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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Dec 05. 2024

아가, 시방 탑새기 들어간다

사투리라는 문화

  아내가 처음 우리 집에 왔던 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녀는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고, 어머니는 특유의 환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하셨다. 정감 어린 분위기 속에서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지만, 잠시 후 나는 작은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아챘다.


"아가, 시방 탑새기 들어간다."


  어머니의 말에 아내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재빨리 "먼지가 들어간다는 말씀이야"라고 속삭이며 통역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나는 그 순간 아내가 충청도 사투리라는 새로운 언어와 마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투리는 언어이자 문화다. 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어머니의 말투와 표현이지만, 충청도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는 일종의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곧바로 또 다른 말씀을 이어가셨다.


"저 낭구에서 푸대 가져오렴."


  이번에도 아내는 눈길을 내게 보냈다. 나는 조용히 "저 나무에서 자루 가져오라는 말씀이야"라고 설명했다. 아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웃음 뒤에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의 언어, 아내의 혼란


  결혼 전, 나는 충청도 사투리가 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별로 인식하지 못했다. 어머니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고 편안했으며, 특별히 ‘사투리’라는 것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그녀에게는 한글로 쓰인 말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어휘와 억양은 마치 외국어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거기는 원채 가차워."


  어머니께서 말씀하실 때, 아내는 또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가 매우 가깝다는 뜻이야"라고 설명했더니,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순간이 반복될수록, 나는 어머니의 말이 우리 가족만의 고유한 언어임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다락에 왜 그렇게 많이 탕 났다니."


  어머니가 다락방에 곰팡이가 피었다는 말을 하셨을 때도 아내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또다시 통역사가 되어 "다락방에 곰팡이가 많이 생겼다는 뜻이야"라고 말했다. 그런 대화를 나눌 때마다 아내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가 얼마나 낯설게 느끼고 있을지 상상하게 됐다.


#사투리 속에 담긴 어머니의 정


  아내와 어머니의 대화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되었다. 어머니는 사투리 속에 담긴 정을 그대로 표현하셨고, 아내는 그 정을 느끼며 점점 익숙해졌다. 어머니의 사투리에는 단순한 언어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충청도의 평온함과 어머니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언어였다.

  나는 아내에게 어머니의 사투리와 충청도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충청도 사람들은 말을 천천히 하지만 그 안에 많은 뜻이 담겨 있어.” 어머니의 말투가 낯설어도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내는 그런 내 말을 들으며 점점 어머니의 말에 익숙해졌다.


#새로운 가족 언어로의 적응

  

  결혼 후 몇 달이 지나고, 아내는 어머니와 대화에서 점차 사투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가, 시방 탑새기 들어간다"라는 말에도 이제는 멈칫하지 않고 먼지를 털어내는 모습을 보이며 미소 지었다. 아내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내를 더욱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이제는 아내가 어머니의 사투리를 조금씩 따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가끔 아내가 "원채 가차운 곳이 어디에요?"라고 말할 때면 우리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충청도 사투리는 단순히 언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


  아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 어색한 순간들은 이제 우리 가족의 따뜻한 추억이 되었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자체로 새로운 문화와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는 창문이 되기도 한다. 아내는 어머니의 사투리를 통해 충청도의 정서를 배웠고, 나는 그런 아내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가족의 언어를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 어머니의 사투리는 우리 가족의 또 다른 언어로 자리 잡았다. 낯설었던 단어들이 이제는 아내와 나, 그리고 어머니 사이에서 웃음과 정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다. 언어를 이해하고, 그 속에 담긴 정서를 느끼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족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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