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비규어스 , 공존 그리고 실수
그 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워낙 발걸음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지치면 앉고 힘나면 걷던 시절이었기에
광활한 로마 시내를 뭐에 홀린 듯 걸어 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던 성당을 지나치면서도 지나칠 수 없었던 건 아마도 주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개를 뒤로 젖혀도 끝이 보이지 않던 성당의 문을 지나
어두컴컴한 실내로 들어서니
눈 앞에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 여인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어떤 여인은 무릎으로 계단을 기어가듯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순서가 오면 등을 구부리고 두 살 시절로 돌아간 듯
높디높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엄마와도 같던 그들은 성스 로운 그곳을 기어오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누군가가 이야기해주는 문장 속엔
"예수님이 오르신 계단이라 성스러운 곳이기에 그녀들이 기어오르며
참회와 영생을 기도하는 것"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들은 조금 이상해 보였다.
두 번째 보는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돌과 연결된 끈이 풀어져 물 위로 떠오른 시신들이 보이는 곳 옆에서
해맑게 수영을 하고 그 물을 마시고 기도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특별했다.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이야기장이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은 "늙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는 특별함을 삼키고 살아가는 어쩌면 죽음을 몸에 지닌 채 살아가는 젊은이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간절히 원했던 나이 듦을 입고 나자
그의 삶은 특별해졌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용기가 생긴 것이다.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젊은 여자들을 만나고
산책을 하고 또 파티를 하고
절대로 두 번째 소설은 쓰지 않는다. 어떠한 것도 그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상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애쓰던 이십 대를 지나자
재미없는 육십이 되었고 춤을 추지만 관절이 움직이지 않는
주름이 위트보다 늘어난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꿈을 꾼다. 바다를 항해하고 첫사랑을 나눈 그녀와의 하루를.
그녀는 내달린다. 눈 앞에 보이는 기둥을 향해 질주한다.
흰 천을 감은 머리에 묽은 피가 번짐에도 불구하고 세차게 머리를 부딪친다.
그리고 말한다. 우주의 흐름을 깨닫기 위한 삶은... 이라며.
그만 좀 하면 안 될까? 왜 저렇게 계속하는 거지.
비닐 좀 벗으면 안 될까?
아름다운 이 음악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거지?
당장 무대로 달려가 두 손으로 찢어주고 싶을 만큼
비닐 속 그들의 모습은 보지 않아도 그려지는 괴로움이었다.
"은별 씨, 공존 정말 좋아요. 다음 무대에 올리면 꼭 같이 보러 가요! 그전에 유튜브에서 먼저 찾아봐요."
라던 그녀는 영원히 그들과 공존하고 있음이 느껴지지만
언제나 비어있는 그것도 텅 - 비어있는 그녀의 흔적이 느껴져 나는
쓸데없는 감상에 젖곤 한다.
검은 비닐에 머리를 집어넣고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를 반복하는 그들은 정말이지 예술가였다.
누군가 내게 예술이 무엇이냐 물으면 서슴없이 답할 수 있는 건 단 한 문장, 앰비규어스입니다.
십 년 전, 나의 유치 찬란했던 이십 대의 연애가 떠오르는데
십 년 전, 그들은 이런 인간의 고뇌를 근육에 일일이 새기고 있었다니.
가히 존경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음은
보는 내내 - 그것도 단체 관람온 군인들과 함께
Ha, Huh, Uh, Ah, Ooh, Wow, Fucx (너무 감탄한 나머지 욕을...), 이야-
라며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으며
심지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뒷목을 잡고 긴장을 풀어줘야 할 정도로
극도의 그리고 고도의 긴장감이 작은 무대와 관객석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뷰티에 나오는 나이 든 수녀의 계단 오름과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고민이 담긴 이번 퍼포먼스
바라나시에서 새벽마다 기도와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서
나름의 신을 찾고 영접하며 또 찾아가기 위해
백팔번뇌와 면류관으로 육체의 부질없음을
경험하려 애쓰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