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빔의 도전과 해법(2)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현재 한국의 많은 도시들이 '지역 소멸'이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무분별한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개발 압력과 보존 노력 사이의 갈등, 지역 정체성 유지와 관광 산업화 사이의 긴장, 그리고 주민 참여와 관 주도 개발 사이의 균형 문제 등이 발생한다. 이는 어떤 특정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이 마주한 문제다. 그런데도 각 도시마다의 정체성을 보존시키거나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잘 보이진 않는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물리적 공간을 보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온 주민의 삶이 지켜질 수는 없는 것일까? 1995년부터 인천 지역 미술 연구모임에서 시작하여 17년 동안 대안적 예술 활동과 지역정체성 보존 활동을 해온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Q. <재개발로 인한 둥지 이동 주민들에 관한 보고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의 기획의도는 무엇인가요?
저는 과거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미래에 방점을 찍고 있어요. 과거를 기반으로 바람직한 도시 공동체 인천을 만들어 가려고 하는데, 과거를 지키지 못하니 미래를 위한 작업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이러다 저도 쫓겨날 상황에 처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나마 할 수 있는 남은 역할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에요. 철거식 재개발을 막는다는 건 웬만해선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기존 공동체는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살펴보고 드러내며 또 다른 방식으로 현재와 같은 재개발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또 다른 문제점을 환기시키는 정도의 역할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죠.
Q.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지점이 있나요?
재개발이 추진될 때 선주민 입장이 각기 다르죠. 개발에 대한 찬·반으로 서로 갈등하고, 재입주자와 현금 청산자로 나뉩니다. 저의 경우 전면철거식 재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주민 중 재입주자들이 괜히 원망스럽거나 시세 차익을 노리는 건 아닌지(조합 측은 당연히 투기적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고요) 의구심을 가지며 현금청산자에 대한 심적인 동조가 많았었지요. 막상 인터뷰를 해보니까 그렇게 이분화 하여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재입주자도 상황이 맞아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오랫동안 살아왔던 곳을 떠나기 싫어하는 마음도 있고, 본인은 힘들게 살아왔지만, 자식들이라도 더 넓고 좋은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도 하고요.
공사가 순탄하게 진행되어 예정된 기한에 맞춰 입주하면 다행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지연되고 임시 거처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거주 비용도 은행 융자 받아서 보증금과 월세를 내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외부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되니 그분들도 또 다른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현금청산자분들이 이런 과정을 겪지 않고 후일을 도모하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편한 부분도 있고요. 물론 턱 없이 낮은 보상비로 다시 들어오지 못하고 어디론가 쫓겨나는 입장이라 더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정말이지 뿔뿔이 흩어졌더라고요. 그럼에도 함께 하던 이웃들을 잊지 못해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있고, 개발에서 비껴간 인근 지역의 미용실 등을 사랑방처럼 활용하며 만남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재개발이 여러 사람들 힘들게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Q. 그런 상황에서 지역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재개발 공사에 앞서 조사ㆍ연구 및 아카이브 작업이 공공 개발에만 이루어지기도 합니다만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고요. 기존 장소를 일부 남겨 두면 좋겠지만, 어떻게든 용적률을 높이는 게 시행사의 가장 큰 목적이니까 불가능한 일이지요. 외국의 공동체 계승형 대안 건축 사례들이 한국에서는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이며, 기존 도시 구조를 보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자체의 역할 부재도 큰 문제입니다. 기존 주거지 개선을 위한 재원 투자가 부족하고, 재개발을 통한 인구 증가를 기대하며 개발을 공공이나 민간 업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삶의 질이 저하되고, 젊은 층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주민들이 떠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도시의 지역 정체성 유지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해서 지자체의 적극적 역할, 기존 공동체와 도시 조직의 가치 인식 등이 필요합니다.
Q. 결국,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누군가(주민 혹은 제3자 등, 모두 해당)의 행위로도 만들어 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부분이 매우 중요하죠.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지속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장소’로 발전합니다. 이러한 장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각각의 다른 목적이나 상황에 따라 변화해 갑니다. 이렇게 형성된 장소는 자연스럽게 그곳만의 독특한 경관과 생활생태계를 만들어 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요소들이 공간에 층층이 쌓이고 뒤섞이는 과정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마을이나 도시가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다리 마을이 바로 이러한 특성을 지닌 곳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배다리 마을은 현재 위협받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이 낡은 성장과 개발 논리를 앞세워 마을을 한꺼번에 바꾸려는 시도를 했고, 이러한 시도는 지금도 여러 형태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Q. 배다리마을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누구의 관리와 통제를 받고 싶지 않아하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의 문제도 있지만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되어 가고 있잖아요. 소수 권력이 다수를 지배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여러 가지 자발적 복종이나 참여 장치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그런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는데, 누구에겐가 끌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고 자유 의지대로 살고 싶어요. 그런데 도시는 점점 시스템화 하며 개인의 자발적 활동 영역이 점점 축소되고 있어요. 자칫 하면 저의 생존 문제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봐요. 이에 저항하고 대안을 만드는 일이 저도 살고, 저와 비슷한 시민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 고집스럽게 무언가를 계속 하게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Q. 옛 도시조직 일부와 공동체가 남았으니 어떻게든 지켜나간다면 인천의 미래를 위해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날 가능성 있지 않을까요?
배다리 마을은 개발 위협을 극복하고 기존조직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여러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마을의 역사, 사연, 습속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가치이며 미래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마을은 주변으로의 확산이나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제한적이며,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이면서 고립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마을이 단순한 관광 명소나 특이한 볼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관할 구청이 관광지화를 추진하려는 의도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마을의 본질적 가치나 지향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마을의 정체성, 가치, 미래 비전을 방문객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Q. 인천이 그런 의미에서 ‘어떤 발전상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하는 바람이 있을까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한국의 도시들은 세수 확보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소멸'이라는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많은 지자체가 무리한 사업 추진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도시 간의 소모적인 경쟁 관계를 벗어나 각각의 도시가 지닌 남다른 유산과 가치들을 잘 보듬고 살리는 가운데 지역의 구성원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적·지구적 차원의 문제 해결 및 대안을 위한 혁신적 사업과 활동을 하는 가운데 각각의 도시들이 연대와 협력, 상생의 관계로 맺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