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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l 23. 2018

우리 집 찾기

보증인 없는 유학생이 집을 구할 때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도시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은 새롭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눈에는 그저 신기한 만남이 앞으로 내가 매일 마주해야 하는 일상이라면 어떨까.  


캐나다에 도착한 후 2주간 에어비앤비 숙소에 머물렀다. 그 후에 어떻게 할지는 미리 정하지 않았다. 짐을 쌀 때 가족들이 살 곳은 정했냐고 물었고 나는 가서 찾으면 된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생판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집을 구하기가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 섞인 말을 들어도 나는 어디 가도 다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서울에서 첫 전셋집을 구하고 3년간 살았던 경험과 비교했을 때 캐나다에서 집 구하는 과정에는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었다. 캐나다의 큰 도시는 부동산 에이전트가 있다고 들었는데 핼리팩스는 작은 도시라 개인적으로 찾는 월세까지 대신 찾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서울에서는 집을 구할 때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가 부동산에 눈도장 찍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선 살고 싶은 동네의 집을 소유한 부동산 회사를 찾아 문의하거나 집주인이 온라인 사이트에 올린 글을 읽어보며 어떤 집이 나오는지 검색해야 한다.  


일단 최대한 학교에서 가까운 집부터 검색했다. 지하철도 없고 버스 노선도 촘촘하지 않은 동네라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여야 마음이 놓였다. 구글맵으로 거리를 확인하며 일단 큰 회사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집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무작정 이메일을 돌렸다.  


‘안녕 나는 어느 캠퍼스에서 9월부터 공부할 학생이야. 투베드룸을 찾고 있고 내 예산은 이 정도야. 나에게 괜찮은 아파트를 소개해줄 수 있겠니?’  


대충 이렇게 써서 보내니 대부분 하루 안에 답장을 받았다.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매물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직 올리지 못한 매물에 대한 정보도 같이 받을 수 있었다. 집을 보고 싶으면 이메일 말고 전화를 하라는 말이 붙어 있어 일단 핸드폰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매일 몇 시간씩 열심히 집을 검색했다. 2주는 생각보다 짧았다. 가장 필요한 핸드폰을 개통했고 후불 요금제를 낼 수 있는 계좌가 필요했고 학비도 내고 신분증도 만들어야 했으니 정신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지내고 있던 숙소에 2주 이상 머물 수 있는지 집주인에게 물어봤지만 다른 예약이 있어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저 무거운 짐을 끌고 또 다른 임시 숙소로 옮겨갈 자신은 없었다. 최대한 적당한 집을 찾으면 어떻게든 계약을 해야 했다.  


예산에 맞는 집을 찾으면 주인에게 문자를 보내 집 보는 시간을 예약하고 찾아갔다. 예상했던 것보다 마룻바닥이 깔린 집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회색의 거무튀튀한 카펫 밑에 어떤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 같아서 가능하면 카펫보다는 마루가 깔린 집을 얻고 싶었다. 집주인들은 입주자가 나가면 반드시 업체를 불러 카펫 청소를 하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내가 살면서 카펫 먼지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 우선 마루가 깔린 집만 검색했다.  


처음에는 단독주택을 열심히 찾았다. 지금까지 서울 아파트에서만 살았던지라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좋은 위치의 집은 예산과 맞지 않았다. 또 단독주택은 일반적으로 유틸리티가 많이 나오는 편이었다. 전기세, 수도세 등을 모두 합하면 한 달에 약 200불(한화로 15만 원 정도)가 추가된다고 하니 나같이 가난한 학생에겐 부담이었다.  


그나마 괜찮은 아파트 몇 개를 골라 담당자에게 다시 연락했다. 친절하게 내 문자에 답하며 집을 보여줬던 그에게 내가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자 그는 갑자기 난감해하는 목소리로 어렵겠다고 대답했다.  


“너희는 레퍼런스가 없어서 안 될 것 같아.”  

“응? 내가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내 신용이 보증해줄 사람이 없다고 얘기했잖아. 그럼 어떡해야 해?”  

“내가 매니저와 얘기는 해보겠지만 레퍼런스가 없으면 어려울 거 같아. 친구나 가족은 없어?”  

“물론 있지. 하지만 한국 전화번호와 주소인데 괜찮아?”  

“아니, 캐나다 전화번호와 주소가 있어야 해.”  


그 후에도 계속 레퍼런스가 문제였다. 한국 회사의 경력증명서나 비자 문서는 모두 쓸모없었고 나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 나의 신용을 증명해줘야 했다. 하지만 없는 레퍼런스를 뚝딱 만들 수도 없으니 아무 연고도 없이 이곳에 온 나는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그래도 최대한 내 상황을 설명하려고 애쓰다 결국 은행 잔고 내역서와 학교 입학증명서를 떼서 ‘내가 돈이 있고 충분히 머물 계획임’을 증명하고 열심히 지원서를 썼다.  


다행히 학교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회사가 내 지원서를 받아줬다. 월세도 예산과 맞았고 마룻바닥이고 위치도 괜찮았지만 급하게 계약하느라 꼼꼼하게 집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일단은 임시 숙소에서 나와 당분간 살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계약서를 쓰면서 푸근한 인상의 매니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레퍼런스가 없어 조금 고생했다는 말을 했더니 그녀는 캐나다에선 세입자가 월세를 안 내더라도 내쫓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있어도 서면으로 통보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신용보증인이 있거나 월급명세서를 제출할 수 있는 사람과 계약하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같이 캐나다에 막 도착한 외국인은 신용보증인도 없고 직장도 없으니 어떤 회사는 6개월 치 월세를 미리 내라고 하기도 하고 각종 은행 서류를 제출하라고도 한단다. 그러나 나중에 알아보니 월세를 1개월 치 이상 한꺼번에 내거나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서류를 제출하는 건 불법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처음에는 개인이 소유한 집보다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큰 부동산 회사에 먼저 연락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외국인과 계약을 많이 해본 회사라면 외국인이 일반적인 레퍼런스를 가져올 수 없다는 상황을 알고 있고 대안으로 먼저 필요한 서류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집을 찾으면서 계속 불안해했지만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쉽게 집을 계약했고 결과적으론 돈을 들고 온 합법적인 신분의 외국인을 모든 회사가 거절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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