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by 양애진

“공부 못 하던 아이, OO대학 수석 입학”

이런 이야기면 얼마나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이 이상적인 공식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부 잘하던 아이, 대입 후 방황"

이쪽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조금 부끄럽지만 진실이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 공부’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돌아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에게 공부란, 그저 입시 준비에 불과했다. 언어, 외국어, 수리 영역의 ‘등급’을 높이는 것, 그뿐이었다. 자연스레 미술, 음악, 체육 등 입시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은 입시에 ‘방해되는 것들’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운동을 하면 다음 수업시간에 잠을 잔다’는 이유로 체육을 자습시간으로 대체했고, 음악과 미술 역시 입시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습시간이 되었다. 예체능을 좋아했지만, 그건 특정 아이들만의 영역이 되었다.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심지어 고3이 되어서는 자습시간을 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그런 공부가 재미있었을 리가 없다.


그럼, 나는 대체 왜 공부를 했던 걸까? 하니 주변에서는 일단 대학을 잘 가야 한다고 했었다. 수능이 내가 인생에 있어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이라고 했기에 그저 묵묵히 할 뿐이었다. 게다가 ‘아직 엄청나게 하고 싶은 것은 없으니, 그렇다면 일단 공부를 잘해서 나쁠 것은 없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머리와는 다르게 마음은 자꾸만 숫자에, 등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매번 시험을 보는 날이면 날마다 울기 일쑤였고, 시험 점수로 엄마와 싸우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점차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커져갔고, 1점, 2점의 차이가 내 인생을 결정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진짜’ 공부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 깊이서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호기심이나 관심이 들어있지 않은 내 공부는 공부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성장하는 것이 공부’라고 하는데,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스스로 느껴지지 않는 이 성장 감은 단지 눈에 보이는 ‘성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더더욱 성적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래. 당시 내게 공부는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 아니라,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좋아서 하루에 세편씩 영화를 본다는 아이, 고전이 좋아서 세로로 된 알 수 없는 고서를 읽는 아이, 작문이 좋아서 직접 소설을 쓰는 아이, 영어가 좋아서 미드에 푹 빠져있는 아이.. 그렇게 즐거운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참을 수 없는 ‘부러움’이 밀려왔다. 그들의 앞에서는 내가 공부한다고 말하는 것이 창피했다.


그러한 상황이 답답한 나머지 다른 길을 가고 싶다며 반항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의 ‘나중에 대학 들어가면’이라는 달램에 금세 수그러들었다. 더는 질문하지 않았고, 밖으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일단은 참았고, 모든 것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공부에 대한 내 욕구가 고작 그 정도였다는 증거였다.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던 내가 공부의 즐거움을 알 턱이 없었다. 내가 그토록 싫다고 말하던 그때의 그 수동적인 공부는, 사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벗어나고는 싶은데 벗어날 용기는 없었던 거다. 다만 속으로 버킷리스트를 새기면서 대학 공부에 대한 로망만 키워나갈 뿐이었다. 대학만 가면 정말 내가 원하는, 공부다운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바람만 안은 채로.



하지만 그 바람은 대학만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도,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단편적인 지식, 혹은 기계적인 기술을 갖추는 일이 수능이라는 영역에서 말하는 효율적인 공부 일지는 몰라도, 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상 속에 뿌리내린 공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잘 와닿지가 않았다. '그럼, 대체 나는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떠나기로 했다. 적어도 내게는 책상 맡에서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막연하지만 그곳에 가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절실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이 흐른 지금, 흘러 흘러 생각지도 못한 인도까지 흘러 들어와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여태껏 후회는 없다. 이제야 진짜 공부를 하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또다시 갈림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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