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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Jeung May 10. 2016

내 인생 자체가 전시다

전시할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여행

나는 행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도 여전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엄청난 기준을 세워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작은 행동이 모이는 것, 과정을 봐야하고 작다고 해서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닌데 '작은' 조각이라고 여기며 시작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오예!

나의 이야기를 이번 해 초부터 들어왔던 은미언니가 선물해준 <<지혜로운 생활_두번째 퇴사, 그래도 잘 살고 있습니다>>를 읽는데 내 이야기인줄 알았다.

'일을 한다는 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와 같은 고민은 생략되었다. 단지 졸업하자 마자 바로 취업을 하고 싶었다. 우선 붙고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마음이었다. 모순적이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이 없는 걸 있는 척 지어 하고싶지는 않았다. 이렇다보니 지원 동기며 입사 후 포부 같은 걸 제대로 적을리 만무했다. 꼭 그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절실함도, 그 일만을 보고 달려온 것 같은 열정도 없었으니 당연하다.


나 또한 머리로는 독립을 위한 취업을 생각하지만 모순적이게 마음이 없는 어떤 곳에 나의 절실함이나 열정, 포부를 거짓으로 보여줄 수 없었다. 후회할 것을 내 마음이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코너에 몰리고 나서야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팀의 피디님이 나더러 무얼 잘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은 '감동하기'라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시간에 따라 변하는 거리의 풍경이나 바람에 흩날리는 이파리들, 동네 꼬마 아이의 짓일 것으로 보이는 담벼락에 붙은 스티커 같은 걸 길을 걷다 말고 멈춰서 보는 걸 좋아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아름다운 것들이 지천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자는 좀 섬세했고 민감했다. 생겨났다 사라지는 감정과 생각, 순간의 분위기 같은 것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고 싶어 길을 걸으면서 기록을 하던 때도 있었다. (...)

무엇 하나 내세울 특기는 나에게 없었지만, 나는 나와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걸 잘하는 편이었다. 무엇이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게 없었다. 찬찬히 마주하면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측정할 수도 평가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능력. 대부분 회사에서 쓸모없는 재주, 내가 잘하는 것이란 어디가서 말하면 말하는 나도 듣는 이도 서로 민망해지는 그런 것이었다.



이럴수가.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감동을 잘하는 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사랑꾼인 나의 능력을 어디에 써야할지 그것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며 머리가 아팠다. 좋아하는 것이 있고 하고싶은 것도 있고 흠뻑 빠져서 행복해지는 일도 있는데 당장 해야 할 일은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거리를 보며 뛰어야 하는 것이라고 나를 부추겼다. 그건 누군가의 요구도 아닌 나 스스로의 생각과 선택이었다. 그래도 '더 이상 늦기 전'이라는 느낌이 드는 스물 여섯 5월에 나는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을 위한 선택'을 했기에 감사하다.

책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 미친듯이 사진을 찍고 싶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고 어울려 성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유내강'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인냥 마음을 강하게 굳혀보았지만, 나와의 대화로 다져진 나다움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또 다른 나다움을 아는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강함을 가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리는 영국에 도착해도 어떤 곳에 취업이 될지, 스카웃이라도 될 정도로 준비해야 한다는 '틀에 박히고 재미없는' 그런 계획을 하고있었다. 그래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나의 여정의 목적을 정해보았다. 하루에 적어도 두 세명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나에 대해 알아갈 것, 그 공간에 빠져 하루에 최대한 많은 사진을 남길 것. 정말 원없이 뛰놀며 세계를 느끼고 오는 것이 곧 내 스펙이고 자산이 된다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이것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스펙이라는 생각 말이다.

내가 롤모델로 둘 수 있을만한 사람이 있는지 검색을 하면서도 '워킹홀리데이 성공사례, 워킹홀리데이 책' 등등 정답이 없는 문제에 정답을 검색하니 마음에 차는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이젠 어떤 것에 푹 빠져있다가 오고 싶은지, 지금까지 미뤄두고 마음속에만 품어오던 것들을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펼치고 올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하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이 목표만 이루고 온다면 200퍼센트 성공적인 도전이 될 것 같다.

나에게 또 다시 묻는다. '잘'하고 싶은 것 말고, 그냥 가서 하고싶은 게 뭐야? 너무도 자유로운 여행자. 사진을 질리도록 찍는 것. 지금껏 어렵게 참아왔던 것들을 시도하고 나면 그걸 내 평생직업으로 삼고 싶은지, 활용해서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 무엇이든 한 가지 별에는 도착해있을 것이다. 남이 보기에 좋은 것 말고, 내가 좋아서 저절로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얼마전 전시보러 함께 다녀왔던 새별언니가 소정쌤께 '보선님이랑 전시 보고 왔어요!'하고 말했더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선님은 전시를 구경하거나 기획하는 게 아니라 '보선님 자체가 그냥 전시'에요. 이제 전시 그만보러 가고 행동 해요."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드디어 두근거리고 설레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눈이든, 힘이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뭐가 대수야. 그럼, 전시준비 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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