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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Dec 21. 2016

온평에서 표선까지, 제주올레 3코스

길 위에선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가 중요했다.


준비


올레길을 가기 전의 마음은 분주하다. 그러한 이유는 날씨가 어떨지 몰라 수시로 기상 상황을 알아보며 마음을 졸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기상청은 그리 신뢰를 받지 못하고 그보다 더 한 것은 제주의 날씨는 너무 변화가 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흐리다 가끔 비가 온다 라는 식의 날씨가 예보될 때면 나의 30리터 배낭은 최대로 부풀어 오를 만큼 많은 것이 담기게 된다. 바람을 막아줄 바람막이 점퍼. 비가 올 때를 대비한 우비. 비에 젖을 것에 대비한 여벌의 옷들, 양말, 기타 등등. 이처럼 준비를 하다 보면 정말로 유용하게 쓰일 때가 대 부분이지만 때로는 내용물 중 3분의 1은 사용하지 않고 고스란히 다시 갖고 올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느 등산가가 했던 말을 존중한다.


" 등산을 하기 전 준비는 프로처럼 해야 하고, 산을 오 초심이 가득한 아마추어처럼 올라야 한다."


트레킹과 등산은 다르긴 하다. 하지만 언젠가 간간히 내린다는 비 예보를 듣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가 무방비로 비바람 속을 걸었던 적이 있어 그 말의 의미를 절실히 느낀 적이 있다.


그처럼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차를 차고 다니는 여행보다 훨씬 힘들고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그 한 예로 어느 코스 같은 경우는 길 중간에 식당이나 매점이 없어 밥때를 놓쳐 점심을 굶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마치 어느 성직자가 해탈의 경지로 모든 것을 비운채 성지순례를 할 때가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상태에서 정 우연히도 때로는 기적적으로 작은 상점을 발견했을 땐 그 상점 안의 모든 것들은 호텔 안의 샹들리에처럼 빛나 보인다. 또한 그곳에서 마시는 이온 음료는 음료 이름 앞에 왜 이온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지를 제대로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길을 마친후의 식사는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가 되곤 한다.


제주에 가면 매번 가는 제주 터미널 근처 기사식당인 현옥식당의 두루치기이다. 맛도 좋고 값이 싼 대신 조리까지 모든것이 셀프이다.



동일주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어느 해 9월 말.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동일주 버스를 타자 꽤 많은 올레꾼들이 보였다. 복장으로 봐선 분명 올레꾼처럼 보이는 사람. 저 사람들 중 혹시 3코스를 걷는 사람이 있을까? 하며 기대해 보았지만, 1코스 시작점인 시흥초등학교에 도착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렸고, 성산항 입구에 도착해선 모든 사람들이 내렸다. 그리고 버스에는 할머니 몇 분과 나만이 남게 되었다. 잠시 후 버스는 온평 초등학교라고 쓰여있는 정거장에 나만 덩그러니 남겨 놓은 채 종점을 향해 떠나 버렸고, 정오를 향하던 태양은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뜨거운 햇살을 쏘아 대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버스 안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3코스를 걷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해했던 이유는, 제주 올레 3코스는 올레 코스 중 꽤나 긴 코스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나긴 길을 홀로 걸을 땐, 이 길 위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3코스의 전체 길이는 약 21킬로이다. 보통 걷는 시간을 가늠할 때 1시간에 약 4킬로를 계산 하지만 사실 이렇게 걷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를 대 본다면 일차적으로는 무엇보다도 나의 체력이 따라주지 못할 것이고 다음으로는 이쁜 꽃이 있으면 사진도 찍고, 잠시 올레길을 벗어나 멀리 보이는 해변의 등대에도 갔다가 하는 것처럼 놀멍 쉬멍 해찰을 부리며 걷다 보면 1시간에 2킬로도 못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전부를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올레길은 걷는 이의 마음대로 걸으면 된다. 제주올레의 모토인 간세다리 놀멍 쉬멍 하며.


처럼 3코스는 온평포구에서 출발을 하면 바로 중산간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우리가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운치 있는 카페나 쉴 곳이 거의 없다. 게다가 식사할 곳도 마땅치가 않다. 식당 간판이 보여도 영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다. 그래서 행여라도 물이나 간식거리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출발하기 전 온평포구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올레 3-A코스는 온평포구 → 난산리 → 통오름 → 독자봉 → 김영갑갤러리 → 신풍신천바다목장 → 배고픈다리 → 표선 해비치 해변으로 이어진다.



온평포구


그처럼 먼 길을 가야 하지만 나는 온평포구에 한참이나 머무르다 길을 시작했다. 그러한 이유는 걸으며 여행을 하다 보면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번 지나친 길은 다시 되돌아 가기가 힘들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문득 아까 전에 보았던 해변에 다시 가보고 싶다거나, 이미 지나쳤던 모습이 다시 떠올라 사진으로 담고 싶을 때 걷기 여행에선 그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걸으며 하는 여행은 아쉬운 것이 많은 여행인 것 같다.



온평포구를 출발하여 걷다 보니 신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논에 벼가 영글어 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논에 벼가 있는 것이 왜 신기한지 반문하겠지만, 제주는 물을 대어 벼농사를 짓는 것이 힘들다. 이유는 비가 많이 내림에도 저수지처럼 물을 대기가 어렵고 육지처럼 흐르는 강물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는 7-1코스에 속해 있는 '하논'이라는 지역이 논에 물을 대어 벼농사를 짓는 유일한 곳으로 알고 있다. 이 곳의 벼는 물을 대지 않고 마른땅에서 자란 벼이지만 그래도 이마저 보기가 여러워서 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통오름과 독자봉


길은 난산리를 지나고 나면 통오름을 오르게 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통오름은 물건을 넣는 통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오름처럼 높지 않은 나지막한 오름이지만 제주의 오름은 어디를 올라도 좋기 때문에 통오름 또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정상에는 넓게 잔디가 깔려 있고 그곳에 호젓하게 앉아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먼 풍경을 바라보면 지루할 것 같은 길도 그 생각을 잊게 한다. 그리고 길은 바로 독자봉으로 이어지며 방금 전 통오름에서 보았던 풍경들을 이어 주게 된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제주의 오름은 늘 옳은 것 같다.



독자봉을 지나니 파란 하늘 아래로 울창한 숲길이 나타난다. 성산읍 신산리 어디쯤인 이곳은 특별한 지명은 없지만 이런 길을 걸을 때면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세울 특별한 무엇은 없어도 호젓한 숲길의 정취와 나무들의 숨에서 뿜어 나오는 싱그러운 향기가 좋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주가 좋은 것은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 중 산간 어느 곳이든 길을 나서도 이런 길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 호젓하고 좋아 오롯이 나에게만 주어진 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이런 숲길은 꼭 걷기 여행을 해야만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 해도 작은 숲이 보이면 잠시 차를 멈추고 숲을 걸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어쩜 정형화된 관광지의 모습보단 우연히 마주한 숲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공적이지 않은 제주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것들. 그것들이 제주를 다시 찾게 하는 이유 인가 보다.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인적 없는 길을 지나 숲길을 걷다 보니 집도 보이고 도로도 보이는 것이 아기자기하며 반갑게 느껴진다. 삼달리이다. 이곳에는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가 있다. 황홀한 제주의 사계절을 사랑했고, 용눈이 오름을 수도 없이 오르며 순간을 담아내었던 작가 김영갑. 그는 본래 충남이 고향이지만 이곳 제주에 내려와 폐교였던 삼달 초등학교를 사진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그의 발자취와 작품들을 보며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하나에 몰두하여 그것에 평생을 바치고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만을 생각하며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놓을 수 없는 것. 그러기 위해 순수의 마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담아야 하고 육체를 추스르지 못할 만큼 힘겨운 상황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것. 그처럼 김영갑 작가는 제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 2005년 세상과 이별을 하였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사진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그의 뼈는 두모악 마당에 뿌려졌다고 한다.



갤러리 안에는 생전의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제주의 꾸밈없는 모습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엔 자연의 모습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 그 사진들을 보자 언젠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내 어머니의 젊으셨을 때의 사진 속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어머니의 모습이었고 그 모습엔 젊고 푸른 여인의 꿈과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여인의 모습은 지금의 젊은이들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사진 속 그 젊음이 아쉬워 난 가끔 어머니에게 슬며시 물어보곤 한다. 어머니의 어릴 적. 그러니까 아주아주 먼 당신의 학창 시절 친구들의 이름을. 그러면 어머니는 어제까지도 함께 있었던 듯, 누구누구 하며 당신 친구분들의 이름을 대시곤 한다. 나에겐 외갓집인 어머니의 고향 동네에서 함께 살았던,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러나 어머니는 너무 보고 싶을 그 이름들을.



올레길을 걷다 보면 돌담 안으로 잘 정돈된 밭을 자주 보곤 한다. 그리고 이런 밭을 볼 때마다 나는 깊은 잠으로 일어나기 힘든 아침, 나보다 훨씬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느끼곤 한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사이 부지런함을 평생의 동반자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덕분에, 도로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매일매일 지나치며 보던 것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온전히 그 모습들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변을 보니 인적은 없는데 밭은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 어느 부지런한 농부의 마음처럼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노고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들이 모여져 움직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느껴진다.




신풍 신천 바다목장


아마도 겨울인 지금 이곳엔 감귤 껍질을 말리기 위해 넓은 들판이 주황빛으로 가득 덮여 있을 것이다. 신풍 신천 바다목장은 본래 사유지이며 바다와 인접한 넓은 들판에 말과 소를 방목하여 키우는 곳이다. 제주올레 3코스 열리면서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었다. 목장 옆 바다에선 새찬 바람을 맞으며 부서지는 파도와 그 옆에 펼쳐진 너른 초지가 장관이다. 멀리 소들이 보이고 지평선엔 야자나무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다른 방향으로는 멀리 성산 기상대도 보인다. 오름에 올라야만 볼법한 풍경들이 바다와 함께 펼쳐지고 있었다.



목장을 걷다 보니 햇빛이 쨍쨍했던 날씨는 갑자기 바람이 불며 배낭을 짊어진  몸까지 날려 버릴 기세다. 좀 전까지도 바람 한점 없었는데 정말 알 수 없고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이다. 하지만 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치는 풍경은 마음을 후련하게 했다. 게다가 바람파도의 물보라와 함께 바다 냄새가 강렬히 다가왔다. 파도는 아름답게 보여줄 한계가 어딘지를 알아보는 듯 자신을 더욱 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너무 흔한 풍경이지만 떠나면 늘 생각나는 바다와 파도. 그처럼 물보라가 내 곁에 올 듯 말듯한 바다는 그 색과 움직임이 너무 아름답기만 하다.




배고픈 다리


작은 다리가 보인다. 다리 앞에는 작은 푯말이 서있다. 다리 위로 물이 넘치면 위험하니 우회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간세는 이곳이 '배고픈 다리'라고 안내하고 있다. 다리가 왜 배가 고픈가 하겠지만, 배고픈 다리는 고픈 배처럼 밑으로 푹 꺼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푹'이라는 말이 왠지 너무 배가 고파 아주 깊이 땅 밑으로 꺼질 것처럼 느껴져 작은 비에도 다리가 잠길 것 만 같았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쳐도 사실 이쯤까지 오니 정말 배가 고픈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려 했던 식당이 문을 닫아 버리는 바람에 그러하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생각해 보면 다리 이름이 절묘하다. 마치 이 다리가 올레길에 포함될 거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정말 이쯤에서 어울릴법한 름을 가진 다리이다.




표선


이제 길의 끝이 다가오나 보다. 멀리 표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지의 숲을 걷다 도시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하지만 역시나 길의 끝이 다가오니 방금 전까지 지나온 길이 스치듯 생각난다. 한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보내듯 우리는 시간을 보내며 많은 일들과 마주하고 지나치지만 그것을 다시 되돌리거나 다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그리워한다. 그처럼 걷기 여행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물론 차를 타고 다시 그곳에 가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걸으며 쌓아지던 느낌들과 함께 다시 그곳에 설 거라는 것은 장담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걸으며 느끼지는 감동들은 가슴으로만 기억하는 그 순간만 알 수 있는 행복은 아닐까?



가장 먼저 해가 비친다는 해비치 해변이다. 몇몇 사람들은 물이 허리춤까지 오는 곳에서 조금 철 지난 물놀이를 하고 있고, 백사장에선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 너머엔 둥그런 곡선의 이름 모를 오름이 보이고, 모래밭에 벗어놓은 아이들의 알록달록신발이 이쁘기만 하다. 오름과 바다 그리고 검은 돌이 있는 곳에서 천진난만하게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국적이기도 하고 너무 평온해 보인다. 물끄미 그 모습들을 보며 생각한다. 제주는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누구나 모두에게 참 좋은 곳이다. 물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길다고 생각했던 길이었는데 길지 않았다. 숲길과 바당 길이 섞여 있는 특별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길었던 길이었기에 생각하고 느낄 것이 많았으며, 또 그렇다고 하여 길이 반드시 길어야 된다는 것도 아니었다. 길든 짧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단 길 위에서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길을 걸은 이는 그 안에서 받았던 감동마음에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그리곤 아직 그 길을 걸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이는 또다시 그만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걷고, 그 길 위에서 또다시 새로운 길을 찾으면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인생 속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비록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고 힘들지라도, 결국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행복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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