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유지의 힘_가사 노동에 대하여

by 양애진
자기가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일을 시킬 수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어


지금 오로빌에서 머물고 있는 집은 땅과 가까운 곳에 있다. 송송 구멍 뚫린 모기장 사이로 황토빛 흙들이 날아오고, 열린 창문으로는 나뭇잎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매일 먼지 쌓인 바닥을 쓸어야 하고, 음식이라도 흘리면 개미들이 모이지 않도록 그때그때 쓸어줘야 한다. 날이 더운 탓에 금세 줄어드는 물은 꼬박꼬박 잘 떠와야 하고, 얼음은 동이 나지 않게 틈틈이 채워 넣어 줘야 한다. 화장실 수건도 갈아주어야 하고, 땀에 젖은 이불보도 빈번하게 바꿔줘야 한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티끌 모아 태산이 바로 집안일이었다. 웃프게도 하루라도 건너뛰면 집은 순식간에 숲 속의 버려진 폐가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살림이란 그런 거였다.

아무리 해도 티는 안 나지만, 하루만 걸러도 티가 확 나버리는 일.

아무리 해도 하루가 지나면 언제 했냐는 듯 원상복구 되어버리는 일.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아,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 쉽게 여겨져 버리는 일.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집은 항상 깨끗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고, 혹여나 흐트러진대도 다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반듯이 정돈되어 있었다. 심지어 책장, 가구 모서리 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도 먼지가 앉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침 식사는 하루도 거슬러지지 않았고, 언제나 밥, 반찬, 국은 한 세트마냥 함께였다.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줄 알았다.


서울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게 되었다. 집안일을 몰랐기에 당연스럽게 내가 머무는 그곳은 점점 더러워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은 보이지 않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바깥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안의 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게 더 중요한 줄 알았다. 가끔 내 살림 꼬락서니를 살피러 오던 엄마의 타박에도 당당했다. 창피하지만 그랬다.


무심코 일과 가정 둘 중에 ‘일’에 우위를 부여하곤 했다. 어느샌가부터 나도 모르게 바깥으로 드러나고 보이는 일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 당시 흥행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도 그랬다. 분명 따뜻했지만 동시에 묘하게 답답했다. 집에서 자식을 돌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엄마들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보다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흔히 집은 사회의 한 축소판이듯 집안 살림은 나라 살림의 축소판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가정을, 나아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장 단단해져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유지의 힘’이었다. 하찮다고 함부로 무시하다가는 온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집안일이었다.


그렇지만 맞벌이 부부가 증가할수록 가정부의 수요 역시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종종 노동력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그 노동이 가진 '가치’를 폄하해 버리곤 한다. 돈이면 다 해결될 것 같으니까 ‘돈을 주면 집안일을 안 할 수 있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벌어야지!’가 결론이 되어 버린다. 바깥의 일만 잘하면 안의 일들도 잘 해결될 것 같다.


이게 문제였던 거다. '주부'를 세상 물정 모르고 그저 살림이나 하는 존재로 보는 것, '집안일'을 될 수 있으면 하고 싶지 않은 일, 돈만 있다면 절대 하지 않을 일 혹은 보잘것없는 일로 치부하는 그런 시각이 문제였던 거다. 집안일과 바깥일을 특정한 성역할로 구분해 우위를 결정 해버 리거나, 혹은 집안일보다는 바깥일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린 그런 환경이 문제였던 거다.


오로빌에서는 “아내가 아파 대신 애기 학교 데려다주느라 오늘 지각할 것 같다” “자식이 커서 집 크기를 늘려야 하니 휴가가 필요하다.”라는 말들이 허용이 된다. 이에 “공과 사 구별은 확실해야지! 건강을 챙기는 것도 자기 능력이야!” 라며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인간으로 낙인찍어버리는 말이 아니라, “그래 많이 걱정되겠다. 얼른 집에 들어가”, ”오~! 그래? 좋네! 휴가 얼마나 필요하니? 일주일? “이라는 말들이 돌아온다. 무엇보다도 가정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일이 가정의 위에 서 있지 않다.


물론 오늘날은 한 가장이 네 식구를 먹여 살리던 <응답하라 1988>의 80년대가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고, 심지어 맞벌이를 해도 네 식구는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가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저 무작정 출산율이라는 숫자를 높이기보단, 무작정 일을 우선시하기보단,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무게중심이 일로 치우치지 않게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게 먼저 아닐까.


6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많이 달라졌을까. 코로나 이후로 조금 더 일상을 중요시하는 풍토가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란 어렵고, 주변 동기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제아무리 일상과 생활의 중요성을 외쳐도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이전 12화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