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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주 May 20. 2023

관계의 함정_네임카드

'사람'인 내가 '사람'인 그에게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상대방의 명함을 받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 살짝 당황하는 이유는 내 지갑에 그에게 건넬 명함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명함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상대와 명함을 주고받는 순간, 그때부터의 모든 대화가 비즈니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등, 알고 싶은 것이 참 많은데 명함을 교환하는 순간 '그'라는 사람 대신 비즈니스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비즈니스 관련 미팅이나 모임 등에서 처럼 명함부터 교환해야하는 때가 있다. 그가 누구인지 보다 상대와 풀어가야할 비즈니스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년이 보장된 연공서열이 일반적이었던 시절에는 명함이 곧 힘이었고 서로의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적 질서를 대신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오랫동안 공직이나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들은 그런 질서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때 명함이란, 굳이 종이로 된 네임카드가 아니더라도 그의 직책이나 지위, 그 자체가 명함을 대신한다. 즉, 사람은 사라지고 명함이 차지한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을 대신하는 명함의 수명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이나 직업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그렇거니와 더욱 큰 이유는 저출산 고령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사회(65세 인구가 총 인구의 20% 초과) 진입을 코 앞에 두었기 때문이다. 즉, 명함없이 '사람'으로 살아 가야할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인연에서든 처음으로 안면을 튼 상대, '사람'인 그를 알아가는 것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혼도장을 찍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명함에 비해 열 길 바닷물보다 더 깊은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완벽할 수가 없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의 본질적 한계임과 동시에 신비한 매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천천히 알아갈 수록, 오래 숙성될 수록, 상처보다 더욱 깊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당연히 그와 나의 관계도 건강하고 맛날 것이다.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을 찾고 싶다면 첫 만남에서 명함부터 건네기보다 '사람'인 내가 '사람'인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 보자. "요즘 주로 어떤 생각을 많이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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