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컵과의 첫 만남_당신의 천국을 배달해드립니다

feat. 오로빌 에코피메 Eco Femme

by 양애진
여행을 하면서 가장 난감할 때가 언제일까?


여자라면 아마 이구동성으로 ‘그날’을 외칠 것이다. 바로 월경. 집도 아닌 타지, 더군다나 인도에서, 그날을 보낸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찝찝한 일이다. 행여나 생리대도 없는데 갑자기 터져버리는 날에는 정말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생리대는 의외로 부피를 많이 차지한다. 장기간의 여행 동안 필요한 양을 모두 들고 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배낭 하나가 생리대로만 가득 찰지도..) 그러나 그때그때 현지에서 생리대를 사기는 조금 찝찝하다. 특히나 인도 제품은 솜과 면이 다 분리되는 바람에 10시간 버스를 타야 할 때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때문에 한 달 이상 여행하는 경우에 피임약을 먹는다는 사람들도 적잖이 보았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다섯 달 전, 인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날이 찾아왔다. 한국이나 미국에 있을 때는 휴지통에 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오로빌에서는 전혀 달랐다. 일회용 생리대는 분리수거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오로빌에서는 모아두었다가 한 번에 앞마당에서 태워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첫 ‘생리대 소각’


그런데, 이 생리대란 것이 생각 외로 얼마나 잘 타지 않는지, 상당히 골칫거리다. 솜이나 면으로 만들어졌을 테니 잘 탈 줄 알았는데, 몇 번을 불을 붙여도 불이 붙다가 꺼진다. 심지어 가만히 불에 대고 있어도 그을릴 뿐. 하.. 어떻게 이렇게 불이 안 붙을 수가 있지?


대체 어떤 물질로 만들어진 것인가 싶어 찾아보았다. 우선적으로 생리대를 하얗게 하기 위해 표백처리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이옥신이라는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심지어 얇은 생리대의 흡수력을 높이기 위해 온갖 화학물질과 고분자 흡수제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화학물질을 달고 다니는 셈이다.


아, 안 태우고 버리면 되지 굳이 귀찮게 왜 태우느냐고?

사다나포레스트의 재활용 헛(Zero Waste Hut)에서는 쓰레기를 20여 가지 이상으로 나누어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이라고 생리대가 재활용이 될 리가 없었다. "Contaminated Items(오염된 제품)" 통에 버려지는 생리대는 오로빌 안의 에코 서비스 센터로 옮겨질 뿐, 그곳에서도 역시 소각되거나 매립된다고 한다.


결국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 하는 '거리의 차이'일뿐 없애는 과정은 같다.
이렇게 버려지는 일회용 생리대가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20억 개란다.



이러한 일회용 생리대에 관한 문제는 오로빌 역시 고민하는 문제다.

오로빌 안에 있는 <에코피메>에서는 이를 위해 면생리대와 월경컵을 연구하고 있다.


시작은 '면생리대'였다.


하지만 면생리대의 경우, 아무리 환경을 위한다고 한들 매일 같이 빨고 말리고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게다가 오래도록 밖에 나가 있어야 할 때는 그 또한 상당한 골칫거리가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게 바로 '월경컵'이다.


종 모양의 컵으로 탐폰과는 달리 천연 실리콘으로 만들어져서 쇼크 증상 및 알레르기 반응도 오지 않는단다. 게다가 한 번 사면 5년이고 10년이고 평생을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고. 한 달에 소비하는 생리대 값을 생각하면 월경컵은 경제적인 선택이기까지 했다.


물론 처음엔 익숙지 않았다. 하도 좋다고 하기에 사두기는 했지만 나중을 기약하며 꺼리고만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월경컵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왔고.. 그 후에는..!!!


네버 백 어게인..!!


신이 나서 머드풀에서 뛰어놀았다

찝찝함도 없고 악취도 없다. 활동도 자유롭고 물에도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당연히 환경에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돈도 굳었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당시에 월경컵은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판매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경컵에 대해 아는 사람들 또한 드물었다. 생각 지도 못하게 인도에서 월경컵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 혼자가 될 것이 두려웠다. 너무 좋은데 낯설다는 이유로 이상하게 볼까 봐.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바로, 월경컵을 한국으로 배달하는 것!


당신의 천국(월경컵)을 배달해드립니다


당장에 페이스북에 포스터를 올리고 알리기 시작했다. 요즘 같이 편리한 세상에서 씻어서 다시 쓰는 월경컵이 팔리겠냐던 주변의 걱정과는 달리, 마감 이틀 전 20개를 넘어가더니 당일 '총 28개'로 배달이 마감되었다.

엽서를 쓰는 일은 가히 노동이었다.

2주 전, 월경컵팔이를 생각한 그때부터, 공지를 띄우고 주문을 받던 지난 일주일, 의외의 난관이었던 마지막 3일간의 엽서 쓰기, 그리고 배송까지. 주말 우체국 영업시간을 놓친 탓에 출국 전날까지 국제 배송 문제로 골머리를 쌓아야 했지만 큰 문제없이 무사리 마무리했다.


인도 친구 도움으로 한국까지 무사히 배달 성공!


사실 '나 혼자 쓰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테니 다들 쓰게 만들어 버리자!'라는 심보로 시작했던 월경컵 팔이. 그렇게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진 순간부터는 그것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머리보다 몸을 써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정작 가만히 앉아 글 한자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졌다.


그럼에도 어쩌다 벌인 '별일'은 전에는 몰랐던 '별생각'들을 불러왔다. 그 생각들은 일을 벌인 당사자인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바깥에서 이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로부터도 날아들어왔다. 그중에는 자부심도 있었고, 회의감도 있었고, 칭찬도 있었고, 걱정도 있었다. 그렇게 별일들이 낳은 별생각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비록 준비했던 33개의 천국을 모두 배달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만큼은 월경컵을 쓰는 사람,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을 찾아보기 쉬워졌다는 거! 그 하나만으로도 신이 났다.




...

그렇게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 달 뒤,

월경컵은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한국에서 더 이상 판매가 금지되었다.


[한국일보] 생리컵, 한국에선 왜 못 사나요? (2016년 12월 19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생리컵, 사고 싶어도 '한국'서는 못사는 사연 (2016년 12월 20일)
[디퍼] 생리컵이 또 거절 당했다 (2017년 03월 31일)

그리고 또다시 일 년 뒤,

월경컵은 한국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간동아] "생리대는 가라" 바야흐로 생리컵 시대 (2017년 11월 21일)
[YTN] 생리컵 국내 판매 첫 허용... 주의할 점은? (2017년 12월 7일)
[경향신문] 편의점·마트·H&B매장 등도 ‘생리컵’ 판매 시작 (2018년 6월 14일)


이전 13화보이지 않는 유지의 힘_가사 노동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