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맛집에 가자.
한참 추운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며칠 전에 고객과 예약이 되어있었는데, 그분은 좀 특별한 요청을 했다. 사진을 촬영하고 싶은데, 자신은 지금 한국이 너무 추우니 가능하면 따뜻한 곳에서 촬영하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조금 난감했다. 겨울철에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겨울 자체를 좋아하거나, 가격이 싸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워도 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은 한다. 그렇지만 평상복을 입는 촬영이기도 하고, 특별한 의상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따뜻한 장소에서 촬영만 하면 되었기에 그녀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왕이면 야외와 실내 촬영이 가능한 곳이고, 너무 멀지 않은 곳이 좋을 것 같아서 궁리 끝에 한 곳을 발견했다. 미리 알아보니 지역화폐 할인도 가능했다. 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수차례 안내 끝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어떤 곳인지 제대로 이해했기를 바랬다. 간혹 나에게 날씨 문제라든가, 개인 사정으로 여러 가지 요청을 할 때가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정확히 할 수 없으니까, 확인에 확인을 하곤 한다.
촬영 당일이 되자,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약속 장소 안내를 잘 모르겠으니 정보를 다시 보내 달라고 했다. 아마도 장소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고객이 외국인일 경우에는 차라리 내가 손님이 있는 장소로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나는 그녀가 묵고 있는 곳을 물었고, 다행히도 우리 집에서 가까운 홍대 근처였다.
"바로 달려갈게요."
일이 잘 풀리려는지 버스를 잡아타고 홍대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청초한 눈망울을 가진 젊은 여성이 서있었는데, 오늘의 고객인 Pham이었다. 그녀는 하노이에서 온 베트남인이었다. 당연히 한국 겨울이 추울 만도 했다. 한국이 두 번째 방문이며 약간의 한글을 읽을 수 있었던 그녀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고 착각을 했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녀가 알고 있다고 했던 장소는 정 반대편이었다... 내가 오길 잘했다.
공항철도를 타고 촬영지에 도착했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촬영지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이곳은 실내는 대형 온실이 있고, 야외는 갈대 공원과 한옥이 있어서 여러 콘셉트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실내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마침 크리스마스 전후라서 화려한 테코레이션으로 장식이 되어있었다. 사진을 찍기엔 좋은 시기였다. 입장 코스를 돌면서 여기저기 촬영을 하고 야외로 나와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촬영이 끝나가자 Pham은 궁금한 듯 나에게 물었다.
" 오늘 촬영 끝나고 특별한 일정 있어요?"
고객이 이렇게 물을 때가 가장 당황스럽다. 어떤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전 촬영은 오후에 촬영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일정이 있다고 대답하지만, 나는 주부이기도 하기에 웬만하면 저녁 늦게까지는 촬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겨울은 극성수기가 아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일정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Pham은 같이 코리안 BBQ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코리안 BBQ... 그렇다. 우리가 흔히 먹는 갈비나 불고기를 먹고 싶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전 세계적으로 여성 혼자 여행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그렇지만 한식, 특히 갈비를 여자 혼자 가서 구워 먹는다는 것은 혼밥에서도 최강 레벨이나 할 수 있는 극강의 행위니까 누군가 동행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백번 헤아리고 남을 것 같았다. 한국에 왔는데 삼겹살, 갈비 못 먹고 가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로컬 식당을 소개해 줄까 하고 내가 사는 마포 도화동의 한 식당에 Pham을 데려갔다. 마포는 내 고향은 아니지만, 마침 지인이 토박이인 사람이 있어서 오래된 식당을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영어 메뉴가 있어 Pham은 메뉴를 이해하는 듯했다. 사실 갈매기살을 어떻게 영어로 설명을 해야 할지 좀 막막했었다. 영상이나 이미지를 보여줬지만 삼겹살이나 불고기보다 덜 유명해서 그런지 솔직히 맛보지 않는 한 잘 모르기 마련이다.
음식이 나오고 고기도 익어갈 때 갈매기 살의 하이라이트인 달걀물을 넣어주었다.
"이게 뭐죠?"
역시나 물어본다.
외국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신기한가 보다.
언젠가 갈매기 살을 먹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는데, 저 노란 국물은 뭐냐고 외국 친구들이 물어봤던 기억이 났다.
"이건 달걀 국물이야'
Pham은 그제야 이해한 듯,
베트남에 있는 한식 식당에서 본 것 같다고 말해줬다. 베트남에도 한국식당이 많고 맛은 있지만 이곳에서 먹는 맛 하고 너무 다르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말이다. 나도 일본에 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제대로 된 한식은 먹기 정말 어려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틈에 Pham은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고기를 더 먹을 줄 알았는데 딱 2인분에 밥 한 공기와 찌개를 먹고 그녀는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사람들은 2인에 고기 3인분이 기본인데 말이다. 다른 고기를 시켜줄걸 그랬나.
"사실 이번 여행은 친구랑 같이 오려고 했는데, 친구가 비자 발급에서 떨어졌어."
'응?'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가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노이는 젊은이에게는 재미없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아이돌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친구와 함께 여행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했고 그 심사가 제법 까다로워서 통장에 많은 잔고가 필요해서 Pham은 월급을 타면 열심히 저축했다고 한다. 오랜 노력 끝에 심사를 봤지만 결국 친구는 비자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베트남은 남북으로 긴나라다. 그래서인지 각 도시마다 특색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난 아직 하노이는 가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그녀가 왜 자신의 고향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법 어렵다는 사실도. 단지 베트남이 잘살고 못살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의 정치체제가 공산국가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사람이 방문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나는 이제야 이번 여행이 그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여행임을 눈치챘다. 친구가 못 오게 됐다면 포기할 만도 했을 텐데, 혼자서라도 온 것을 보면 Pham은 정말 한국에 오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내심 밥을 같이 먹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작은 행동이 그녀에게는 좋은 기억이라도 될 것이니 말이다. 적어도 맛집은 찾았으니까.
가게를 나서면서 근처에서 유명한 떡볶이 집을 소개해 줬다. 아마도 그냥 헤어지기 미안했나 보다. 그녀는 떡볶이도 좋아하지만 배가 너무 부르다며 극구 사양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지만...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언젠가 하노이에 놀러 가면 구경시켜 줄래?'
난 원래 고객에게 이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만일 말을 한다고 한다면 그냥 겉치레일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진심이었다. 그녀의 한마디가 하노이가 어떤 곳인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Pham은 웃으면서 한국사람 들은 하노이보다 호찌민에 많이 간다고 했다. 그래도 만일 내가 온다면 기꺼이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가볍게 말한 뒤, 그녀를 역까지 바려다 줬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서서히 멀어지는 그녀를 보면서, 베트남에 친구가 생겼으니 내년엔 호찌민에 가야겠네라고 다짐했다.
사진을 납품하고 Pham과 SNS로 팔로우를 하기 시작했다. Pham은 여전히 하노이는 재미없는 곳이라며 투덜거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진 이후에는 아예 집에서 재택근무만 한다며 더욱 심심하다고 한탄했다. 베트남과의 모든 교통수단이 끊겼으니 나도 언제 하노이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고양이를 자랑하면서 우정을 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