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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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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Sep 17. 2022

빈자리

빈자리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오늘도 변함이 없다. 분주히 걷는 사람들이 있는 거리. 차들이 가득한 도로. 신호등. 건물. 가로수와 광고판. 모든 것이 그대로다.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소통은 없다. 침묵만 흘러 지루해 보이지만 나태하지 않다. 존재의 이유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어서다.


그가 퇴직원을 냈다고 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이다. 그와 팀은 달랐지만 힘들 때 서로를 의지했다. 한동안 무덤덤했다. 그가 떠나는 날. 그제야 앞으로 있을 그의 부재가 느껴졌다. 지난날이 생각났다. 힘들 때 서로를 격려하던.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졌다. 마음이 이상했다. 서운하다고 말했지만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부재를 느끼는 것은 갑작스럽다. 부재를 아는 순간 한동안은 마취 주사를 맞은 것처럼 무덤덤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익숙해서다. 익숙함은 마음을 방심하게 한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세뇌되어 의식하지 못한다. 설마 하며 의심 없이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익숙함은 이별을 외면한다. 외면의 내면에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률 높은 사실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외면 속에는 포기, 체념, 인정이 담겨있다. 이 모든 것을 섞어보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된다. 그래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늘 덤덤히 그저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그중 하나가 빠지면 상황은 변한다. 부재가 만든 빈자리는 허망함과 서운함과 슬픔이 되어버린다.


익숙했던 것이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믿음의 마취가 풀리면 어떤 이는 서운하다 하고, 어떤 이는 슬프다 하고, 어떤 이는 허전하다 한다. 그것은 지루하게 보였던 것들이 한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증거다. 잘한 것과 못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변함없이 존재 내 삶의 주변이 되어 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부재를 처음 알게 된 순간에는 아픔을 모른다. 익숙함에 마취가 되어서다. 시간이 지나 마취가 풀려서야 아픔이 몰려온다. 아픔은 눈물이 쏟아지는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잔잔한 모래가 담긴 모래주머니가 가슴을 누를 때 느끼는 묵직한 아픔이다. 그리고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밤. 주르르 눈물이 흐르면 비로소 나는 부재의 흔적인 빈자리를 생각한다. 자리를 채우고 있던 사람과 마음과 의지와 믿음을. 의지하고 있었지만 의지했던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빈자리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아무것 없어 보여도 그 안에는 처음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끝이 있다. 이야기는 누구나 알 수 있을 평범한 일상이라는 이야기다. 일상은 매일 똑같아 벗어나고 싶지만 그럼에도 안식을 준다. 그러나 안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빈자리가 되어서이다. 만일 빈자리가 되기 전 안식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순간 안식은 깨졌을 것이다. 안식은 아무도 모르게 다가온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늘 있 공간, 늘 있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고요가 흐르고 권태롭고 지루하다 해도 당신은 안식 속에 있는 것이다. 안식을 깨지 마라. 안식이 깨지는 순간 빈자리만 남을 것이다. 그 빈자리를 보며 파도처럼 느끼는 섭섭함과 쓸쓸함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안식을 모른 체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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