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내리던 비만큼 행복했던 길,제주올레 1코스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by Ollein


힘이 드는 일은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미리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고되고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그 세상의 한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러한 이유는 평소에 그곳을 동경했거나 이전의 기억이 너무 좋아 그 행복을 뿌리칠수 없어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 들어가기 전 어려움을 마주할 각오는 더욱 강해지고 마음은 긴장감과 설레임에 더욱 두근두근 할 것입니다.


제주올레 축제의 날. 축제가 시작되는 곳엔 축제를 알리는 팡파르도 공연도 없습니다. 오직 비바람만이 몰아 칠 뿐입니다. 비는 바람에 날려 사방으로 퍼져 온몸을 적시고 얼굴에도 매섭게 몰아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이리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길이 좋았기에 길 위에 선 것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기에 어찌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과학은 하늘의 마음을 미리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귀찮고 번거롭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힘들것이 뻔한 이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 되었고, 길 위에는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 걷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어른들과 아이들 그리고 그 길 위에만 서면 행복해하는 사람들이죠.



종달리,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종달리,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툭 툭 툭. 하늘에선 하염없이 비가 내립니다. 떨어지는 빗소리가 온몸을 통해 들려옵니다. 땅은 질척거리고 옷은 젖어 힘이 듭니다. 하지만 길은 우리의 힘든 몸을 아름다운 선물로 보답해 줍니다. 전에 와 보았던 곳임에도 비 오는 작은 마을의 모습은 너무도 매력적 이어 감동이 한가득입니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합니다. 생각해 보니 이처럼 비가 오는 때가 아니면 언제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참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작은 반전의 생각이 힘든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다시 남은 길을 걷습니다.



종달리 마을,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종달리 마을,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세상의 모든 것이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과 열정을 세상은 그리 쉽게 모른 체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길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며 우리의 남은 길을 걷게 하고 힘이 되어 줍니다. 사람들이 오름을 오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처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길 위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고 사진도 찍어 줍니다. 서울, 부산, 순천, 천안, 평택, 제주. 전국 모든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작은 오름의 정상에서 행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늘에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비를 뚫고 멋진 풍경을 보며 함께 공감한 사람들과 걷고 있으니까요. 짧은 순간이라도 똑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커다란 인연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 길이 생각나고, 힘들었던 기억 보단 행복했던 길이었다는 것을요.



말미오름을 오르는 사람들,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말미오름을 오르는 사람들,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알오름과 올레리본,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지미봉,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이야기하고, 웃고, 걷다 보니 마침내 이 길의 마지막 장소에 도착합니다. 신발도, 배낭도, 몸도 젖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모두가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었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축제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 오늘 비가 와서 많이 고생하셨죠? 미안해서 어떡해요... "


비가 와서 미안하다며, 자원봉사자 분이 말씀하십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시는 표정에 잠시 말을 잊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말을 합니다.


" 빗소리 들으며 무념무상으로 걸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


그분들이 미안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분들은 아셨을 겁니다. 제 표정과 제 말속에서 비가 왔다며 원망하지 않고 되려 기쁘게 길을 걸었다는 것을요.



성산,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성산,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분명 비가 오고 세찬 바람이 부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힘들고 번거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비 오는 날에 축제를 하고 길을 걷는 일이 다음에 또 있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늘 맑은 날에만 걷던 사람이 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고 하여 바로 당장 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허락은 하늘이 해주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오늘 이 순간은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오늘 걸은 이 길에 비가 왔다고 하여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또 어떤 이는 오늘의 이 길이 절실하게 원했던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두 개의 마음은 정 반대이지만 두 마음의 거리는 눈길 한번 옮기는 찰나의 순간만큼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것도 한순간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불행은 한순간에 찾아올 수 있지만, 불행을 이기는 것도 한순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불행과 마주했다 하여도 지금의 불행이 오지 않고 그 씨앗이 커져 더 큰 불행이 올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면 되려 현재의 불행이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불행을 이겨 냄으로서 또 다른 불행을 이겨낼 힘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종달리,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멀리서도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반가운 목소리입니다. 학창 시절 그리도 즐겨 듣고 좋아했던 그녀입니다.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노래를 듣습니다. 빗방울은 거칠고 세어지지만 사람들은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네. 오늘은 그녀가 노래한 그런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노랫말처럼 사람들 입가엔 초록색 웃음이 가득합니다. 그 웃음과 함께 비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그런 날에 저도 그곳에 있습니다. 깨끗한 바람이 가슴속까지 불어옵니다. 하늘을 바라봅니다. 비가 내립니다. 그리고 그 길 그곳엔 웃음이 가득한 행복한 사람들만이 있습니다. 휘날리는 깃발처럼 기쁜 날. 지금 이곳이 그곳이고, 오늘이 그 날인 것입니다.


< 그런 날에는 >


장필순.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에는
비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날에는


휘날리는 깃발처럼 기쁜 날에는
떠나가는 기차처럼 서글픈 날에는


난 거기엘 가지
파란 하늘이 열린 곳
태양이 기우는 저 언덕 너머로


난 거기엘 가지
초록색 웃음을 찾아
내 가슴속까지
깨끗한 바람이 불게



시흥 초등학교, 2016 제주올레 걷기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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