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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D Nov 20. 2021

09. 그 사람과 얘기하면 지치는 이유

커뮤니케이션 부담이 누구에게 있는가

같이 있으면 참 즐거운 사람이 있다. 어제 보고 또 봐도 재밌고, 몇 년 만에 봐도 반갑다.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근황 토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서로 시시덕거리다 오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 지치는 사람도 있다. 사람 자체의 인성과 태도가 별로라거나, 혹은 입만 열면 불평불만에 신세한탄만 하는 분과 같이 있다 보면 나까지 진이 빠진다.


만나서 얘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카톡, 통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지치는 경우가 또 있다. 사람도 나쁘지 않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1. 커뮤니케이션 부담을 전가하는가


아마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커뮤니케이션 부담을 전가하는가’가 여부로 결정된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딱히 대답할 구석이 없는 말을 하는 경우, 예를 들어 무언가를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와 대단해요.”, “기분 좋으시겠어요.” 말고는 정말로 할 말이 없다. “어디서 사신 거예요?”, “힘드셨겠어요ㅠ얼마나 배우신 거예요?” 따위의 질문도 한두 번이지, 매번 자랑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상대방의 관심사나 우리 공통의 이슈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특히 자기주장과 이야기만 쏟아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 몇 번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이니 귀 기울여 듣고 리액션도 하고 질문도 하지만, 매번 그러면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 쪽에서 다른 화제를 생각해서 적절하게 전환하고 반응에 따라서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게 아니면 상대방 말만 실컷 들어주게 되는 거. 그렇게 지치고 또 질리는 것일 게다.



2. 공적인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 


사적인 사이에서도 이럴진대 문제는 공적인 관계, 특히 고객에게 커뮤니케이션을 전가하는 경우다.


며칠 전 안과에 들렀더니 세상에. 환자가 너무 많다. 시장통도 이런 시장통이 없다. 접수 담당자가 한 마디 툭 던진다. “대기 시간 한 시간 넘게 걸려요.”


이어지는 안내가 있을까봐 잠자코 있었다. 담당자도 가만히 내 얼굴만 쳐다본다. 결국 내가 입을 열었다.


- 그렇군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 기다리시려면 기다리시고 아님 다른 일 보고 오셔도 돼요.
- 네, 혹시 이따 제 차례가 되면 문자 연락이라도 주실까요?
- 아니요.
- 그럼 말씀드리고 다시 오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아님 와서 또 대기해야 할까요?
- 오시면 바로 받을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가는 부담은 고스란히 고객인 나에게 전가됐고, 고객이 역으로 이슈를 던지며 화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즉, 상대방을 생각하게 만든 전형적인 케이스인 셈인데 나에게 다른 대안(여기서는 다른 안과)이 있었다면 번거롭게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딴 데 가면 그만이니까.


물론 접수원 분은 친절했다. 부드러운 말투와 화사한 미소로 고객을 응대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꼈고, 처음 그 친절함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접수원은 시간 통보만 할게 아니라 안내를 하고 옵션을 먼저 제안해야 했다. 상대방을 생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됐다. 생각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 곧 부지불식간에 고객을 홀려서 사기를 치라는 뜻이 아니다. 고객의 커뮤니케이션 부담을 최소화하라는 뜻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옵션의 제안이 필요하다.


즉, 고객을 무한대의 옵션의 바다에 빠뜨리지 말고 Yes or No를 결정하는 단계까지 끌어올리라는 말. 물론 의사결정에도 에너지가 소모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하나하나 구체화하는데 비하면 그 부담은 아무것도 아니다.

 



친절한 말투와 태도야 배우면 되겠지만 이런 커뮤니케이션 영역은 아마도 경험과 눈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뭐랄까, 소위 ‘센스’라고 불리는 플러스알파의 영역이랄까. 


그리고 이런 센스는 비단 고객 응대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회사에서 동료 및 상사와, 그리고 협업 부서와 커뮤니케이션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 예상되는 이슈와 몇 가지 옵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구체적이지 않아도 되고 그게 정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부담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지 않는 것이니까. 


커뮤니케이션 참사 레전드.jpg


사적인 관계는 물론, 공적인 영역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부담을 전가하는 태도는 상대방을 지치게 만든다. 그리고.. 아, 쓰다 보니 이제 알겠다. 그동안 소개팅녀들이 왜 그렇게 답장이 없었는지. 내가 너무 날씨 얘기만 했던 거지. 반성한다. 이렇게 또 이론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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