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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l 09. 2018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만들었어?

포트폴리오라는 괴물을 다루는 법

미술 유학을 준비하면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당연히 포트폴리오였다. 영어 성적? 영문 자기소개서? 일단 낯설지는 않았다. 그런데 포트폴리오 제출 요건을 읽다보니 등에 줄줄 식은땀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아찔해졌다. 이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다급한 마음에 ‘유학 포트폴리오’를 검색했다. 유학원과 포트폴리오 학원에서 올린 광고가 주르르 떴다. 광고는 친절하게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수능과 대학입시보다 더 어려운 미술 포트폴리오를 과연 네가 혼자 만들 수 있을까? 학원으로 와. 그게 더 빠르고 편해.’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합격 예시와 후기를 읽어보니 비싸더라도 지금 당장 학원을 다녀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당장 상담 예약을 하고 학원을 찾아갔다. 주로 고등학생의 어머니를 상대하는 실장은 나를 보자 살짝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내 돈을 써야 하니 비싼 학원비가 마음에 걸려 이것저것 귀찮게 계속 물어봤지만 결국 속 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단지 다음 달 수업시간표와 미대 순위표만 손에 쥐었을 뿐.  


학원에서 언뜻 보여준 합격생 포트폴리오는 대단했다. 하지만 어떤 학생의 잠재력이라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실장의 과장된 목소리가 왠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쉬운 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나는 그렇게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뭐가 뭔지 판단할 수 있는 눈치는 있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학원에서 들은 말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답답해서 이미 오래전에 유학을 떠나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입학 포트폴리오 어떻게 만들었어?”  

대답은 간결했다.  

“학교에서 만들었지.”  


친구의 말은 냉장고에 코끼리 넣는 방법과 비슷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그래도 혼자 준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잘나서 모든 과정을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유학 가서 쓸 돈을 아끼고 싶은 소심한 마음 때문이었다. 매일 마시는 커피값 계산해가며 힘들게 모은 돈인데 학원비에 펑펑 쓸 수는 없었다. 돈을 떠올리면 물감 한 개 쉽게 사기 어려웠고 비싼 수입지는 만지작거리다가 포기하곤 했는데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빈털터리가 될 수는 없지. 유학생활에 돈이 얼마나 들지도 모르니 떠나기 전까지 혼자 준비해보자고 결심했다. 물론 준비 기간 내내 방향 없이 달리는 마라토너가 된 느낌이었지만 이왕 달리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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