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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Oct 30. 2017

cliche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Ladakh, India 

#1. 

우리는 겨우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20 루피면 마실 수 있는 짜이를 뒤로 한 채  익숙한 메뉴가 있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한국의 그것과 같은 가격의 카푸치노, 라테를 시키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흔하게 하던 행동들 - 카카오톡, 페이스북, 친구에게 안부, 가족에게 메시지 등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음악은 해발 5,359m Khardung La(카르둥라)를 지나며 내 귀에 꽂힌 음악이었다. 유일하게 다운로드하여 놓은 애플 뮤직 플레이 리스트 중 유난히 마음에 들던 그 음악. Black Sands라는 음악. 

비가 내리는 도로는 교통체증으로 인해 꽉 막혀 있었고 우리는 양손 가득 내일 먹을 음식들을 들고 걸었다. 언덕은 높았고 호텔은 가까웠지만 그곳 역시 해발 3,500의 고산이었다.  




Leh(레)에 처음 도착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은 나 자신이 비루 해지는 날이었다.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며 쉬운 단어의 뜻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멍청해지고 한 걸음 또 두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나 자신의 무게에 더해진 중력을 실감하는 날이었다. 

무기력함에 눕고만 싶은 기분, 비 오기 전 땅이 날 잡아 끄는 기분,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고 싶은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기어가고 싶은 강한 충동이 느껴졌다. 

무의 경지

라다크는 생명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날것의 흙과 산이 둘러져 있는 곳이다. 

죽음의 환희가 느껴지던 바라나시 화장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날것 들만 존재하는 공간. 

그 공간에서 처음으로 대면한 마노즈와 하씨. 그 둘은 여행사 대표와 드라이버로 악수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한 뒤 짐을 들어주고 힘차게 지프 위에 짐을 얹은 뒤, 시내 구석의 어느 호텔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웰컴 짜이와 흑인도 백인도 유색인종도 아닌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누워그래야 누워야지 걸을  있게 될 거야. 그리고 늦은 점심을 먹자


흰 천이 정갈하게 펼쳐진 침대를 보며 인도의 침대가 이상하게 깨끗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쓰러지듯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낯선 냄새와 공기와 환경을 관찰하며 그렇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으로 몇 시간을 내리 자고  겨우 일어나 타이레놀과 다른 약 한 알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그리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발걸음을 가볍게 걸을 수 조차 없다, 그곳은)  1층 레스토랑으로 걸어가던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여든 살쯤 된 노인의 뒷모습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라다크에서의 보름, 내가 본 그곳은 어쩌면 태초를 닮은 듯한 막연한 땅이자 불가해한 요소들이 끊임없이 살아 숨 쉬는 곳. 

하지만 생명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곳곳에 신기하게 살아 있는 생명을 보며 무엇보다 질긴 생의 기원과 존재의 이유를 되새기고 깨닫게 되는 자극이었다. 매 순간이 또, 매 시간이 자극과 무의미함의 교차이자 전부였다. 

그곳에서 난, 시간이 날 때마다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글이 되기도 하고 시가 되기도 하고 때론 푸념이 되기도 한 그 글들은 죽어있기도 하고 살아있기도 하지만 결국, 내 몸 구석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는 나의 영혼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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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에 도착한 첫날. 아침 드실래요? 란 말에 놀라 시계를 보니 아침이었다. 내 몸이 체감하는 건 밤을 꼴딱 세운 뒤 새벽이었는데 여긴 하루의 시작이었던 거다. 잠이  쏟아져 더 이상 글을 쓰기도 힘들다. 아무것도 어떤 것도 몸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 

21 JUL 2017  라다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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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고 약을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으로 컨디션 조절을 한다. 분명 춥지 않은데 핫 패치를 붙이고 파시미나 머플러를 두르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 두꺼운 이불을 덮는다. 

5시부터 8시까지 뜨거운 물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그 시간에 맞춰 샤워를 한다. 고산지대라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고 징그러운 벌레 같은 게 없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땅이 날 잡아당기는 것처럼 하염없이 눕고 싶은 생각이 든다.  머리도 지끈거리고 손끝도 저릿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이 두근거려 마음껏 움직일  수 조차 없다. 그래도 오늘만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라며 자신을 추슬러본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자마자 식당에 내려가 저녁을 먹어야 했다. 식당 문 앞에서 번지는 음식 냄새에 차마 문을 지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미지근한 물 한잔을 들고 바깥공기를 마시며 앉아 있으니 좀 괜찮다. 

그래도 너무 메슥거리고 어지러워서 가만히 앉아 있다 토마토를 가져와 설탕을 조금 뿌려 먹었다. 치킨요리도 있어 몇 입 먹고 나니 몸이 한결 낫다. 

블랙티까지 한 잔 마시고 나니 더욱 좋다. 아빠 새를 기다리는 아기새들처럼 주는 약을 한알씩 받아 들고 삼켰더니 금방 또 좋아진다. 

근데 막상 누우니 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정말 너무 피곤하다. 하루 종일 먹고 잔 것밖에 없는데 눈을 뜨고 움직이는 것조차도 너무나 힘이 든다. 

ㅠㅠ 또 자야겠다. 



22/JUL/17

손이 저린다 저릿저릿 가만히 서 있기에도 힘들어서 자주 눕게 된다. 

옛 왕이 살던 왕궁에 다녀왔다. Ancient castle radakh

유럽의 성과 비교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고 화려한 걸 많이 본 사람들에게는 사실 별 감흥 없는 곳인 것 같다. 흙덩어리 산과 고개 넘어 또 흙산, 그 흙으로 만든 집, 왕궁, 곳곳에 버려진 쪼개진 돌, 사람들의 표정, 개들의 표정, 그 가운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와 쪼(야크와 소 사이에서 태어난 동물)를 보며 소! 쪼! 를 외치기 바쁜 우리들. 

불경을 써 놓은 오색찬란한 깃발들이 여기저기 바람에 날리고 그걸 지저분하게 보는 사람, 매 년 라다크의 길이 열리면 그 룽타를 찍기 위해 산에 오는 사람. 

7시간 조금 넘게 직행 비행기를 타고 뉴델리에 도착해 다시 국내선으로 변경, 한 시간가량 산을 넘고 구름을 뚫고 히말라야 산자락을 지나 도착한 이곳은 온통 흙 천지. 마치 최초의 도시를 연상케 한다. 왠지 모르게 본 적 없는 소돔과 고모라가 떠오른다. 흙먼지와 추위와 더위가 공존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건 높은 고도로 인해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심장 박동수가 100을 훌쩍 넘고 숨이 차 움직이기조차 힘들다는 것. 보이지 않던 핏줄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걱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 


#2. 

매번 여행길에 꼭 민음사나 펭귄클래식의 책을 한 권씩 들고 간다. 그 책은 나의 아이팟에 들어있는 음악들과 같은 소중한 친구이다. 그 친구들이 있기에 나의 여행은 감미롭고 새로우며 또, 지루하지 않다. 

이번 라다크 여행은 어쩌면 아무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앙드레 브르통의 추천이 곁들여진 쥘리앙 그라크라는 작가의 책이 함께 했다. 그의 책은 1900년대 중반 프랑스의 서늘한 문필가들의 글을 닮지도 않았고 또, 날것의 예술이 부유하던 시대상과 같기도 했고 다르기도 했다. 

“풍경의 수상쩍은 침묵은, 갑자기 멈추었다 주저하듯 다시 시작하는 바와, 그것의 불균등한 간격이 낳는 기이한 유예의 느낌 때문에 한층 더 뚜렷이 감지되었다. 그을린 듯한 하늘 아래, 잠든 습기와 미지근한 비 속을 자동차는 한결 조심스레 나아가며 이 의심스러운 여행 위로 틈입의 덧없는 뉘앙스를 던졌다.” 

사실, 라다크에서의 독서는 황홀한 착각과도 같은 시간이다. 읽고는 있지만 읽고 있지 않으며 눈은 글씨를 분명 읽어 내려가지만 산소가 부족한 나의 뇌는 단어를 이해하지도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저, 내 눈에 보기 좋은 문장에는 파란 줄이 그어져 있기에 다시금 그 글을 음미하려 한다. 

삶에는 고지告地가 우리에게까지 전달되는 특권적인 아침이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평소보다 길어지는 한가로운 서성임을 통해 한층 더 위중한 어떤 음이 울리는 것이다. 


#3

어느 날은 6시간을 내달리고 어떤 날은 7시간을 그리고 마지막엔 쉼 없이 8시간을 내달린 적도 있다. 

대부분의 끼니는 숙소에서 차에 실어준 런치박스로 때우거나 신기하게 존재하는 레스토랑에서의 오믈렛(여러분들의 상상과는 상이하게 다른 형상이다) 운이 좋으면 중국식 달걀 볶음밥을 먹곤 했다. 우리에게 식사는 살기 위한 수단일 뿐 어떠한 미식적 행위도 감각도 기대도 할 수 없었고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Fresh Day라며 또, 고기를 먹지 않았기에 우리는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부턴가 지나가는 소를 보며 얘, 너 맛있게 생겼다. 를 중얼중얼 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친구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난 정말, 간절하게 그 녀석의 업진살을 먹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 도축은 금지행위이고 만약 누군가 그 소를 잡아먹었다면 곧바로 감옥행인 살얼음판과도 같은 위계와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바라나시 호텔에 매일 같이 앉아 있던 잘생긴 브라만은 한국인은 소고기를 먹어?라고 물었었다. 

응. 많이 먹지. 우린 소 없으면 못살아.라고 난 대답했고 그래? 그럼 그 소는 얼마야? 얼마 정도 해? 라길래 음.. 한 사람이 먹는 적정량의 소는 2500루피(43,000원) 정도야.라고 했더니 그렇게 비싸? 라며 그윽한 눈살을 찌푸리며 놀랍다는 듯 날 쳐다보았다. 그래서 난 응, 우린 개고기도 먹는데?라고 답하고 그를 놀리기도 했었다. (물론, 난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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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JUL/17


흙처럼 쭈그리고 앉아 흙을 뭉개는 사람을 봤다. 그 사람은 흙을 닮아 있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흙을 빚었다는데 그럼 이곳 사람들은 본연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형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온갖 편리한 것들 사이에서 사는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살아가는 것 아닐까?

우리가 보는 그들은 안타까움의 대상이겠지. 미개한 문명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불쌍한 존재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우리 역시 불쌍한 존재 아닐까? 세상의 가장 극적인 자연을 보는 눈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다 똑같은 사람을 보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기 위해 쫓아다니는 우리네의 삶이 어쩜 안타까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레임에 갇힌 우리. 어떠한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 같은 눈 -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제시한 눈을 가지기 위해 애쓰는 우리. 타인이 말하는 정상에 올라가지 않으면 포기하지 못한 채 후회만 하며 살아가는 우리. 세상의 부조리함을 자신에게 맞게 새롭게 만들지 못하는 우리. 다른 눈을 가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한심하게 보는 우리. 어쩌다 우린 이렇게 된 것일까?

이곳 사람들은 우리네와 비슷한 눈, 코, 입, 얼굴 형태를 가졌다. 

눈빛도 어색한 표정도 미묘한 생김새도 우리의 그것과 참 많이 닮았다.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차라리 앞이 보이지 않아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길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차라리 눈을 감고 지내는 것이 나은 것일까?


#4 

5일째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해 7시간쯤 오프로드를 지나 드디어 도착했다. Nubra Valley(누브라 밸리)라는 곳에 도착한 지금 눈 앞엔 또 다른 히말라야 산이 보이고 머리 위엔 살구나무, 하늘과 구름이 산재해 있는 캠핑장에 앉아 있다. 한 시간 조금 뒤엔 사막에 간다. 꼬불꼬불 흙길로 만들어진 산을 서너 개쯤 넘어 (중간중간 5,000m 해발도 있었다) 이곳에 도착했다. 

한 것도 없이 차에 실려 왔는데 길이 너무 꼬불꼬불 힘들어서 온 몸에 기운이 빠진다. 

하루 종일 차를 탔더니 너무 메슥거리고 어지럽다. 레몬이 가득 들어있는 미지근한 물을 마셔도 도저히 씻겨 내려 가질 않는다. 이럴 땐 페리에 라임을 마시면 딱 좋은데. 이 나라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중간중간 쉬기 위해 들린 곳에서 한국인들을 마주쳤다. 인도 현지인처럼 형형색색의 스카프를 두르고 다니는 여자와 반바지에 버켄스탁을 신고 있는 남자들. 소녀와 소년들의 외형은 너무나 비슷해서 딱 봐도 한국인이라는 게 티가 날 지경이었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가 낯설 만큼 내 표정과 몸의 무게는 일치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몸이 너무 무거워서 할머니처럼 발을 질질 끌고 다닌다. 

맨 손으로 돌을 깨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흙인지 돌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얼굴도 손등도 형태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고산지대에 기계가 올라올 수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인도 사람들은 빠르지 않게 되도록 천천히 일을 한다. 기온도 여러 컨디션도 그렇기 때문이겠지. 



사람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무엇을 볼까?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무엇을 향할까?

왜 하필 이곳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본인보다 큰 돌을 부수고 그걸 잘게 만들어 탑처럼 쌓아야 하는 걸까. 인생은 정해져 있는 거라고, 성경에 한 인간의 둘레는 예정되어 있고 또 정해져 있는 거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너무 좋은 나라에 태어나 돌 한 번 만져보지 않고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짧은 평생을 돌만 만지다가 죽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으로 살기보단 사람다운 사람처럼 살아내고 싶은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5 


누브라 밸리에서 한 시간쯤 차를 타고 들어가면 무슬림 마을인 Turtuk에 다다를 수 있다. 그곳에서 난 몇몇의 꼬마 천사를 만날 수 있었다. 길을 잃었을 때 나의 손을 잡고 마을 입구로 인도해주던 당당한 소녀.(그 소녀는 무슬림이라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내가 들고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소년들. 목마른날 위해 예비된 듯 나뭇잎보다 열매가 더 많았던 살구나무. 그리고 루체른 호수와 닮은 옥색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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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마음껏 자태를 뽐내며 바람이 불어온다. 옆으로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 하늘은 높은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고 구름도 햇빛도 친구처럼 머리 바로 위에 둥둥 떠다닌다. 

무언가를 우연히 사랑하기 위해선 큰 결심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극적으로 사랑하기 위해선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사실, 대단한 것이라는 게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가치관과 사고관이 조금 다른 것일 뿐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6

모든 망상이 머리를 떠다닌다. 그건 사랑을 닮기도 했고 사람의 형태를 닮기도 했으며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며 꿈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내 육체의 아둔한 무거움과 (산소부족으로 인한) 영혼의 탈피적 가벼움이겠지. 


우리 인생의 매 순간이 무한한 횟수로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 박힌 꼴이다. 이런 발상은 끔찍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것을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예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받기를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날아가버려, 지상적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말 그대로 환상 그 자체이다. 무기력함과 동시에 쉽게 에너지가 차오르며 동시에 잃게 되는 마치, 방전 직전의 자동차와 같은 상태였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나의 몸은 보름의 시간 동안 그런 상태였다. 가끔 초콜릿을 먹거나 귀여운 당나귀를 만나거나 혹은 고열량의 참치를 삼키게 되면 급격하게 에너지가 치솟아 올라 주체할 수 없지만 그 힘의 여력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날 떠나갔다. 다시 축 늘어진 채 걷지도 기지도 못하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난 나의 존재의 하 잘 없음과 부질없음에 대해 그토록 절절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타고난 생명력을 남들보다 낫게 여기던 나였기에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의 본질,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쥘리앙이 마음껏 뱉어낸 망상의 섬, 시르트에 관한 소설을 내려놓고 모처럼 다시 밀란 쿤데라 할아버지의 책을 펼친다. 

그는 내가 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작가이다. (그리고 죽지 않기를 바라는)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아니,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작곡을 공부했다. 현란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오케스트라 곡을 마지막으로 나의 작곡 행위는 끝이 났으며 (생의 시간이 덧입혀져야 비로소 바그너의 음악극 같은 오페라를 쓸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걸 알아가며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네 번은 족히 읽었을 쿤데라 할아버지의 글을 히말라야 산을 등지고 읽다 보니 새로웠다. 하늘에선 새로움을 알 수 있었던 걸까? 


#7

27/JUL/17

며칠이 지났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차를 타고 차에서 내리고 어제 일이 몇 달은 지난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것뿐이다. 카레향이 아닌 오래된 팬에 기름기 없이 눌어붙는 야채 볶는 냄새가 메슥거린다. 매주 목요일은 고기를 먹지 않는 날 이란다. 안 그래도 고기를 안 먹고사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굳이 날을 정해서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또 뭘까. 

Turtuk을 다녀왔고 Nubra valley에서 이틀 동안  캠핑을 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 보다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인데 

우선, 고도가 낮아져서 뛸 수 있을 만큼 체력이 괜찮았고 아침과 저녁, 산속에 둘러싸인 채 하늘을 보는 게 너무나 좋았다. 12시, 별을 보러 나간 곳에서 뒷발에 차이는 동키와 그의 가족들, 쏟아지는 별이 아닌 동그란 구 안에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수많은 별들. 쉴 새 없이 떨어지던 별똥별들.  

살구나무 아래 앉아 툭 하고 떨어지는 살구를 주워 흐르는 시내에 씻어 먹던 기억 

카르둥라 패스를 앞두고 우리 앞에 가던 큰 트럭, 그 트럭에 가득 탄 일꾼들.. 얇은 신발을 신고 겨우 추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옷을 입고 있던 그 사람들. 그리고 손바닥에 종이 접시를 올리고 방금 전까지 돌을 깨느라 분명 지저분한 그 손으로 짜파티를 뜯어 카레를 먹는 (점심을 먹는) 일꾼들...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나.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우리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리고 때론 희미한 그 점을 향해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지 알 수 없고 어떠한 선택이 옳은 혹은 내게 더 나은 선택인지 불분명한 순간이 있다. 습관적인 선택을 할 때도 있고 전혀 의외의 선택을 굳이 할 때도 있다. 

내가 이 길에 들어선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저 가다 보니 지금이고 고개를 들어보니 나의 시야를 넓혀줄 많은 이벤트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것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순응했을 뿐이다. 

일 년 전 내게 “너, 일 년 뒤에 바라나시에 가게 될 거야. 그리고 7개월 뒤엔 인도 북부 라다크에 가게 돼”라고 미리 알려줬다면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였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가 그린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우리의 일상적 삶에는 우연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위 우연의 일치라고 불리는, 사람과 사건 간의 우연한 만남들이 그것이다. 예기치 않은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거나 조우하는 순간 우연의 일치가 존재한다.  

소설의 신비스러운 우연의 만남에 매료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이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8 


28/JUL/17

다섯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판공초에 도착했다. 오늘 길에 마모트도 보고 양들도 보고 또 다른 길을 보며 숭고함에 대한 생각을 했다. 꿈에서 계속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상은 달라진다. 누군가와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무엇이 더 괜찮은 건지 혹은 무엇이 더 원대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바다가 올라와 하늘 아래 맺힌 판공초를 보니 새삼스럽다. 눈 앞은 중국 땅이고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인도에 속해 있는 라다크. 

구역을 정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어떻게든 각박한 현실을 이겨내는 사람들. 

꼬불거리는 산길을 돌아가고 있었는데 산 중턱에서 (흙으로 도로를 만들고 손으로 돌을 깨는) 일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소리친다. 라다크 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는 무슨 사고라도 났나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본다. 하씨가 급하게 차를 세우더니 그들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던 물을 한 병 준다. 난 1.5l 병 하나를 더 건넨다. 그녀의 눈은 진지했고 살아있었으며 흔히 볼 수 없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계곡이 없는 고산에서 일하는 그들에겐 물이 필요했다. 지나가는 차마다 소리를 지르며 물을 달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들이 일하는 곳 주변에는 돌과 흙뿐,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 안을 슬쩍 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난, 삶과 공존하는 공허함을 보았다. 차는 다시 흙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눈에 맺힌 상이 지워지지 않아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그들을 다시 관찰했다. 물을 받아 들고 씩씩하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그녀는 품에서 실을 꺼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짧은 그 순간에도 쉬지 않고 그 뜨거운 태양 아래, 흙 위에 걸터앉아 고운 실로 무언가를 짜내고 있었다. 

그래,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각박이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한 채 현실을 잊는 것도 또, 인정하는 것도 아닌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9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예행연습. 육신의 비루함을 깨닫는 여정. 아무리 좋은 것도 좋지 않고 아무리 싫은 것도 귀찮다는 듯 휙 - 쳐낼 수 있는 무기력함. 사랑보다 갈증이 먼저 느껴지는 곳. 추위와 더위가 공존하는 곳. 구름이 하늘 위에 있지 않고 내 어깨에 닿아 있는 곳. 초콜릿을 들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마모트가 다가오는 언덕이 있는 곳. 허리와 골반이 나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곳.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살지만 우린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그곳, 라다크. 

라다크는 원래 왕국이었다. 그리고 독립국가였다. 1960년 인도 정부에 편입되었고 현재는 잠무&카슈미르 지역에 속하는 곳이 되었다. 티베트와 중국과 인도 경계에 있어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며 고산지대의 척박한 땅을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노매드들의 행적을 따라다니는 여행, 고도가 높아질수록 보이는 동물은 야크와 파시미나 염소뿐인 곳, 멀리서 보면 돌처럼 새카만 야크들이 옆으로 걷고 있는 곳, 해맑은 사람들이 있는 곳, 그리고 일 년에 길어도 3개월만 이방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참 추운 날이었다. 그날은 너무 추워서 입고 있는 옷을 다 껴입어도 온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날이었다. 미리 준비해 간 핫 패치를 배와 목과 등에 붙이고 타이즈를 신고 위아래 꽁꽁 싸매고 캠핑장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보던 솜이불 두 배정도의 두께의 담요 속에 들어가 가만히 있어도 추웠다. 샤워는커녕 겨우 물티슈로 세수를 하고 침대 안에 미동도 없이 있던 나는 그래도 글을 쓰겠다며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근데 그때 내 허벅지 안쪽이 따끔하는 거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누가 꼬집는 것도 아니고 할퀴는 것도 아니고 뭔가 날카로운 게 날 꽉 문 것 같은 기분. 이렇게 춥고 두껍게 입고 있는데 설마 벌레라도 있을까?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리고 뉴델리 호텔에서 수영하며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빈 데에 물렸었다는 것이다. 

초모리리 캠핑장에 있던 스테프들은 정말 내 동생처럼 생겼었다. 웃는 것도 우리를 대하는 것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믿을 것 같은 외모였다. 근데, 그 친절한 캠핑장 두꺼운 담요 속에서 난 난생처음 빈대에 물린 것이다. 

과거 한국도 그랬었겠지. 나의 조상들은 빈대와 벼룩을 벗 삼아 그렇게 살았었겠지. 조상까지 갈 게 뭐 있나, 나의 부모님이 어렸을 땐 우리나라도 그랬었지. 라며 2017년 빈대에 물린 나 자신을 위로했다. 지금 나의 여행은 과거로의 회귀이자 늙음에 대한 복선이라고. 그렇게.. 


#10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토마스는 그의 친구 Z에 대해 테레사가 한 말을 떠올리고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그래야만 한다! 라기보다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에 근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7년 전 테레사가 살고 있던 도시의 병원에〈우연히〉치료하기 힘든 편도선 환자가 발생했고, 토마스가 일하던 병원의 과장이 급히 호출되었다. 그런데〈우연히〉과장은 좌골 신경통에 걸려 꼼작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대신 토마스를 시골 마을에 보냈던 것이다. 그 마을에는 다섯 개의 호텔이 있었는데, 토마스는 〈우연히〉테레사가 일하던 호텔에 들어갔다. 〈우연히〉열차가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그는 술집에 들어가 앉았던 것이다. 테레사가 〈우연히〉당번이었고 〈우연히〉토마스의 테이블을 담당했다.  

따라서 토마스를 테레사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개의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사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11


29/JUL/17

이곳 사람들은 뭘 하고 싶을까. 떠나고 싶을까. 뭘 갖고 싶을까. 사랑을 갖고 싶을까.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있고 땅이 산보다 아래 있는 곳, 바람이 전부인 곳, 삶의 순서가 정갈한 선진국 사람들의 삶과는 괴리감이 너무나 깊은 이곳. 처연한 자연을 보다 파리의 골목길을 떠올려 보면 현재와 과거가 동시대를 이루고 있다는 게 신기할 만큼 너무 달라서 마치 내가, 중재자가 된 것처럼 여러 미사여구를 써가며 무언가를 써야 할 것 같지만 아름답다 혹은 숭고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누군가가 정의할 수 있다면 어쩌면 맨손으로 이미, 해에 타서 새카맣게 변해버린, 손등은 돌처럼 굳어 사람의 손이 아닌 도마뱀의 등짝 같은 그손으로 엉성한 망치를 들고 한없이 높은 산 위에서 자기 몸 보다 큰 돌을 쪼개고 또 쪼개서 정갈하게 쌓아야 가족을 먹여 살리는 한 남자의 눈빛이라고 할 수 있을까?





31/JUL/17

레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누브라 벨리, 초모리리를 다녀왔다. 너무 높아 느낄 것도 없이 피곤한 하루의 하루가 지나면 또 하루가 오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역시 글은 농익어야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이다. 

깊은 잠을 잔다.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잠이 든다. 그리고 아주 다양한 꿈을 꾼다. 너무 다양해서 할 말이 없을 만큼 어이없는 꿈을 꾸기도 한다.  

고산병 예방을 하기 위한 약을 먹고 되도록 천천히 걷는 것도 열흘 정도 하고 나니 이젠 습관이 되어 여기 사람들처럼 걷고 생각한다. 도무지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지 않다. 심지어 간단한 셈도 손가락을 꼽아가며 하고 있으니 말이다. 

보름에 가까운 일정이 끝났다. 무엇을 느끼고 보았는가?

성경에 거할 곳을 하나님이 정하신다고 하셨는데 피조물인 우리는 그것에 그저 순응한 채 살아야 하는 건가? 오히려 벗어나려고 하면 그것이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에 그렇지 않은 삶, 순종하는 삶, 받아들이는 삶이 필요한 것일까?

미디어가 발달하고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이들 역시 본인들이 태어난 척박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아무리 부모와 형제가 좋다고 해도 그런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원하지 않을까?

한때는 나도 그리 생각했었다. 한국을 벗어나야지. 그래서 좋은 유럽에 가서 나의 자녀들은 여러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 역시도 문화와 예술이 살아 있는 곳에서의 삶을 살며 제2의 인생을 살아야지.라는 생각. 

근데, 몇 년 지나고 돌아보니 그것 역시 열등감이었다. 그저 열등감에 지나지 않는 감정으로 인해 소중한 것들을 놓칠 뻔한 것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 삶의 원래의 목적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라나고 또, 자라남과 동시에 다듬어지고  깎이고 도려내어지고 세공되는 과정을 거치면 하나의 보석이 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인내심이 출중하지 않다. 그저 세공된 상태를 보며 부러워하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뺏을 수 있을지, 혹은 훔쳐올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혹 누군가 단련시키려 들면 왜, 내가 그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에 대해 따지고 든다.  

나는 어떤 사람에 의해 또, 어떤 환경에 의해 단련되고 있을까? 과거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까지 얼마나 많은 세공의 과정을 거쳐왔을까? 보석에 가까워졌을까? 아니면 흔하디 흔한 돌처럼 여전히 투박한 표면이 드러나 있을까? 단련되고 깎인 다음엔 어떤 빛을 띠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형태로 남게 될까?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알 수 없는 나의 온전함. 그 온전함을 찾기 위한 과정이 또 시작되었다. 

진리에 가까운 선, 선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미학과(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보딩을 마치고 비행기에 타기 한 시간 전, 합격 통보를 받았다. 


#12

이렇게 나의 여정은 시작과 시작을 거듭 반복한다. 작년의 시간은 바라나시와 유후인, 상해에 머물렀다면 올 해의 시간은 또 다른 바라나시와 라다크에 머물렀다. (연말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장소는 미정이지만) 

내가 아는 신은 인간에게 사랑이며 자신의 모습으로 창조한 인간에게 선한 자유의지를 준 절대자였다. 

하지만 인도에 세 차례 다녀온 뒤, 건명원에서의 공부가 연이어진 뒤, 플라톤과 키에르케고어의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내가 아는 신은 인간에게 절대적 자유의지를 부여했지만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닌 평범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평범함 속에서 옳은 선택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무수한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이게 되고 그 선택으로 인해 결국, 본인의 객관적이자 주관적 모습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고로 난, 오늘도 옳은 선택을 하고 싶고 선택을 한 후에는 내가 한 선택이 가장 옳다는 자신감을 가질 것이며 만약 그것이 옳지 않은 선택이라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는 그녀 때문에 돌아왔다. 그녀 때문에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이제는 그녀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그가 아니다 : 이제부터는 그녀가 그를 책임져야 한다.  

이러한 책임은 그녀의 힘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다, 그것은 미신이 아니었다, 불쑥 고민으로부터 그녀를 구원하고 새로운 삶의 욕구를 그녀 가슴에 채워준 것은 다름 아닌 아름다움의 의미였다. 다시 한번 우연의 새가 그녀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곁에서 자고 있는 토마스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메타포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의 어깨에 짐이 부과되었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밑줄 친 부분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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