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유재하를 기리며
세상에 없는 노래를 파는 레코드숍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여기에는 지금 우리가 듣고 있고, 들을 수 있는 노래는 단 한 곡도 없다. 그곳의 진열장 ‘ㅅ’ 칸에는 <신중현과 엽전들> 3집(1976년)이 있다. 이 음반은 오직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다. 신중현과 엽전들은 1집 <미인>(1973) 과 2집의 <아름다운 강산>(1974)이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슈퍼 록밴드가 되었지만 이듬해 신중현이 대마초 파동(1975)에 휘말리면서 활동이 전면 금지된다. 그 사건은 후에 군사정권의 계획적인 탄압으로 밝혀졌다. 저쪽 세계에선 두 장의 음반을 끝으로 해체되었지만 이쪽 세계의 신중현은 그저 음악에 매진했고 록의 역사를 빛낸, 비기 어린 음반을 발표한다. 세상에 없는 노래 레코드숍에서 신중현과 엽전들 3집은 40년이 지나도 꾸준히 팔리는, 해외에서 직구 요청도 종종 받는 스테디셀러다.
‘ㄷ’ 코너에는 동방신기 5집이 있다. 표지에는 다섯 멤버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동방신기는 4집 <미로틱>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최절정의 인기를 누리다 돌연 일부 멤버와 소속사 사이의 분쟁으로 해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해체를 반대하는 팬들의 목소리에 고민을 거듭한 멤버들은 극적으로 갈등을 봉합하고 그간의 아픔과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정규 5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2010년에 세상에 없는 노래 레코드숍 월간 최대 매출을 기록한 효자 상품이다. 바로 옆에는 재결합한 듀스의 음반이 있다. 대중과 평단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발매 당시 미지근한 평가와 함께 명성에 걸맞지 않은 판매량을 거두었다. 이들은 다시 해체했고, 듀스라는 이름으로 음반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레코드숍 사장님은 순전한 호기심에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장부를 정리하는 데에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는 결과를 보고 조금 놀랐다. 서태지와 아이들 재결합 음반을 비롯해서 예상한 음반들이 있었는데 모두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 매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유재하 2집이었다. 생각해보니 그제도 유통사에 최신 음반들과 함께 주문을 넣은 기억이 났다. 유재하 2집은 발매 당시부터 발라드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폭발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매출 그래프가 고점에서 저점으로 완만하게 떨어지는 모양은 신중현과 엽전들 3집과 비슷했지만 꼬리가 두세 배는 더 두툼했다.
2집의 대성공은 대중이 유재하에게 갖고 있던 신뢰와 기대감 덕분이었다. 1987년 발표된 유재하 1집은 수개월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타이틀곡이 아니었던 ‘지난날’을 튼 것이 계기가 되어 서서히 알려지게 된다.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 내 품에’ 같은 사랑 노래가 대학생들의 애창곡이 되면서 음반은 젊은이들의 필수 소장품이 되었다. 마르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어딘가 불안한 목소리의 스물여섯 살 청년은 텔레비전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인기 신인가수가 되었다.
그의 등장은 가요 관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재하 이전에 한 아티스트가 음반 전체를 작사, 작곡, 편곡하고 노래까지 한 경우는 없었다. 작사, 작곡은 직접 해도 편곡은 전문 편곡가의 영역이었다. 대중음악 뮤지션이 한 장의 음반에 자신의 음악성을 전적으로 펼쳐낸, 진정한 의미의 싱어송라이터가 등장한 것이다. 그의 음반이 갖는 의미는 수준 높은 음악성으로 구현된 그만의 감수성이 오랜 세월에 걸쳐 대중의 감성에 스며들었고, 그것이 우리 가요의 정서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단지 훌륭한 가요인 것을 넘어 우리의 문화적 DNA에 새겨진 정서적 뿌리가 되었다.
유재하 2집은 1990년에 발표된다. 3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은 대중의 높아진 기대에 부합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실 1집 수록곡들은 그가 수 년 동안 써놓은 곡을 모아 추린 것이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위대한 탄생 밴드’에서 연주할 때 조용필을 위한 곡을 썼고,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할 때는 김현식에게 여러 곡을 들려주었다. 그때마다 노래는 고급스럽고 좋은데 대중적이지 않다는 평을 들었다. ‘사랑하기 때문에’(조용필), ‘그대 내 품에’(김현식)가 발표되었지만 그가 머릿속에 그렸던 감성과는 무언가 결이 달랐다. 그는 고심 끝에 직접 노래하기로 결심했는데 그게 신의 한 수가 될 거라 예상한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의 2집에는 세대에 걸쳐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될 명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의 정서를 이어받은 타이틀곡은 섬세한 멜로디와 시적인 노랫말로 한층 원숙해진 뮤지션의 면모를 보여준다. 정교하고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이 돋보이는 이 노래는 한국적 발라드의 정수라 할 만하다. 이후 유재하의 행보는 신세대 스타로 떠오른 신해철, 윤상 등과 협업하며 컴퓨터 음악을 접목한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는 가수보다는 오케스트라 편곡자로 수많은 음반에 이름을 올리고, 당대의 가수들에게 곡을 써주어 작곡가로서 여러 히트곡을 남긴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오래도록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그가 부르고 작곡한 수십 곡의 노래는 매년 리메이크되고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에 사용되고 있다. 어느덧 50대 후반이 된 유재하는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세상에 없는 노래 레코드숍’이 있는 저쪽 세계에서 그는 전설적인 뮤지션으로 명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이쪽 세상에서 그의 삶은 1987년에 멈춰 있다. 그는 한참 인기를 모으던 그 해, 한남동 강변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의 재능과 영감을 빌려 세상에 나올 수도 있었을 수많은 노래도 그와 함께 묻혔다. 이곳에 유재하 2집 음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많은 젊은이가 그의 음악을 들으며 뮤지션의 꿈을 키우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며,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르며 행복해하고 위로받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올해도 11월 1일이면 라디오에서, 방송에서, 거리에서 그의 짧은 음악 인생을 기리며 노래가 흘러나올 것이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없는 그의 노래들이 아쉬워진다. 나에게 세상에 없는 노래 레코드숍에서 단 한 장의 음반을 가져올 수 있게 해준다면 나는 아무 고민 없이 유재하의 두 번째 음반을 집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