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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an 16. 2024

[기고] 유영하는 풍경 속에 무언가가 있다.  

* 해당 글은 <저널서울>에 기고된 글입니다. 


'영등포'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이 잘 안된다. 오랫동안 답사를 해온 나도 막상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고민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등포를 상상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이 봐도 떠오르지 않는 부분이 있고, 떠올라도 어떤 지점을 말해야 할지 헷갈린다. 동일한 장소에서 보이는 중첩된 시간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딱히 이유가 없으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영등포를 지인에게 소개해 준 이후 돌아온 대답이었다. 본인에게 맞는 흥밋거리가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즐길 거리가 많은 한강 북쪽에서 강을 건너 남쪽으로 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 거리가 멀어도 어차피 같은 서울이라 이동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다른 사람도 당연하게 그럴 것으로 생각하고 제안했는데 착각이었다. 강을 건너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반면에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수월한 경기도 권역 사람들과 인천 사람들은 영등포에 자주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 없음’에서 비롯되는 지역과의 관계 맺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 모른 채로 살아갈 수도 있을 측면도 존재한다. 지역과의 관계 맺기가 의무는 아니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지역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하다.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닌 지역이 가진 다양한 자원을 파악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시작점이 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쌓은 노하우와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해 볼 수 있으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 준다. 과연, 영등포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을까?  


지역에 대한 관심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부터 시작된다.

영등포시장. ©서울수집

서울 살면서 자주 동네를 옮겨 다녔다. 그중 한 군데가 영등포 신길동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동네일 수도 있지만 사는 동안 동네를 알아가는 것도 서울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 사람은 '동네에 뭐가 있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동안 동네에 관심 가져 본 적 있는지 되물어 보면 딱히 아는 것도, 관심도 없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한 동네가 완성되기까지 과정은 생각보다 그리 간단하지 않다. 도시계획에 따라 구획을 나누고, 기능과 용도에 맞는 공간들로 채우고, 사람들이 살아가며 각자의 시간을 쌓으며 유지되고 완성된다. 과연,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없을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지점이 있음에도 관심 없어서, 볼 생각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면 뭐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영등포 답사를 시작했다. 


집에서 영등포역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였다. 서울역에 가지 않아도 시간만 잘 맞으면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전철 1호선도 영등포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인천으로 가기도 편했다. 경기권과 인천 사람들이 많이 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찻길 위를 지나는 육교와 고가다리를 건너면 문래동, 신도림동에 닿았다. 골목길을 따라 정신없이 걷다 보면 대방동, 노량진동으로 이어졌다. 한강을 향해 다가가면 여의도로 갈 수 있었다. 여러 번의 걷기를 통해 신길동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길의 연결성이 아주 좋은 지역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가 없고(최근에는 생겼다.) 시장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시장을 기준점으로 정하고 옛 과거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는 모두 사라졌지만, 극장, 예식장, 육교, ‘신길동 텍사스촌’이라 불리던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1970년대 구지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다만, 신길동 텍사스촌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신길동 텍사스촌은 우신 극장 뒤편, 신길동 261번지 일대에 있었다. 하나씩 발견되는 과거 공간들의 단서를 통해 동네를 아는 것과 동시에 영등포 지역 전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이 변하면서 지역을 구성하고 있던 조직(도로, 골목길, 주거 공간)이 어떻게 변했는지, 남겨진 과거 흔적은 어떤 형태인지 자료와 함께 현재 모습을 비교해 가며 연속성을 찾아 나갔다. 이 과정은 현재 시점에서 형성된 지역 특성과 과거로부터 연결되는 지역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등포에는, 지도에 없는 것들이 있다.


1960년대 영등포 지도, 서울 편 ©한국지명총람

특히 영등포역 일대는 1936년 영등포가 서울로 편입되고, 공업지대로써 자리매김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마을과 상권이 형성된 곳이다. 특히, 대규모 공장들이 인근에 자리하면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일찍이 많은 사람이 모이면서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대규모 공장은 1990년대 후반에 대부분 사라졌고, 더 이상 공장 노동자들이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던 시장과 소규모 철공소가 길을 따라 넓게 분포되어 있고 동시에 백화점, 복합 쇼핑몰, 주상복합아파트, 지식산업센터가 있다. 현재이면서도 과거에 있는 듯하고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으면서도 활기찬 다소 극과 극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영등포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풍경 속에 가는 길을 멈칫하게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아주 가까이에 있어 눈에 잘 띄면서도 사람들 시선 사이로 자유롭게 유영하고, 모른 척 배제된다.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좌)쪽방촌 방향의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우)영등포에 남아 있는 성매매집결지. ©서울수집

영등포역 일대의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은 두 곳이다.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쪽방촌과 성매매 집결지다. 쪽방촌은 언제 형성되었는지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 다만, 영등포역 일대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던 성매매 업소가 건너편으로 이동하면서 그 자리를 일용직 일자리를 찾아온 도시 빈민들이 채웠다. 값싼 숙소를 방을 쪼개 세놓으면서 쪽방들이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매매 업소는 영등포역 기찻길 일대에 1950년대부터 있었는데 기찻길 정비 사업으로 건물들이 철거되면서 길 건너로 이동하게 되었고 업소가 모여들면서 집결지로 발전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어?


성매매 집결지는 지도에 표기되지 않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한 많은 사람이 지나가며 묻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거리에 어둠이 찾아오면 서서히 붉은 조명이 켜지고 커튼이 젖힌다. 이 앞을 지나는 수많은 차가 멈췄다가 출발하거나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주차장으로 향한다. 교차되는 장면 사이로 벽 하나가 눈에 띈다. 벽 뒤로 분주한 소음을 내며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앞쪽엔 간이 공간이 설치되어 있다. 왜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특정 시간대가 되면 사람이 앉아 있다. 잠깐이었지만, 그들에게 위험 요소는 공사가 아니라 이곳에 있을 자리를 잃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은 계속되고 현실은 이어진다. 과연, 이들은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공사가 끝나고 나서라도 떠나야만 한다면 어디로 가게 될까?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던 지도엔 답도, 길도 없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동안 지도를 통해 무엇을 보고, 어떤 정보를 얻었나? 누군가 선택해서 전하는 한정된 정보로만 채워진 지도를 보고 따라갔을 뿐이다. 이러한 지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한계점으로 작용한다. 간극을 메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채워지지 못하고 지도에 표현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 영등포 어딘가에서 공중을 떠다니며 유영하고 있다.


* <저널서울>에서 보기

https://www.journal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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