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인가 모델인가
사진 촬영을 시작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서울의 모 유명 지역에 스냅 촬영이 요청이 들어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떤 사람이 내 상품을 예약했는지 몹시 궁금했다.
띠링~ 고객에게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나라고 합니다. 약속 장소에서 뵙길 바랍니다. 저는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제법 기대에 찬 눈치다.
그런데 이분의 국적을 보니 네덜란드에서 왔다.
'응?'
당시 내 고객은 대부분 해외에서 잠시 들어온 한국계 교포였다. 어느 정도 한국말을 할 줄 알거나, 간단한 영어라면 의사소통이 가능했기에 갑작스럽게 촬영 요청을 해도 문제는 없었다. 물론 나는 영어가 약간은 가능하지만, 프라하를 갈 때 네덜란드를 경유한 것이 다여서 네덜란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 한나는 내가 처음 만나는 네덜란드 사람이었다.
급히 네덜란드에 대해 정보를 찾았다. 우리가 아는 소년이 주먹으로 제방을 막은 이야기 같은 것 이외의 정보 말이다. 암스테르담, 하이네켄 등등 뭔가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암스테르담은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이고, 아름다운 운하도시였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5월쯤이고, 이때 튤립 축제를 한다. 겨울에 비가 많이 온다 등등의 정보를 익혔다. 2017년도에 프라하를 여행했던 것이 유럽 도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흔히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누군가와 만나면, 단순히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과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한다. 게다가 상대방이 외국인이고 이곳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내가 너무 무지하다면 상대가 불안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상대의 국가에 대한 상식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점은 이 직업의 대단한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고객이 전 세계 각지에서 오기 때문에 각 나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습득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편견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한국까지 올 사람들이면 한국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사람들이므로 고객이 먼저 이슈를 말할 때까지는 입에 담지 않는다. 단지 미리 숙지하고 있을 뿐이다.
드디어 촬영 날, 살짝 긴장을 한 상태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나는 한나가 누군지 아주 쉽게 알 수 있었다. 한나는 웬만한 모델보다 키가 컸기 때문이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한 문장,
'네덜란드 사람들은 신장이 매우 크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델 수준이다.'
나는 외모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는 그리 중시하지 않는 편이지만, 한나에게는 일반론이 맞아 들어가는 케이스였다. 그녀의 신장은 지금 기억해도 약 10미터 정도 거리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었고, 그녀의 금발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햇빛에 반사되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정확하다면 지나가는 행인 몇몇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용기를 내어 한나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이었다. 여성이 봐도 아름다운 여성이 있지 않는가. 그녀는 그런 타입이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약간 긴장된 어조로 오늘 촬영 장소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고, 내 영어에 대해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는 확인을 했다. 한나는 아주 경쾌하게
"No Problem."
이라고 대답했다.
'그럴 리가 문제 많은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멋쩍은 미소를 뗬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도 영어는 외국어라고 하지만, 그래도 공부할 기회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애써 긴장을 감추면서 오늘의 촬영을 시작했다. 이런, 아는 게 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