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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디귿 Jul 11. 2020

부끄럽던 나의 실패 창고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하루키가 내게 건넨 말들

그러나 어떻든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창고’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매직을 구사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실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E. T. 가 훌쩍 찾아와 “미안하지만 너의 창고 속 물건 몇 가지를 쓰게 해 주겠니?”라고 말했을 때,

“좋아. 뭐든 마음대로 써”라고 덜컹 문을 열어 보여줄 만한 ‘잡동사니’의 재고를 상비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中]

 어느 TV프로에서 마을 발명왕이라고 한 아저씨가 나왔다. 그 아저씨는 창고에서 무엇을 뚝딱뚝딱 계속 만들었다. 뭘 만드나 보니까 생활에 도움되는 걸 만든다고 하는데 완성품이 잘 만들어지지 못해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일이 2배나 더 걸리게 만드는 이상한 발명품들이었다. 한참 이상한 발명품에 웃음이 나오다 아저씨의 창고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발명품에 입이 벌어졌다. 옆에 계시던 아저씨의 부인 분도 발명품을 전부 본 건 처음인 듯 이렇게나 많았냐며 놀래며 기겁했다.
‘이 아저씨 뭐지? 도대체 이 일에 얼마나 시간을 들인 거야?’
아저씨는 이제 시작인 것처럼 자기 발명품을 하나하나 설명하는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 열정이 부러워 보였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냐며 즐겁게 자기 이야깃거리로 가득 채운 그 창고가 부러웠다.


내게도 그런 창고가 있을까? 남들 기준보다 못 미쳐서 낑낑 대면서 평범 아래의 삶을 산 나한테는 먼 나라 별나라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우연히 지인과 책 나눔을 하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는데 내게도 그런 창고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가로서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설은 언제 쓰게 됐는지, 소설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가치관을 쓴 에세이다. 그 책에서 하루키는 나의 창고가 없다며 투덜대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봐 친구, 네게 이미 그런 창고가 있어!”


하루키가 내게도 창고가 있겠구나 알려준 부분은 영화 E.T에서 E.T가 잡동사니로 가득한 창고방에서 송신기를 만드는 장면을 비유한 부분이었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유형이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시대적, 상황적 배경 또는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 쓰는 유형이 있고, 두 번째는 바로 E.T가 찾아온 잡동사니 창고처럼 잡동사니로 글을 쓰는 유형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하루키는 자기는 두 번째에 속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특별한 세대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평범한 가정에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왔기에 29살이 되어서야 처음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29살에 겨우 첫 소설을 썼다는 글에 눈이 번쩍였다. 내게 존경하는 분이 본심인지 (지나가는 말인지?) 글을 잘 쓴다는 말에 글 쓰는 일을 꿈으로 삼았지만 글을 쓰는 시작조차 못하는 무거운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다. 왜 안 쓰면서 계속 뭘 쓰고 싶다고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못하는지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답답했다.


헛꿈 꾸는 내가 싫던 찰나에 하루키가 29살에 글을 썼다는 글이 참 반가웠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루키는 29살에 처음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하루키는 E.T가 찾아온 창고처럼 자기 창고에서 아무튼 있는 대로 죄다 쓸어 모아 그걸로 노력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잡동사니에서 그는 E.T가 매직을 구사하듯 자기만의 문체를 운 좋게 찾아서 큰 가능성을 잡게 되었다고 했다.

이에 반해 나를 보니까 내 안의 창고는 무시한 채 밖에서 계속 글 쓸만한 환경과 조건을 찾기 바빴다. 단지 글을 못 쓴 게 아니라 글의 재료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라면 물만 올려놓고 라면이 집에 없어 물이 졸아 날아가 버린 것처럼 늘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으로 빈그릇에 불만 붙었다. 그렇게 부었던 물은 증기로 빠르게 사라졌다. 라면이란 말에 사람들이 관심이 생겨 ‘나도 라면 같이 먹자’하고 모이면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빈 냄비뿐이었다.

매직으로 창고방에서 송수신기를 만드는 E.T

책을 읽고 나서 나의 창고를 한번 곰곰이 생각했다.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나의 창고에는 정말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거 아냐?  먼지만 있으면 어떡하지.’ 한참 생각하면서 나의 창고 문을 열어보니까 거기에 내가 실패하고 두려워해서 숨겨두었던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학원을 그만두고 이제부터 혼자 공부할 거라 자신했지만 실패했던 경험,

대학교를 잘못 선택해서 자퇴하고 편입을 준비했지만 실패했던 경험,

어렵사리 몇 개월 도서관에서 힘들게 썼지만 부끄러워서 숨겨버렸던 첫 습작,

소중한 친구를 상처 때문에 스스로 단절했던 경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1년 공무원 시험을 했지만 시간을 버리고 실패한 경험 등..


여러 가지가 나의 창고에 계속 쏟아져 나왔다. 이게 다 뭐야. 정신없을 정도로 잡동사니가 많았다.


갑자기 처음 말했던 발명가 아저씨의 창고와 내 창고가 비교가 됐다. 어떻게 보면 둘 다 쓸모 있는 게 없고, 잡동사니로 가득 찬 창고 같은데 아저씨의 창고는 자부심과 즐거움으로 깔끔히 정리가 되어 있었고 내 창고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정신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꼭 인터넷에서 ‘이거 나한테 어울리겠다’ 싶어서 산 옷이 사이즈가 안 맞아 버리지도 못하고 옷장 깊숙인 묻힌 것처럼 내 안에는 그런 실수와 실패, 두려움으로 숨겨버린 것들이 창고 속에 쌓여 있었다.


나의 창고가 필요해 보이는 게 하나도 없어 보이고 글로 쓸만한 게 있을까 의심될 때 하루키가 처음 소설을 어떻게 쓰게 됐는지를 발견했다.


하루키가 29살 처음으로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건 바로 야구경기를 보던 중 그 당시 약한 팀인 야구르트 팀 타자가 1회 말 띄어 올린 2루타 때문이었다.

하루키도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른다고 한다. 그냥 아무 맥락도 없이 자리에 앉아있다가 그 공을 보고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 공이 때마침 자기 손에 들어왔고 그 순간 그 일 하나로 자기의 모든 일의 양상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저 2루타, 그것도 약한 팀이 친 2루타가 소설가로 그가 처음 글을 쓰게 된 이유다.

그 불현듯 일어난 2루타가 그가 글을 쓰는데 갖고 있던 두려움을 깨뜨려 준 게 않을까. 그래서 그런가 하루키가 어지럽혀진 창고 앞에서 이게 될까 불안해하는 내 얼굴을 보고 꼭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자 이제 나의 창고를 열었으면, 자네 두려움을 깨뜨리게.”


하루키가 건네는 말에 두려움이 뭘까 생각했다. 두려움은 능력이 갖춰지지 않고, 환경과 조건이 갖춰지지 않고,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생기는 것 같다. 그렇다고 능력이 있다고, 환경과 조건을 갖췄다고, 사람이 있다고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긴 하다. 생각해보면 두려움은 항상 가까이 존재한다. 다만, 그 두려움 하나로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결정할 때가 많다.

두려움은 PT자료 발표자 모습을 보면 이해하기 쉽게 다가온다. 완벽하게 준비한 PT자료라 해도 발표할 때 두려움에 빠지면 결국 성심성의 준비한 PT자료는 리모컨 몇 번에 바로 딸깍딸깍 생략되어 넘어갈 수도 있고, 아예 포기하고 발표 자리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덜 준비한 PT자료라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선다면 허접해 보이는 자료에도 듣는 사람들은 발표자가 전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감명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을 방해하는 두려움을 깨뜨려야 되는데 이게 쉽지 않은 일이다. 걱정의 파도가 한번 생각을 휩쓸게 되면 두려움은 신난다 춤을 추며 온 머리를 헤집어 놓는다. 두려움은 좀체 쉽게 떠나지 않고 걱정, 근심, 염려, 좌절, 낙망이란 친구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연다.


어떻게 해야 두려움을 깨뜨릴까? 어떻게 해야 하루키가 본 야구르트 팀의 2루타처럼 내게도 그런 2루타가 있을까?


하루키가 말해준 2루타에서 답을 찾아보면 2루타는 약한 자의 반전, 두려움이 생기는 원인인 능력, 환경, 조건, 도와줄 사람이 없음에도 반전된 사건들이다. 이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들 같지만 은근히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하루키처럼 그 일이 모든 일의 양상을 바꿔놓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2루타를 찾는 눈과 마음이 잘난 사람과 잘나 보이는 사람들을 쫓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그 잘나 보이는 사람들도 두려움이 많아 보인다. 그들은 자기가 가진 능력, 환경, 조건, 도와줄 사람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며 지키기 급급하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사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봐도 단지 좋아 보일 뿐 나의 두려움을 깨뜨리는 반전 같아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하루키가 말한 2루타는 약한 팀, 약자, 눈에 보이지 않는 곳, 남들이 오지 않는 곳, 하려고 하지 않는 것, 어렵고 불편한 것들 속에 숨어있는 것 같다. 마치 쓸만한 게 아무것도 없음에도 자랑스럽게 자기 발명품을 즐겁게 자랑하는 아저씨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렵게 두려움을 깨뜨리더라도 남과 비교하는 순간 나의 창고가 자랑스럽지 않다. 한참 자랑스럽지 않은 창고를 보다가 숨겨둔 창고에서 꼭 찾고 싶은 잊고 있던 것을 새삼 기억났다. 그런 경험 있지 않나? 갑자기 한참 전에 샀다가 잊고 있던 책이나 선물 받은 물건을 찾으려고 방안 곳곳 뒤지고 헤집어 놓는 경험 말이다. (덕분에 방청소할 때가 많았다) 그게 크든 작든 그 기억 하나를 쫓아 그것을 찾을 때까지 기억을 더듬어 온 방을 뒤집었는데 나오지 않아 짜증 내면서도 그것을 찾게 됐을 때 기뻐하며 그것을 눈에 잘 보이는데 두었던 경험.

그 경험을 하자 부끄럽던 나의 실패 창고가 발명가 아저씨의 자부심 넘치는 창고처럼 소중하게 보였다. 그 누가 평가의 잣대로 “재능이 없네, 부족해, 이 정도로 뭘 하겠다는 거지, 이게 다야?” 판단하고 묻는다고 해도 그 발명가 아저씨처럼 판단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나의 창고를 열어 잡동사니들로 소중한 작품을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잡동사니로 만들어낸 것에서 자신만 낼 수 있는 특유한 E.T 매직을 조금씩 구사할 때 나의 창고에 있던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가 소중한 보물로 변해간다. 마지막으로 하루키가 이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자네 창고에 나중에 날 초대해주게나. 그 보물들이 벌써부터 궁금하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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