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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Jan 19. 2017

곶자왈이 있는 길, 제주올레 11코스

시작은 쓸쓸했고, 끝은 행복했다.


모슬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왠지 쓸쓸했다. 제주 서쪽 지역에선 꽤나 큰 마을인 모슬포였지만 거리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지금은 커다란 횟집으로 바뀐 파랑도 다방은 쓸쓸함의 정점을 찍듯 황량하고 처량해 보였다. 내 마음은 잠시 방황을 하고 있었다. 이리 쓸쓸한 곳을 들뜬 마음으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는 것을 원망하며.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길을 따라 몇 발자국만 걸으면 그 마음이 금세 사라지게 될 것이란 걸. 바람의 냄새가 쓸쓸함을 원망했던 내 마음과, 끈적한 니코틴처럼 찌들어 있던 내 머릿속을 말끔히 가시게 해 줄 것이란 걸.



억새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억새는 제주의 풍경 중에 없어서는 안 될 존이다. 맑은 날엔 은빛을 내며 바다와 함께 물결을 이루고, 흐린 날은 솜털 같은 송한 몸으로 회색 하늘을 보듬어 주기 때문이다. 억새는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에 보답하듯 제 몸을 가볍고 탄력 있게 흔들어댄다. 그 모습이 고마워 그 곁에 다가서 보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는 억새는 볼품이 없다. 그렇기에 억새는 멀리서 보아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두 눈을 먼 바다에 초점을 맞추곤 관심 없는 듯 잠시 흘깃하며 한쪽 눈에 허상처럼 그 모습을 갖다 놓아야  매력적이다. 그러면 눈은 바다를 바라보지만 마음은 억새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져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된다. 마음에는 너무도 선명했기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모습으로.

  


한적함


제주올레 11코스는 모슬포에서 시작하여 무릉리까지 중산간을 향해 걷는 길이다. 출발점에서 보이는 바다는 길을 걷는 동안 가까이서 보게 되는 마지막 바다이다. 제주에서 바다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늘 머무르던 곳을 떠나는 것처럼 허전하다. 물론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전봇줄에는 참새가 나란히 앉아 올레꾼을 배웅하고 있었다. 친구인 참새들도 수풀 어디선가 짹짹거리고, 그 소리는 바람의 소리와 함께 세상엔 두 개의 소리만 존재하는 듯, 선명하고 명료했다. 나만이 오롯이 느는 한적함이었다.


모슬봉으로 향하는 길


나무


모슬포 읍내를 지나 모슬봉을 향하던 중 나무를 보았다. 유독 이 길이 있는 대정지역은 홀로 서있는 나무가 많다. 대부분 하늘을 배경 삼아 서있어 시선은 거의 위를 향하게 된다. 나무의 실루엣은 카메라의 셔터를 한없이 누르게 한다. 움찔하며 마음이 동하는 순간마다 그 모습을 담아보지만, 사실 모습들은 거의 똑같다. 왜 그러지 아니하겠는가? 거의 매 초마다 셔터를 눌러 대니. 하지만 한 장 한 장 사진 속에 담긴 마음은 모두 다르다. 신기하지도 경외스럽지도 않은, 늘 볼 수 있는 나무들이었음에도. 


  

모슬봉 숲길


차가 한대 겨우 지날만한 포장된 길이 나왔다. 아스팔트가 아니었더라면 오붓한 오솔길이 되었을 길이다. 경사가 길게 이어져 오르면 오를수록 숨이 차올랐다. 한 발짝 두 발짝 걸음을 옮기던 중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여왔다.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페달을 구르지만 지긋하고 길게 이어진 경사는 근육질인 그의 두 다리를 무색하게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두발이 되어 주던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고 있었다.


빠름은 쉽게 지치기에 포기도 빠를 수 있다. 하지만 꾸준함은 늦는다 해도 결국 그 끝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땐 빠름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늦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목표한 만큼 꾸준히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덕을 넘어야 길이 이어지듯 그래야만 또 다른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자전거를 끄는 이도 천천히 한 발자국식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파른 길이 길게 이어지는 모슬봉 숲길. 길은 길고 진득하니 어어져 있다. 그래서 천천히 올라야 한다.


지나온 풍경


모슬봉을 올라 중간쯤에 다다르니 시야가 트이며 눈이 번쩍 뜨였다. 제주 사계 지역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먼저 형제섬과 송악산이 보였다. 맑은 날이 아니기에 먼 바다는 뿌연 안갯속에 가려 흐릿했지만, 되려 자욱한 불투명은 형제섬을 낭만적으로 꾸며주고 있었다.


시선의 방향을 바꾸니 산방산과 단산도 보였다. 산방산은 형처럼 듬직했으며 단산은 그 곁에서 동생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좀 더 먼 곳을 바라보니 흐릿하게 화순을 지나 대평리의 박수기정도 보였다. 아마득히 멀게 느껴지는 저 길들을 걸었던 적이 생각났다. 멀게 보였지만 마음은 마치 그 길 위에 서있는 것처럼. 지금 이 길을 걷고 나면 난 또 어느 길에선가 지금의 이 길을 생각할 것이다. 먼 곳에 시선을 두고 한참을 머물렀다. 그 미래의 기억을 위해. 


산방산 너머 저멀리 대평리의 박수기정이 보인다


모슬봉


무언가 감동적이고 근사한 것을 기대했지만 모슬봉 정상에는 오를 수가 없었다. 군사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철조망 주변으로 길만 있을 뿐 한숨 돌리며 잠시 쉬어 갈 공간도 없었다. 그저 정상 주변을 따라 올레 이정표를 따라 걷기만 할 뿐. 그렇게 걷다 보니 조금은 허무하게 오름 정상을 지났버렸다.


터벅터벅 내려오는 길에 구름과 빛을 보았다. 빛들이 없었다면 저 구름들이 저리 멋지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구름이 없었다면 저 빛들이 저리 환하고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얻는 것도 없이, 잃는 것도 없이 자연은 조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철조망을 바라보며 느꼈던 허무한 마음을 위로하듯.



삶의 이치


모슬봉을 내려오는 길에 많은 무덤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묘는 적은 나이가 쓰여있는 고인의 묘도 있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슬픔일까?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지내던 가족, 그리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모두에게 비극적이고 슬픈 일일 것이다. 묘비를 보며 생각했다. 누구보다 훗날에 태어났다고 하여 떠나가는 그날이 꼭 그보다 훗날이라는 것이 삶의 이치일까? 어쩜 묘비에 새겨진 아직 피지 못한 나이의 숫자가 주는 당황스러움처럼 예측할 수 없고 불규칙한 것이 삶의 이치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 너무 당연하고 식상한 말이지, 그렇다 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지 힘들고 괴롭다 하더라도, 먼 훗날 어느 누구도 예상 못할 상황에서 오늘이 그립지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모슬봉 아래에는 많은 묘들이 있었다.


아이슬란드와 제주


몇 해전 아이슬란드를 여행했을 때가 기억이 났다. 난생처음 보는 원시 지구 같은 모습과 광활한 자연에 감탄하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곳의 평원을 볼 때면 늘 생각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평원이 멋질까? 아니면 제주의 평원이 멋질까?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넓은 평원을 볼 때마다 난 항상 그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결국은 제주가 더 좋다고 결론을 내렸다.


태고의 신비를 안은 듯 경외스럽던 풍경은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놀라움이었지만, 그럼에도 제주가 좋았던 이유는, 포근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나라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제주의 모습은 광활한 대지의 모습보단 사람의 마음에 온기를 주는 따스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돈된 관광지 보단, 저처럼 홀로 서있는 나무들과 지평선을 따라 이어지는 검은 돌담 때문이다. 게다가 변덕 심한 날씨마저 신비로운 모습들을 만들어 내니 그저 좋기만 할 뿐이다.



경건한 길


대정 지역은 여러 역사인물들의 유배지 이기도 하다. 그중 한 분인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를 와 모슬봉에서 보았던 단산이 있는 마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그곳엔 '추사 유배의 길'이 만들어져 추사 선생의 흔적을 따라 걷는 길도 있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였던 정약용의 조카인 정난주도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천주교 입교 후 많은 박해를 받았으며 남편이었던 황사영의 백서 사건 때문에 어린 아들과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유배 생활중 자신이 죽더라도 아들은 평생 노비로 살아야 하기에 젖먹이 아들을 몰래 추자도로 보내게 된다. 그녀의 아들은 비밀을 간직한 채 오씨 성을 가진 어부의 손에 키워지게 되고훗날 그녀 아들의 비밀을 알게 된 후에는 추자도에서는 황씨와 오씨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대정 지역은 예전부터 아픔이 많은 지역인 것 같다. 일본군의 전초기지가 있어 주민들이 희생을 당했고, 그래서 알뜨르 비행장과 모슬봉엔 일본군의 군사시설이 지어졌다. 그리고 김정희 선생, 정난주 마리아와 같은 인물들이 유배를 왔던 곳. 그래서 11코스에 속해있는 대정 지역은 아픔과 슬픔이 서린 경건한 길이기도 하다.


정난주 마리아 성지


곶자왈


제주의 바람은 강하다. 그것도 아주 강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지만 꽃피는 따스한 봄날에도 어느 때는 겨울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하지만 곶자왈에 들어서면 여름의 후덥지근함도, 봄, 가을의 쌀쌀함도 그리고 겨울의 차가움도 무용지물이 된다. 여름엔 적당한 시원함을 전해주고 겨울엔 바람 없는 훈훈함을 전해주어 일 년 내내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온화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11코스에 속해있는 신평지역엔 곶자왈이 있다. 거세게 몰아치던 바람도 이 안에 들어서면 어디론가 사라져 고요함과 포근함남는다. 곶자왈에 들어서니 울창하게 덮여있는 나무들과 얼마의 시간 동안 겹겹이 쌓였는지 모를 두터운 이끼들이 보였다. 녹색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온 세월을 담고 있기에 검은빛이 섞인 진중함은 조금 무서운 생각까지 들게 했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아 요정이라도 나올 것처럼 겸손한 마음이 들게 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 왜 곶자왈을 제주의 허파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처럼 신비롭고 영험하게 느껴지는 곶자왈이지만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땐 휴대폰이 되지 않는 곳도 있으니 반듯이 이 길을 걸을 땐 올레 리본만을 따라 걸어야 한다. 신비로운 아우라에 홀려 다른 길로 들어서거나 어두워질 때 걷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낮에도 어둑할 정도이니 될 수 있으면 해가 환하게 떠있는 시간에 올레 리본을 따라 걷는 것이 좋다.


신평 곶자왈


무릉리


곶자왈을 나오니 길은 이제 끝을 향한다. 대부분 올레길을 마칠 때면 바다가 나타나 여정의 끝을 반겨주곤 했지만 11코스는 중산간으로 걷기에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고요하고 적막한 마을인 무릉리가 나온다. 


모슬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앞에서 걸었던 사람들과 내 뒤에서 걸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누군가 말문을 트며 건넨 모슬봉과 곶자왈의 이야기에 저마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 속에는 길을 걸으며 느꼈던 나의 마음이 똑같이 묻어나 있었다.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던 중 우리가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지만, 버스가 모슬포에 도착할 때까지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 길을 걸었던 나도, 정류장에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들 모두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길에선 그 길 위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올레 11코스의 종점 무릉 생태학교. 이곳은 폐교를 이용하여 생태학교로 바꾸어 운영 하는 곳이고 숙박도 할수 있다.
11코스와 14-1코스의 종점이며 12코스의 시작점인 무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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