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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일 Sep 30. 2020

마지막 고기 한 점 남기는 사이

   명절을 맞아 가족끼리 저녁 식사를 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과 나. 단출한 네 식구의 식사 자리는 언제나 날뛰는 침묵과 함께였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기일마다 애써 만나 가지는 이 시간은 내겐 늘 고역이었다. 가난과 불화와 술과 눈물, 분노와 후회로 엮어 있던 네 몸뚱이들에게 이 뜻깊은 자리는, 불운하게도, 얄팍한 육신을 메스로 갈라 그 속에 꽁꽁 숨겨놨던 이야기를 꺼내보는 시간이 아니라 실과 바늘로 어떻게든 상처를 메워 봉합하려는 갸륵한 발버둥에 가까웠다. 같이 살 때에도 이렇게 네 식구가 한 상에서 밥을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어울리지 않는 반찬이었다.

 처음 만난 이의 눈은 당돌하게 잘 쳐다보면서도, 제 부모의 눈을 오래 쳐다보기는 여간 쉽지가 않다. 그 사정은 나만 겪는 게 아닌 것인지 어머니 아버지 당신들도 금방 뒤집은 고기를 애꿎게 한 번 더 뒤집어버리시고 만다. 나는 말없이 고기를 씹으며 애잔한 마음을 감출 뿐이다. 화목함이라는 건 각고의 뻔뻔함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그간 솔직하게 분노하고 정직하게 울어왔던 우리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고야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슬프진 않다. 더 이상 슬퍼하기엔 내 눈물도 기력을 다 해 재미가 없어졌다.

 정작 힘든 것은, 이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 당신이 짊어진 후회와 고통이다.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노쇠해버린 한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자조하고 비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정작 힘든 일이다. 홀로 소주잔을 들이켜며, 고기 불판을 사이에 두고 슬금슬금, 어느새 훌쩍 커버린 두 아들놈의 눈치를 살살 살필 때, 막내아들은 돌연, 당신 탓이 아니라고, 우리 때문에 당신이 짊어졌을 삶의 무게를 나도 아직 헤아리지 못했다고, 입을 떼려다, 시끄러운 침묵 속에 그저 입을 다물고 만다. 어색함을 애써 모른 체하며 고기만 씹는 이 시간이, 마치 아버지가 걸어온 삶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만 같아 정말이지, 고통스럽다.

 철부지의 콧물이 부모의 눈물을 헤아리기까지는 얼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기일이 되면 여지없이 이렇게 모여 화목한 가족 흉내를 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우리를 속일 때가 오겠지. 서로에게 남겼던 상처들을 슬그머니 망각하고, 조금만 더 뻔뻔해진 채로, 그렇게 모이다 보면 우리도 곧 다른 집처럼 화목해지겠지. 뜨거운 불판을 앞에 두고 나눴던 차가운 대화들이, 곧 달궈지는 날이 우리에게도 찾아오겠지, 생각하며, 목구멍 속으로 말없이 고기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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