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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성 Jan 17. 2022

내가 싱어게인에 출연한 이유_3

3화. 멈추지 않은 한 실패는 없다.

43호 가수


나는 43번 번호표를 달고 있었다. 스튜디오에는 나를 포함한 73명의 뮤지션이 자신의 이름 대신 번호를 달고 단상에 서 있었다. MC 이승기가 무대에 올랐다. 방송에서 봤던 친근하고 유쾌한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는 편안하면서도 능숙하게 방송을 진행했는데, 싱어게인의 MC로 이보다 적절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참가자들의 동료이자 동경하는 스타로서, 겸손하게 참가자들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오프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주위의 참가자들을 살펴보았다.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여기에 선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음악을 해왔을까? 어떻게 노래하고, 또 어떤 개성을 지니고 있을까? 싱어게인 시즌1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번 시즌2에 실력자들이 대거 몰릴 거란 예상이 많았다. 콘텐츠 시즌2의 법칙. 더 큰 스케일, 더 강력한 스토리텔링! 73명의 참가자들 중에는 놀랄 만한 실력자가 즐비할 것이었다.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규모의 오디션 방송에서, 예리한 8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지금 가장 폼이 좋은 가수들 사이에서 노래할 생각을 했다니. 지금 나의 컨디션으로는 좋은 노래를 들려줄 자신이 없었다. 이런 무대에서 또다시 형편없는 노래를 들려주고 내려오게 된다면 나는 그 상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스튜디오 밖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미 카메라는 돌고 있었다. MC가 오프닝을 마무리하며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싱어게인 시즌2, 경연을 시작합니다!”



음악의 서사


1회차 경연은 3일에 걸쳐 촬영되었다. 내 무대는 두 번째 날로 예정돼 있었고, 첫째 날은 종일 대기실에서 다른 참가자의 무대를 관람했다. 나는 슈가맨조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다들 시험을 앞둔 학생들처럼 목이 안 좋다고, 연습을 못 했다고, 잠을 못 잤다고 한마디씩 했다. 특히 모세는 척추 수술을 해서 얼마 전까지 목에서 소리가 안 났다고 엄살이 아님을 강조했는데, 나는 그 얘기를 웃으며 흘려들었다. 기본기가 좋고 발성이 안정적인 친구이기도 했고, 목이 안 좋다면서 쉬지 않고 수다를 떠는 걸 보니 괜찮겠구나 싶었다.     


대기실에서 합격과 탈락에 대한 리액션과 무대에 대한 평가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대체로 침묵하고 있었다. 다음날 무대에 영향을 줄까 봐 말하는 걸 자제했다. 조금만 오래 말하면 노래할 때 바로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묵묵히 참가자들의 노래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나의 무대는 한 사람의 음악의 서사가 써지는 것이었다. 방송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대를 망친 사람, ‘all again’을 받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린 사람, 예상 밖의 탈락에 낙담한 사람. 저마다 서사의 여정 속 한 고비를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그들에게 따듯한 조언과 위로를 전했다. 싱어게인이 다른 오디션 방송과 가장 다른 점은 참가자를 동료로서 존중한다는 것이다. 참가자의 마음을 배려하는 심사평을 들으며 그 말들이 왠지 내 마음을, 음악에 대한 나의 울분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아서 울컥, 하고 눈물이 났다. 노래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에서 내 젊은 시절이 겹쳐 보였다. 동료로서 그들의 음악 여정을 응원하고 걱정하며 무대를 보았다.


회한의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은퇴 경기를 치르는 노장 선수처럼 이곳 대기실에서 혼자만의 고별 무대를 준비했다. 정말 아쉬운 건 노래에 대한 숙제를 풀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억지로라도 마음에 남은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들키지 않게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닦았다. 정말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니 밀려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대를 보는 내내 얼굴을 반쯤 가리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 평정심? 그런 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밤 10시경 스튜디오를 나섰다. 다음날 무대를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차를 몰고 자유로를 달리는데 꾹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오랜 세월 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외면하고 억누른다고 그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노래로 인해 받았던 상처, 사람들의 실망한 표정들, 내가 놓친 기회들, 고된 연습의 과정과 그 동안 쌓아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날 덮쳤다. 나는 참지 않고 그냥 울어 버렸다. 내 감정과 상처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야 내일 무대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패한 가수


싱어게인 무대는 리허설이 없다. 각자 목을 풀고 컨디션을 조절하다가 순서가 되면 바로 경연에 임해야 한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그래서 준비된 뮤지션만이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나는 먼저 무대에 오른 모세의 노래를 대기실에서 보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 모세는 목이 다쳤다는 걸 전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훌륭하게 무대를 마쳤다. 그는 7표의 어게인을 받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나는 목을 풀며 소리를 내보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스텝이 대기실로 들어와 말했다.


“43호 가수님, 지금 무대로 이동할게요.”     


스텝의 안내를 받으며 무대로 향했다. 세트 뒤로 이어진 어둑한 통로를 지나는데 향수처럼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긴장과 떨림마저도 그리울 것 같았다. 무대에서는 59호 가수가 댄스곡 ‘Storm’을 부르고 있었다. 59호는 20년도 더 된 노래를 전성기 때처럼 흥겹게 춤을 추며 멋지게 소화해냈다. 부러웠다. 난 어떤 무대를 보여주게 될까? 노력한 것의 절반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까? 나도 내 노래를 멋지게 불러서 저런 환호를 받고 싶었다. 처음부터 나의 목표는 ‘다시 노래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MC가 43호 가수를 호명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무대 가운데에 섰다. 심사위원들은 조금 지나서야 날 알아본 듯했다. 무대에서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긴 세월 동안 훌륭하게 음악을 하고 있는 그들이 존경스럽고 위대해 보였다.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동료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게 기뻤지만, 한편으로 이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주게 될까봐 걱정이 됐다.


    

MC가 공통질문을 던졌다. “43호 가수님이 싱어게인에 지원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내 마음을 어떻게 한 마디로 전할 수 있을까? 작가와 함께 정한 답변이 있었지만 그건 너무 형식적이었다. 실패, 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방송에서 그런 표현을 한다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그 말을 하지 않고서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심사위원들에게 그 말을 뱉으려니 가슴을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 했다.      


“실패한 가수로 기억에 남고 싶지 않아서 싱어게인에 지원했습니다.”     


뜻밖의 표현에 MC도 조금은 당황한 듯했다. 나는 목을 다치게 된 당시의 상황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중 앞에서 노래에 대한 내 속마음을 이야기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털어놓고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내가 이 자리에 선 건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동료들에게, 날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 좀 알아주세요' 하고 칭얼거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제 노래를 부를 시간이었다. 심사위원들이 따듯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불이 꺼지고 핀 조명이 무대를 비췄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인터뷰하는 동안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느꼈는데, 제발 문제가 없기를 바랐다. 내 컨디션이 어떨지는 첫 마디를 부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전주가 흐르고, 나직하게 첫 음을 뱉었다. 좋지 않았다. 아니 최악이었다. 목소리가 방송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예상을 벗어난 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연습을 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제멋대로 떨리는 음성으로 노래를 이어갔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떨렸지만, 그 안에 희미하게 내 소리가 들렸다. 내 소리가 어려움 속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것이 느껴졌다. 엉망으로 망가진 노래지만 그 안에 연습할 때의 건강한 호흡과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 리듬과 느낌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노래는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었다. 노래를 망쳤다는 자괴감보다 가수 인생의 마지막 무대를 온전히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후렴구인 ‘그대와 나 영원히 행복할 그곳’을 있는 힘을 다해 불렀다. 마지막 가사 ‘헤븐’에 모든 마음을 담아 노래를 마쳤다. 그 순간, 20년 전 음악방송에서 노래를 마쳤을 때처럼, 멜로디의 여운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눈을 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불이 켜진 세 개의 어게인이었다. 한 표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노래 실력이 아니라 내 심경을 헤아려주고 공감해준 것이어서 더 감사한 마음이었다. 심사위원석에서 규현 씨가 흐느끼는 모습이 보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어서 나 역시 당황했다. 촬영장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다시 왈칵 눈물이 났다. 더 이상 덤덤하지 않았다. 무대에서 절대로 울지 않기로 다짐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아름다운 무대”였다는 윤도현 심사위원의 말은 처음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엉망인 노래가 뭐가 아름답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그것이 진심으로 전한 말이었다는 걸 안다. 그는 내 노래를 마음으로 들어준 것이었다. 이선희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들었다.      


"멈추지 않는 한 실패는 없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밟고 있다면, 놓지 않는 그 순간까지 계속 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목표하는 그 선에 닿을 때까지 놓지 않길 바랍니다."     


그 말은 그날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내 마음속 이야기를 그대로 대변해주는 것이었다. 이선희 심사위원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규현씨, 김이나씨, 유희열 씨가 차례로 위로와 응원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내 무대는 끝이 났다.      


나는 방송이 된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이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내게 응원을 보내주게 된 건지 사실 다 이해하진 못한다. 내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이 느낀 나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는 것 같고, 내 모습에서 자신의 인생을 투영하는 분도 있는 것 같다. 싱어게인에서 나의 무대는 한순간의 실수로 긴 세월 고통받고, 그것을 되돌리려 애쓰지만 계속 실패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의 짧은 완결이다. 방송이 나가고 많은 분의 응원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은 아니다. 는 이번에도 노래하는 데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메시지는 남았다. 나는 이 무대를 통해 '당신은 나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신이 인생의 과정에서 무언가 실패해 어려움에 처했다면 그걸 되돌리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 나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이번 방송을 통해서 모든 실패가 무의미하거나 좌절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진심을 다한다면 누구도 당신의 삶에 실패라는 꼬리표를 달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싱어게인은 내 인생 다시 없을 값진 실패였다.

      

응원해 주시고, 내 이야기에 공감해 준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더 용기 내겠다.


김현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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