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Jan 06. 2021

나란 거짓말

  내 이야기를 믿지 마세요. 이야기가 진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실을 골라 말하기 때문에. 나는 끈질기게 구애의 손을 뻗고선 깊어지는 관계가 두려워져 정든 인사를 외면합니다. 복수의 꿈을 가을 낙엽 아래 잠재우곤 매일 밤 어린 악마의 구슬림과 조롱에 시달립니다. 지하철에 엎드린 사람에게서 철 지난 꽃 한 다발을 사들고는 부모의 죽음을 오래 기다립니다. 눈물이 마른 이유를 잊었습니다. 모순과 이중성으로 가득 찬 내게 너무 많은 진실은 혼란스럽습니다. 진실을 가려낸 이야기를 하는 이유입니다. 거짓말로 진실의 살을 발라냅니다. 살찐 가죽과 살, 내장을 제거하면 진실의 뼈를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연인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들의 수많은 약속과 여행지에서의 추억, 장미 꽃잎이 날리는 결혼식장의 모습을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나는 그들이 예감하는 사랑의 끝과 포개진 손등 위에 놓인 한 줌의 슬픔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욕망과 감정이 내가 드러내길 원하는 진실의 뼈입니다. 그러니 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의 모습과 사건을 골라내면 될 일입니다. 연인들의 성격을 과장하거나 기억의 순서를 바꿉니다. 없던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만이 나의 진실이기 때문에. 한 번은 나를 얽매는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를 지어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차분하고 따분한 사람으로 봤고, 나는 점점 더 그렇게 됐습니다. 무언가 충동적이고 유쾌한 짓을 하려고 하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건 너 답지 않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나다운 모습을 지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의 기원을 우물에 던지기로 했습니다. 한 남자가 그 일을 맡았습니다. 결국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못생기고 힘없는 개구리라 부르는 늙은 어미를 우물에 던집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던 개구리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승에 피어나는 영혼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죽은 자는 과거가 됐는데도 현실을 사는 가족의 곁에 머뭅니다. 또 한 번의 이별이 다가옵니다. 죽은 자는 인사합니다.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과거가 말을 건다면 무슨 말을 할까.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이 궁금해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누군가 원한다면 이 이야기에 놓인 나의 진실을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런 일은 매우 드물게 일어날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나의 거짓된 이야기에서 당신은 자신을 볼 것입니다. 당신의 진실을 마주할 겁니다. 내가 눈물을 이야기하면 당신이 흘렸던 눈물을 떠올리세요. 내가 무자비한 폭력을 이야기하면 당신의 목을 움켜쥐었던 손아귀를 떠올리세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인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세요. 그러면 그 이야기가 당신의 것이 될 겁니다. 나의 이야기를 믿지 말라고 말했던가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나의 이야기에서 찾은 당신의 이야기, 그 안에 작은 진실을 믿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피를 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