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대전엑스포, 꿈돌이와 꿈순이. 내게 대전은 신세계를 만나게 해준 도시였다. 대전엑스포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즐겼던 모든 것들이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세월이 흘러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벅찬 마음으로 즐기고 집으로 돌아갔던 감정은 확실히 남아있다. 그날은 눈도 내렸기에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비록, 대전 도심을 둘러본 것이 아닌 박람회장을 방문한 것이었지만, 이 순간이 꽤 오랫동안 잔상에 남아 맴돌곤 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봄이 올 때마다 서울 곳곳에서 프리마켓이 열렸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 소공원에서는 예술마켓 ‘세종예술시장 소소’가 열렸다.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시장으로 다양한 분야 작가들이 만든 상품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개성으로 각자만의 스타일을 담아낸 물건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판매되는 상품 중에는 독립출판물도 있었다. 독립출판물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작가가 기획부터 편집·디자인·인쇄·제작·유통까지 직접 진행한 출판물을 말한다. 당시에는 독립출판물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였고, 제작자와 판매자 또한 소수였다. 조건 없이 자유롭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쓴 글과 그림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이와 연계하여 북토크도 열렸다. 이곳에서 우연히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덕후다.’라는 컨셉으로 독립잡지를 만든 팀을 만났는데, 이들은 대전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대전이 떠올랐다. 해당 팀과 마켓에서 한참 대화를 나누고, 이후에는 따로 대전에서 만나 동네를 함께 걸었다. 대전역 일대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철도 보급창고와 관사가 남아 있었고, 그러한 역사성과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근대자료를 수집하고 아카이브 활동도 하고 있으며, 관련된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한동안 잊고 있었던 대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후 대전에 자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앞으로 알아가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무궁무진한 도시라는 생각에 여지를 계속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짬짬이 시간을 내 전시도 보고, 동네를 둘러보기도 했다.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님과 함께 재개발구역을 둘러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성심당으로 향할 때, 대전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관련된 장소와 공간을 방문하여 흐름을 이해하고자 했다.
노잼의 도시라 불리는 건 대전 사람들에겐 일종의 해결해야 할 문제 같았다.
대전시장 후보들은 대전을 꿀잼 도시로 만들 공략을 제시했고, 언론엔 ‘노잼 도시 꼬리표 떼려면 월드컵경기장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게 하고, 오리배에
전기충전기를 달아야 한다.’는 기사가 종종 등장했다. 대전이 ‘노잼도시’로 불리는 건 불명예스러운 일이었고, 대전이 재미없어서 청년들은 떠난다고 했다.
지방 도시의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위기가 팽배한 이 시국에
‘노잼’이라는 별명은 재앙과도 같았다. p12, <대전은 왜 노잼 도시가 되었는가?>
흔히 사람들은 대전을 노잼 도시라 말한다. 타도시 사람들을 비롯하여 대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 지 오래된 것 같다. 그런데, 대전이 정말 노잼의 도시일까? 여기서 말하는 노잼은, 과연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대전을 오가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재미없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오히려 살펴볼 것들이 많았고,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었다. 물론,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고, 잠깐 접하는 것들이 재미와 흥미로 연결되는 것일 수 있지만, ‘대전이 노잼’이라는 말에는 단번에 동의가 되지 않았다. 역사성을 가지고 변화해 온 도시를 ‘재미’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재미’를 논하기 전에 ‘대전’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부터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노잼으로 언급되는 도시는 비단 대전만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도시는 왜 꼭 재미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마치 재미 유무가 도시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재미에 갇혀 도시마다의 본연의 특색이 축소되고, 본질이 흐려지는 것만 같다. 재미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된다.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한다. 재미와 더불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른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되거나 확장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람마다 느끼는 재미의 기준이 다르다. 또한 모두가 같은 재미를 추구할 필요도 없기에 누군가 내뱉은 ‘노잼’이라는 단어로 하나의 도시를 판단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지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재미 유무에만 초점을 맞추고, 각 도시마다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흐름이 오히려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재미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기준과 잣대로 재미를 느끼려고 하는데 재미없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재미가 없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것저것 시도 해봤는데, 재미를 느낄만한 기준점이 찾기 어렵거나 없다고 판단된다면, 없는 것 자체가 그 도시만의 특징일 수 있다. 재미가 없어도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와 정체성은 존재한다. 모든 사람이 굳이 재미를 쫓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도시 인프라와 관련된 공략을 내걸곤 한다. 최근 선거기간에 설치된 현수막에서 ‘부천을 서울로 편입되게 하겠다.’고 적힌 문구를 본 적 있다. 이 문구를 보자마자 공략을 제시한 사람은 부천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없고, 부천을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시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부천 역사와 향토사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들과 부천이 고향인 사람들이 이 공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만약, 부천이 서울로 편입되는 것이 현실이 된다면 부천으로써의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인데, 모든 부천시민이 서울로 편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만 보일까? 해당 공략을 제안한 사람이 부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절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고유하고 매력적인 우리 지역만의 정체성은 중요해진다.
아니, 우리 지역의 정체성이 ‘더 고유하고 더 매력적’이라는 우월함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다.
p37, <대전은 왜 노잼 도시가 되었는가?>
부천의 서울 편입 언급은 도시 브랜딩과 마케팅에서 말하는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지, 상실하여 오히려 애매모호한 상황이 될 일인지는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도시 간 경쟁을 통해 지역의 고유성과 정체성은 더욱 중요해지고, 애매모호한 특성을 가진 도시는 다른 도시에 흡수되면서 소멸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게 된다. 특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탈락하고야 마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도시의 형성과 소멸, 변화의 시작과 끝, 변화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들, 각기 다른 변화 속도의 차이로 생겨나는 각각의 특성에 대한 전반적 이해 없이 이미지나 키워드로 묶어두려는 흐름은 역으로 제한된 개념과 이미지에 갇혀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이러한 지점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공간에서의 경험은 감정을 만들고 그것은 공간의 특성과 개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며 그곳을 떠나더라도 머릿속에서 꾸준히 재현되는 기억이 된다.
기억에 남은 ‘장소가 된 공간’은 의미가 있다. ‘여긴 내게 의미 있는 곳이야.’
라고 말할 때, ‘의미’는 기억과 감정의 복합체다. 공간이 지닌 물질과 물질의 특성, 그 안의 사람들, 분위기까지, 이 모두를 한꺼번에 느끼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경험에 기반 해 비로소 장소는 인식된다.
그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장소가 지닌 특성, 즉 장소성이 만들어진다. 결국, 장소성은 나와 공간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지나는 골목이나 이미 알고 있던 곳이라 해도 어떤 사건을 통해 나와 관계가 만들어지면 그곳은 특별해지고, 새로워진다. 익숙하고 흔한 곳에서 낯설고 새로운 면을 찾아낼 때 그 낯설고 새로운 면에 이름을 붙여 볼 때, 나와 그 장소는 관계를 맺게 된다.” p52, <대전은 왜 노잼 도시가 되었는가?>
문득, 각자의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해진다. 이제부터라도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어떠한 기준으로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시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참고자료
1) 빈 관사를 쓸모 있게, 소제창작촌
https://ncms.nculture.org/story-of-our-hometown/story/945?jsi=
2) 대전 철도보급창고
대전역 동광장에 있던 모습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2810?OutUrl=naver
이전 모습
https://www.yna.co.kr/view/AKR20230926038100063
3) 독립출판잡지,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덕후다’ 필릭, 텀블벅 페이지
https://tumblbug.com/philic03/community/creator
4) 대전 둔산동 비행장 관련 내용, 대전관광공사 공식블로그
https://blog.naver.com/daejeondime/222107082024
5) 대전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만든 <오!대전> 웹사이트
http://o-daejeon.org
6)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는가>, 북저널리즘
https://www.bookjournalism.com/books/68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