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의 어느 한식집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다. 사실 알바가 목적은 아니었다. 맨 처음에 본 사장님은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부분들을 굉장히 애쓰며 바꾸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웃겼다. 그리고 되게 특이하게 다가왔다. 보통은 저 정도로 신경 쓰지는 않으니까.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도대체 그 작은 부분들이 갖는 의미가 뭐길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찾게 되었다. 짜이 한 잔을 들고서.
짜이 한 잔을 건네면서 수다를 떨던 중, 사장님이 물었다. "너 포토샵 같은 거 좀 할 줄 아냐?" 기본은 한다는 내 말에 사장님은 제안했다. "그럼 여기서 지내면서 간판이랑 메뉴판 디자인 좀 해라." 숙소비도 굳고, 인도에서는 값비싼 한식도 매일 먹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델리 한식 집살이.
사장님은 초야에서 은거하는 도인 같은 분이었다. 맨날 '이놈의 인도는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며 '여기서 도인이 많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어!' 하며 난리 난리를 치시는데 솔직히 본인부터도 이런 환경적인 영향을 꽤나 받으신 것 같았다. 십여 년을 세상을 떠돌다 정착한 이곳 인도에서 또 십여 년을 도 닦듯 공부하신 덕인지 세상을 훨씬 넓게 볼 줄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피상적인 질문 하나를 던져도 그걸 경제, 사회, 역사, 정치 다각적인 측면에서 설명해주고, 내 질문들 자체의 문제도 다 파악해버렸다. 덕분에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가진 편협한 사고의 틀들이 많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동시에 자존심도 상해서 바득바득 우겨 보았지만 도저히 말로는 이길 수가 없었다) 쨌든 좀 더 남아있고 싶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깨너머의 이야기들을 잘금잘금 주워 담고 싶었다. 여행은 결국 사람이니까. 그래서 자잘 자잘한 식당일들을 도와드리고 있긴 하지만, 사실 평소의 내 일상은 책 읽다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생긴 궁금한 것들을 묻고 온갖 타박이란 타박은 다 받는 일이었다. 무튼 우리는 매일같이 시답잖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 1
나: "오로빌에 갔더니 곳곳에 스리 오로빈도와 마더의 사진이 걸려있는 게 기분이 이상했어요."
사: "신을 믿는 것을 난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그곳에 가서 좋은 말 듣고 좋은 방향으로 살아가려 하는 거잖아. 얼마나 좋아. 그런 말도 있잖아. 소수가 믿으면 소신이고 다수가 믿으면 종교다."
나: "하지만 종교의 시초도 처음에는 자신의 신격화를 바라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왜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가 돼요?"
사: "그거야 당연 그들이 부처나 예수가 아니라 일반 인간이니까 그런 거지! 엉? 부처나 예수가 되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이 몇 천년 간 왜 고작 몇 사람밖에 없겠어?"
대화 2
나: "원래 다 초심은 변하는 건가요? 모든 집단은 커지면서 변질되고 부패해지는 건가요? 우리의 이상은 작은 집단에서밖에 실현될 수 없는 거예요?"
사: "그렇지. 집단이 작을 때는 이해관계란 게 없잖아. 다 같이 아등바등 못살고 있는데. 집단이 커지면서 돈이 늘어나면서 이해관계가 발생하는 거지."
나: "이 돈이란 게 대체 뭔데요? 돈을 벗어나서 자급자족할 수 없는 거예요?"
사: "돈이 문제가 아니야. 자급자족? 할 수 있지 왜 없어. 자기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거지.
대화 3
갑자기 토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 "옳고 그른 건 없어. 넌 아직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한쪽이 옳고, 한쪽은 무조건 글러야 해?"
나: "그래요. 이렇게 어느 한쪽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럼 토론을 할 때는 어떻게 해요? 찬반은 나누어져 있고, 나는 내 주장을 해야 하는데, 내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끝없이 주장하죠? 상대편에게 반박을 당하면 말문이 막힐 것 같아요."
사: "네가 절대적이 되라는 게 아니야. 그건 의지의 문제지. 너는 지는 게 두려운 거야. 실패가 두려운 거지."
'아니에요! 난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요!'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알고 있었다.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나: "네. 저는 실패가 두려운가 봐요.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도 몰라요."
사: "토론에서 지면 어때? 지면 안 돼? 실패한다고 얻지 못하는 건 아니야. 나 인테리어 하는 것도 그러잖아. 여기 붙였다가 저걸 떼어봤다가 온갖 난리를 쳐도 그러면서 또 배우는 거지. 너무 심사숙고해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 항상 시행착오를 겪는 거지."
나: "그런데 이렇게 무엇하나 옳고 그른 게 없는데 어떻게 한 주장만 유지할 수 있죠? 계속 생각은 변할 텐데 그럼 철새처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 "당연히 생각은 변할 수 있지. 지금 봤을 땐 이쪽이었는데 나중에는 저쪽으로 갈 수 있지. 거봐, 너는 계속 이쪽 아니면 저쪽, 흑 아니면 백으로만 생각하고 있어."
나: "사실 뭐가 실패 인지도 모르겠어요. 살면서 실패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이게 또 웃겨요. 성공과 실패도 행복과 불행처럼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른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보면 저와 동생이에요. 전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불행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동생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대요. 똑같은 부모 밑, 똑같은 가정환경 속에서요. 신기하지 않아요?"
사: "내가 말했잖니.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어.(...) 너뿐만이 아니야. 모든 애들이 다 너와 같은 고민을 할 거야. 단지 겉으로만 밝고 즐거워 보일 뿐이지. 다들 혼자는 매일 끙끙 앓고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그런 고민'들은 딱 너희 때만 할 수 있는 고민들이야. 나이가 들면 고민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때가 되면 또 다른 고민들이 생기거든."
대화 4
나: "독서의 중요성은 무엇일까요? 정말 아는 것이 힘일까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 "그렇다고 체념하고 좌절하라는 게 아니야. 알게 되면 소신이 생기지. 다만 그렇게 알기까지의 과정에서 흔들리는 거지."
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까요? 이런 사람들이 대기업이나 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사: "그런 놈들은 뭐 나처럼 이렇게 조그맣게 장사나 하겠지."
나: "에이..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르고 그냥 나는 이대로 행복하다 생각하며 사는 게 더 행복 아닐까요?"
사: "봐봐 옛말에 뭐라 그랬니? '아는 게 힘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다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여."
나: "... 그렇겠네요."
사: "인생에서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 쉽게 오는 게 아니야. 넌 완전 기회를 잡은 거지."
나: "하지만 삼촌. 삼촌도 아시다시피 이렇게 거시적 관점에서 이론들을 늘어놓는 건 쉬워요. 하지만 결국 우린 그 속으로 들어가서 미시적 일상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때도 쉬울까요?"
사: "당연히 더 어렵지. 지식은 식이야.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능력이 필요하지. 그건 네가 일상 속에서 기르는 거야. 지식과 지혜는 다른 거란다. 마음은 히피처럼 행동은 현실처럼. 내가 옛날에 롤모델이 인디아나 존스였어. 그 사람은 모험가잖아. 그런데 그 사람 직업이 뭔 줄 알아? 교수. 그것도 아주 저명한. 그 사람이 부러웠던 것 중 딱 하나가 바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었어. 우리 같은 사람은 한국을 가더래도 3개월 이상을 있을 수가 없잖아. 할 게 없거든. 한 달은 좋아. 그런데 거기에 계속 있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이 없거든."
혼자 '아 내가 이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아. 나 따위가 무슨' 혹은 '나는 굉장히 보잘것없는 존재구나.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뭐지'라는 절망과 좌절감에 빠져 우울하게 늘어져 갈 때면 "야 니가 뭐라도 되는 줄 아냐! 그냥 역사의, 자연의 흐름이 그런 거여. 삼시세끼 밥 먹고 살기도 바쁘고만!" 온갖 촌철살인들을 주입해 다시 의욕을 부풀려 주는 사장 삼촌이었다.
그런 사장님의 소원은 내가 일찍 좀 일어나서 식당 문 좀 열어 놓는 것이다.
매일 아침 사장님이 "쾅쾅쾅!! 문 열어라!!"는 소리에 깬다..
그런 사장님의 소원은 내가 그만 좀 앉아있고 서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하루 내 앉아만 있으니 "니가 아주 상팔자 개팔자다"는 소리나 듣는다..
"내일 아침은 기적 좀 볼 수 있냐?"
"에이~ 기적이 왜 기적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