런 그림을 그려도 되는 걸까, 아이가 비를 맞고 좋아하는 것을 보며 함께 웃어도 되는 걸까.


그 옛날, 신은 아담에게 이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늘 언제나 그렇듯 ‘다스리는 것’과 ‘지배하는 것’의 차이는 혼돈되었고, 예나 지금이나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이 땅, 지구를 지배하고 이용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에게 ‘다스리는 ’ '좋은 '이란 타이틀은 어울리지 않는 것일지도.


물론 나 역시도 게으른 환경 무지렁이에 오늘도 자연과 환경을 소비한다. 그 후에 있을 책임은 내 후대에게 미룬 채,
'자연과 공존하자’라는 말로 '자 좋게 좋게 넘어갑시다' 하기에는 사실 이 땅과 자연은 너무나도 무방비하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가해자이고, 그들이 피해자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다스리는 권세’라는 타이틀이 거창하지만, 이제라도 적어도 못된 왕처럼 그들을 이용하고, 핍박하는 행위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태어날 어떤 아이들은 ‘비를 좋아할 기회’조차 박탈당할지 않을까.

오늘은 조금 미안한 마음이다.

아무 죄 없는 비에게도 내 아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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