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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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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수난기의 시작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만드는지 얘기하다가 왜 갑자기 영어 얘기가 불쑥 튀어나오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물론 포트폴리오에 들어가는 작품의 개수를 채우는 게 먼저 중요하다. 하지만 급한 불을 끄려고 영어를 손 놓고 있으면 나중에 실제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미대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따로 반을 나눠서 수업을 들었다. (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과목은 비슷했지만 그 친구들은 수업을 거의 빠지고 학원에 가거나 수업시간에 부족한 수면을 채웠다. '미술 전공하는데 왜 국영수가 필요해? 그림만 잘 그리면 되지.' 가끔 친구들과 말 섞을 일이 생기면 그들은 이렇게 대꾸했다. 시험 점수나 모의고사 따위는 신경 안 쓰는 친구들이 때로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경쟁률이 높은 학교의 학과를 가기 위해선 인문계 학생들의 상위권만큼이나 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마찬가지로 '미술 유학하는데 왜 영어가 중요해? 그림만 잘 그리면 되지.'는 통하지 않는다. 차라리 '미술 유학하고 싶은데 그림은 못 그리고 영어는 잘해.'는 괜찮을 것 같다. 학생 기준에서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판단하기도 어렵고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는 영어 수준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학을 위해 필요한 영어성적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필수로 써야 하는 에세이도 한 두장이면 되고 전문 번역업체도 많고 입학 수속도 다양한 경로로 쉽게 할 수 있다. MBA를 가거나 일반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GRE 점수 때문에 코피 쏟는 경험을 하는 것에 비하면 토플이나 아이엘츠의 최소 점수를 얻는 건 어렵지 않다. 


우선 내 경험을 고백하자면 토플 점수를 만든 다음 포트폴리오 준비를 시작했는데 그 이후 영어는 거의 신경 쓰지 못했다. 이미 대학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꽤 많이 수강했었고 외국인 친구 덕분에 회화는 가능했기 때문에 너무 쉽게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 토플도 나이와 함께 생긴 눈칫살 덕분인지 걱정보다는 쉽게 성적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캐나다에 도착해서 수업을 듣기 시작하니 영어 때문에 밤에 잠이 안 왔다. 왜 그랬을까?


1. 네 작품을 설명해 봐. 


밤새 열심히 만들어 간 숙제를 두고 교수가 바로 질문한다. 당황스럽지만 침착하게 어떤 재료를 썼는지 뭘 그렸는지 무엇을 담으려고 했는지 열심히 설명한다. 물론 교수가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 표정을 지으면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야 한다.


2. 넌 뭘 배웠니?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때 처음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교수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질문한다. 수업의 연장선에서 숙제를 냈을 때는 꼭 이렇게 물어본다. 누가 더 잘했는지 보다 누가 더 많이 배웠는지에 따라 점수를 주기도 한다. 


3. 토론시간이야. 


언어 때문에 친구 만들기 어려운 상황은 둘째 치고라도 토론 시간에 서로 작품에 대해 칭찬하고 비판하는 상황은 잘 넘기기 참 어렵다. 토론을 통해 학생들끼리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가 그동안 없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원어민 친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내 얘기를 서투르게 시작하는 타이밍을 잡는 게 어색하다. 또 천천히 말하거나 한국어 억양이 툭 튀어나올 때 다들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시선까지 견뎌야 한다. 


4. 왜?


어떤 말을 하더라도 웃으며 'why?'라고 묻는 교수의 얼굴이 가끔 미울 때가 있다. 내가 습관적으로 단정 짓는 말을 하거나 내 의견이 아닌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그대로 읊을 때 교수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레퍼런스를 사용했다면 반드시 어떤 자료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도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외 수많은 상황에 영어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아마 앞으로도 더 어려운 상황은 계속되겠지만 그나마 패턴이 반복되면 답변을 미리 준비해서 부담감을 조금 덜 수는 있다. 포트폴리오 만들기가 실제 수업의 예선전이라면 내 작품을 스스로 설명하는 연습부터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1. 작업을 할 때마다 과정을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인다. 


한국말로는 어떻게든 설명이 되는데 영어는 어렵다면 일단 한국어로 간결하게 정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에세이도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서론 본론 결론에 해당하는 주요 문장을 정리한 후에 영어로 바꾸면 조금 쉽게 쓸 수 있다. 누군가 내 작품을 보고 질문을 하는 상상을 해 보자. 무엇을 궁금해할까? 예상 질문과 답변을 생각해보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2. 리스닝 연습을 한다. 


실제로 쓰는 건 대부분 스피킹인데 왜 리스닝이 중요할까. 나는 처음에 다들 원어민이라 내가 아무렇게 단어를 던져도 멋지게 받아칠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다. 마치 스트라이크로 공을 던지지 않으면 배트를 꿈쩍도 하지 않는 선수들 같다. 그래서 원어민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으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원어민들이 어떤 상황에 어떻게 말하는지 열심히 관찰하고 외우는 수밖에 없다. 말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나도 저 말을 꼭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경청해야 한다. 


3. 나를 표현한다. 


영어를 못해도 인기 있는 친구들이 있다. 튀는 억양으로 어색하게 말하는데 오히려 원어민들이 그 억양에 익숙해질 정도로 재미있게 떠든다. 반대로 겸손하게 입 닫고 앉아 있으면 멍청이로 무시당하기 쉽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호의를 베풀어야 연습해 온 영어도 떠듬떠듬 말할 기회가 생긴다. 나는 누군가 나에 대해 물었을 때를 대비해 흥미로운 답변을 미리 생각해두거나 언제든지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는 것도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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