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창선 Jan 17. 2024

에이블리의 컬처덱이 그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유.

장장 1년이 넘는 플레이북2.0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느낀 감동과 전우애

<들어가며>


NOTICE. 에이블리의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 철학을 규정한 문서의 이름은 PLAYBOOK(플레이북)입니다. 본문에선 '컬처덱' 이란 용어대신 에이블리 내부에서 부르는 플레이북으로 명시했습니다. 


에이블리를 만난 건 어언 2년 전이었습니다. 에이블리는 엄청난 성장을 꿈꾸고 있었어요. 원래 패션커머스 플랫폼이 엎치락뒤치락 킬러 플레이어 없이 춘추전국시대가 된지 오래 되었잖아요. 누군가는 이 시장을 재패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세력싸움이 굉장한 상태였죠. 에이블리는 유니콘을 앞두고 있었고 사실상 미친듯이 달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목표를 위한 원칙과 당위성이 필요했겠죠.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굉장한 걸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원래 에이블리에겐 플레이북1.0이 존재하고 있었거든요. 당초 목표는 그것의 2.0버전을 만드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내용의 대대적인 개편이라기보단, 1.0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하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을 더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결과적으론, 당초 10페이지 내외로 고민하던 플레이북 2.0은 대격변을 겪으며 251페이지로 마무리되었습니다. 3개월을 예상했는데 웬일인지 1년3개월만에 끝났어. 원랜 그냥 설명만 담으려고 했는데, 만들고 보니 이건 거의 '종이로 만든 에이블리' 그 잡채인 거에요.


에이블리의 '플레이북 2.0'


이 긴 시간의 이야기를 모두 풀어내는 건 힘들어요. 사실 이젠 잘 기억도 안나거든요. 그러나,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번 회고는 몇 가지의 사건들 위주로 풀어내보려고 합니다. 탈은하급 인재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5명의 TF와 냉두뜨가남(차가운머리 뜨거운가슴) 강석훈 대표님과 애프터모멘트의 4명이 땀흘리며 만들어낸 에이블리의 플레이북 2.0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꼬!





모든 과정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


조직문화로는 이미 내놓아라!!! 할 정도로 대단한 회사에 계셨던 분들

대표님과 거의 100% 동기화된 분들

반대의견을 자유자재로 말하며 회의를 뜨겁게 만들어주신 분들까지



이렇게 피플, 컬처팀의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 TF 탄생!! 이 첫 단추가 진실로 중요한데요. 우리가 하려는 플레이북 프로젝트는 '누군가가 하고싶은 말'을 담는 게 아니라 이 조직의 정체성과 목표를 정의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할 이유와 방향을 설정하는 작업이에요. 


대충 하려면 얼마든지 대충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려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이죠. 단언컨대 TF라는 이름을 달고 모인 사람들은 똑똑해야 합니다. 그냥 똑똑이 아니라, 뇌가 8기통이어야 한다고.

조직문화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야 하고, 다채로운 언어와 사고를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단어도 다르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조직의 구조도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이 분들은 그랬어요. 어떤 프로세스를 거쳤는지 보세요.




01

전사에 플레이북2.0 프로젝트를 알리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저희는 전사에 전달할 설명글과 편지글을 작성했어요. TF는 멋진 포스터를 만들어 곳곳에 붙이고 홍보했죠.


02

기존 플레이북을 완전히 해체하고 개념을 하나하나 톺아보는 작업을 했어요. '그릿' 이란 한 단어로 5시간 회의했고, 회사와 구성원이 주고받는게 순환관계냐 계약관계냐를 가지고 2시간 내내 토론했어요. 우린 미팅을 정말 수도없이 가졌는데, 한두시간안에 끝난 회의는 없었어요. 모두 거의 탈진할 때까지 회의를 거듭했죠.

탈진


03

각 핵심가치에 대해 구성원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모의고사처럼 설문지를 만들어 전사서베이를 진행했어요. 서베이의 결과는 TF에서 거의 컨설팅 레포트처럼 분석해서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결과치를 도출했어요. 


04

각 핵심가치에 맞는 사례를 찾아내기 위해 실제 실무자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작업TF가 아닌 구성원의 참관도 자유롭게 이루어졌어요.


05

내용이 추가되고 많아지면서 개념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이걸 재정비하기 위해 다시 출동했죠. 핵심가치와 그 하위의 키워드들을 재정비하고 페이지구성 하나하나에 신경썼어요. 이게 앞에 있으면 이해가 될까? 이 페이지를 뒷 페이지와 혼동하진 않을까? 실제로 막 넘겨보면서 구성원들의 경험을 재현해보기도 했죠.

이렇게 하면 잘 읽혀요? 저렇게 하면?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최소 이 정도 열혈스피릿이 있어야 되어야 제대로 된 내용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대나 카이스트를 나오지 않아도 되고, 멘사회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대신 충분히 깊고 다채롭게 생각할 수 있는 힘과, 밀어붙이고 실천할 수 있는 구현능력이 있어야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낼 수 있어요.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다투기도 했어요.




에이블리는 임팩트있는 결과를 위한 과감한 챌린지를 지향하고 있어요. 누구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는 문화에요. 실제로 중간중간 내용을 작성하거나, 서베이 문항 등을 정리하며 의견차이가 종종 있었답니다. 보통 이렇게 갈등이 생기잖아요? 그럼 클라이언트가 '그냥 알아서 해달라'거나, 아님 끝까지 '해달라는 대로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외주업체가 '네네..그냥 그렇게 해드릴게요.' 라고 하는 식으로 대강 중간에서 협의가 되는 경우도 있죠. 


우린 그러지 않았어요. 서로가 어떤 말을 하는지 끝까지 듣고,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소소한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대강이란 건 없었죠.






유쾌함과 친절함을

놓치 않았어요.



에이블리와의 대화를 보세요. 가득한 이모지와 적절한 짤(물론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이 썼지만), 매 순간순간 서로 대화하면서 격렬한 환대와 유쾌함이 살아있었어요. 이 때 커뮤니케이션을 정리하고 담당해주셨던 팀장님이 새록새록 생각나요. 당시 저희 직원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 팀장님 처럼 말하고 싶어요."

라고. 정말 섬세하고 따뜻한 커뮤니케이션이었어요. 그렇지만 내용은 깔끔하고 물어보지 않아도 두번 세번 정돈해서 먼저 알려주시곤 했더랬죠. 


그거 아세요? 사실 저희가 컬처덱 텍스트를 적을 때 보는 건 워크샵에서 등장한 말이나 서베이의 결과, 대표님 미팅결과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회의에 임하는 태도, 내용을 대하는 태도, TF들의 불평불만, 무심코 하는 말들을 모두 고려해요. 


가끔 컬처덱을 만드는 TF는 '자신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제작자의 마인드로 프로젝트를 대한달까요? 그 회사의 문화가 가장 격렬하게 드러날 때는 컬처덱처럼 복잡하고 힘든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에요. 그 때의 소통과 일처리 과정 자체가 그 회사 문화를 보여주죠. (숨기고 싶지만 숨길 수 없는 진짜 모습들을)



에이블리TF와 대화할 때마다 늘 환영받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정말 함께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했죠. 그쪽도 진짜 역사에 길이남을 고생을 하고 있고, 이쪽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요.


 



디테일에 

디테일에 

디테일


디테일+디테일+디테일


지금은 저희가 디자인을 안하고 있지만, 그 땐 에이블리만의 메시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손목과 똥꼬를 희생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그래픽 작업도 빡시게 했었지만..결과적으론 잠들어있던 실비보험도 잘 써먹었고, 눈도 호강했고, 뿌듯함을 안주삼아 맥주도 마시고. 훌륭했습니다.

손목을 갈아 만든 그래픽들



수정이 반복되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왜 수정해야 하느냐가 명확하면 수긍할 수 있어요. 진짜 좋았던 건 원하는 레퍼런스가 아주 분명하셨고, 딱 그 레퍼런스의 톤앤매너에 정확히 맞추기만 하면 됐어요. 취향따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거든요.

디자인 뿐 아니었어요. 내용, 표현, 제목 하나까지 꼼꼼하게 살폈어요. 실제 최종본은 251페이지로 마무리됐거든요. 인쇄까지 진행할거라 서로 되게 긴장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1년 3개월이 지났고...드디어 완성본이 등장합니다.



두둥탁!




<맺으며>


에이블리의 플레이북 2.0이 정답은 아닙니다. 여기엔 많은 내용이 섞여들어갔고, 브랜드북과 플레이북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목적으로 방향성이 바뀌었거든요. 모든 회사가 251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꼭 인쇄를 하고 멋진 그래픽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에이블리 플레이북을 만든 멤버들의 능력과 자세만큼은 '이거시 진정한 조직문화 TF구나' 싶을 정도로 멋지고 대단했어요. 똑똑했고, 치열했으며, 따뜻했죠.


여성 패션커머스 시장은 혼란스러워요. 소비자의 특성상 전국통일 커머스가 등장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압도적인 매출을 자랑하는 에이블리이지만, 멋진 넥스트 커머스로 성장하기 위해선 글로벌 시장 확장뿐 아니라 파워있는 브랜드를 육성하고, 디자이너를 키워내는 전방위적인 성장모델이 필요할 거에요. 다양한 사업들이 전개되고, 수많은 외부의 인원들과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겠죠. 조직문화는 하나의 성벽같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외부와의 교류, 자극, 수많은 상황에도 굳건히 조직을 지켜줘야 하죠. 플레이북의 두께와 무게만큼 이 책자가 에이블리의 도약에 가장 단단한 디딤판이 되길 바라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큰 기업의 컬처덱은 식상하다고? 아닐걸? 중앙을 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