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시를 읽으며, 내 심리치료 과정을 돌아봅니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_ 한강 <회복기의 노래>
||| 최근 몇 년 사이의 저는 (에크하르트 톨레가 설명해 준) 고통체와 나를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에 여전히 자주 빠집니다.
‘정상적인 삶‘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을 때의 나를 ‘나답지 못하다‘고 비난합니다.
‘망가진 나‘야말로 진정한 나 자신이며, 조금이라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이어가려고 할 때마다 ‘괜찮은 나인 척하지 말라’고 나를 비난합니다.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라’고 말하며 나를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없게 몰아붙입니다.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수치심이 밀려와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정신을, 지금 여기에서의 알아차림을 놓아버리곤 합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잠깐 다시 지금 여기를 알아차립니다. 그러다 곧 한참 동안 누워있던 저를 다시 부끄러워합니다.
뿌리 깊은 부끄러움과 지난 제 잘못들을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죄책감, 저의 못남이 타인들 앞에 드러내야 하는 순간마다 느껴지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도망치기 위해 탐닉할 것들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돈을, 삶을 낭비합니다. 사람들을 피해 숨지만 곧 다시 밀려오는 외로움에 머물지 못하고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나를 일으켜 살아내게 하는, 나 자신을 친구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정상적이며 지극히 평범한 부분이 여태 내 안 깊은 곳에서 잠들지 않고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IFS 내면가족체계에서 말하는) ’ 정상적인 부분‘이 내게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음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저의 각 부분들의 프로세스가 어찌 작동하는지 담담하게 바라봅니다. 꽤 많이 회복되었구나… 하면서 심리 치료를 지속하고 있는 저를 응원해 봅니다.
2024. 10. 18. 비 내리는 금요일 오전의 담담詩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