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설계하는 디렉터 JOHN의 창업현장노트
중화요리 전문점 프로젝트가 들어왔다.
그곳 이름은 '중청루'. 상호명을 처음 들었을 때 이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처음 들었는데, 뭔가 여러 군데 있을 것 같았고 제법 유명한 브랜드 이름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첫 미팅 때 오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업 비전부터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매장까지...
오너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중국집인데, 마치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을 방문한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사실 쉽지 만은 않은 목표다. 호텔이라는 공간은 워낙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주거상권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란...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예산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호텔이야... 공간 자체가 고단가로 기준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로드매장은 호텔 공간 기준으로 투자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오너의 포부를 무조건 꺾을 순 없었다. 난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디자인적으로 해결해주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난 '가심비'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 가심비 :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
많은 예산이 투자된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이 매장을 이용할 때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사실 이 또한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만약 프로젝트에 충분한 기간이라도 있다면 오히려 좀 더 수월할 수 있지만, 기간 또한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난 기본적으로 3개월 정도의 시간을 추천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3개월이라는 시간을 확보하긴 어려울 수 있지만 콘셉트 기획단계부터 들어가면 본 설계는 1개월 정도 투자하고, 나머지 2개월은 기획기간에 넣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중청루'의 입구는 중화요리 전문점임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연출했다.
조명에서 포인트를 줬고, 카운터 맞은편에는 중청루를 상징할 수 있는 그림을 실제로 제작하여 걸었다. 그리고 벽면 하단으로는 과거 청나라 건축물 담벼락에서 느낄 수 있는 빛깔의 마감재(청고 벽돌 사용)를 사용했다. 정말 별것 아닌 연출이지만 소비자들에게 공간의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심비 전략의 기본 방향성이라 판단했다.
입구에서 주방 통로를 지나 메인 홀로 들어오면 더욱더 직설적인 형태들을 볼 수 있다.
우드로 제작한 현판에서부터 처마를 지탱해주는 구조물까지 그리고 벽면은 회벽으로 연출해 더욱 그 건축물의 느낌을 느낄 수 있게 연출했다. 이런 식의 연출은 전부 한 브랜드의 매뉴얼 요소들로 계획이 된다. 즉, 차후에 다른 점포들에게도 동시에 적용되는 공통된 중청루의 요소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 중청루 프로젝트에서는 다른 중화요리 브랜드랑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특히 오너는 이런 말을 많이 했다. '보통 중화요리하면 RED가 많이 사용되는데... 전혀 다른 컬러로 표현하고 싶어요. BLUE 같은...'.
시도해보고 나니 독특했다. 익숙하지 않은 컬러로 우리 일상에서 익숙한 공간을 표현하는 것도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공간의 큰 톤을 정했으면 작은 요소들에게도 정체성을 입히기 시작했다. 너무 과하면 오버스러울 수 있어서... 작은 요소들에는 최대한 심플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절제를 했다. 우드로 만든 격자 구조와 과거 청나라와 어울리는 조명, 그리고 나무로 만든 현판, 문양 스카시 같은 것들을 활용했다.
오너와 함께 시도했던 것 중 결과가 좋았던 게 또 있다.
주방을 입구 쪽으로 한 이유는 배달 픽업 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지만 주 이유나 다름없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다. 중화요릿집은 배달 매출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나부터도 중국요리를 배달로 먹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배달 픽업 존의 필요성을 처음부터 크게 생각했다.
배달 건수가 많아진 요즘 요식업 매장 앞에는 가끔 배달기사들이 줄을 서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화요리 같은 경우 배달이 주 매출을 차지하다 보니 더더욱 배달기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비가 조금 오는 날의 경우 배달 기사들의 핫플레이스나 다름없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발생하기도 한다. 손님 동선, 직원 동선, 배달기사 동선이 겹치면서 다소 복잡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손님에겐 불편한 점 중 하나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배달 픽업 존을 따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방이 전면으로 나오게 됐고, 배달 픽업 존은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중청루' 공간은 좋은 결과를 낳았다.
중청루만의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또한, 브랜드 확장에 있어서도 그 정체성이 쉽고 명확해서 장점이 많았다. 초기 디자인 전략으로 잡았던 '가심비'가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만들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가심비 전략을 쓰면 좋지 않나?' 할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것 만도 아니다. 어떤 프로젝트에 있어서는 최대 출력을 해줘야 할 때도 있고... 완전 초저예산 전략으로 해야 할 때도 있다. 디자인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와 어떤 목표를 향해 프로젝트를 끌고 갈 것인지에 따라서 과정이 달라진다. 이번 '중청루'는 가심비가 목표였다.
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대표 메뉴들 촬영도 함께 한다.
별도 비용은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클라이언트 요청 때문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촬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프로젝트의 완성 같은 느낌이 든다. 식음공간 프로젝트의 완성. 메뉴까지...
끝으로 '중청루'의 맛은 꼭! 다시 먹고 싶은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난다.
중청루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