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생리컵을 파는 것. (2)일회용 생리대의 편의성. (3)처녀막 용어
생리컵을 판지 이틀 째,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 생각에는 한국처럼 일회용 천국인 나라에서 생리컵이 잘 팔릴지 의문이다. 너도 알다시피 한국은 어디서나 쉽게 갈아 차고, 화장실에서 버릴 수 있는데, 굳이 그걸 사서 번거롭게 씻어 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응원을 해주던 친구가 건의를 해왔다.
"처녀막이라는 용어가 불편해. 대신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두 메시지를 받고 정리를 해 보았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생리컵을 판다고 말한 후부터, 혼자서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외부의 시선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말로만 듣던 다단계에 빠진 옛 동창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 생리컵을 팔고자 하는 나 자신을 납득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애초에 변명을 할 이유도 없는 당연한 일인지라 변명이라는 이름의 '생리컵 홍보' 시작.
'장사를 한다는 것'에서는 그다지 충돌지점이 생기지 않았다.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린 모두 팔이 꾼들이니까. 지식을 팔거나, 기술을 팔거나, 음식을 팔거나, 그림을 팔거나.. 다만 '무엇'을 파느냐만 다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생리컵을 판다는 것'은 꽤나 뿌듯한 일이다. 부모님과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거슬림 없는 가정환경이었기에, 밖에서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어릴 적, 생리라는 말을 꺼냈다가 "여자애가 낯부끄럽지도 않냐"는 타박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 생리는 생리로 불려지지 못했다. "생리" 대신, "마법에 걸린 날" "그 날'이 되었고, "생리해요" 대신, "배가 아파요" "몸살이 났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기억 속에 '생리'라는 단어는 공공연하게 다루어지지 못한 채 거의 금기되다시피 한 단어였다.
생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데 대체 왜?
그렇기 때문에 행여 다 팔지 못해, 본전은 커녕 적자가 난다고 해도, 꼭 한 번쯤은 대놓고 말해 보고 싶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동안 숨겨오고 혹은 부끄러워했던 이 생리라는 것을.(정확히는 월경이다)
일회용 생리대, 물론 편하다. 한 번 쓰고 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아빠의 '때문에 사람들이 생리컵을 쓸까?'라는 물음은 아빠는 생리를 해본 적이 없는 '남자'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 생리는 단순히 생리대를 버리는 것에서 끝이 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리에 대한 이야기가 밖에서 다루어지지 않다 보니, 생리에 대한 잘못된 생각도 많이 생긴다. 생리란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하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 보니, 어떤 남자들은 여자들이 정말 한 달에 '한 번' 소변을 보는 것처럼 피를 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생리를 한다는 것은, 생리를 하는 약 4-6일 내내 피 묻은 생리대를 피부에 맞대고 있는 일이다. 미리서 생리대를 준비라도 하지 않은 날에는 속옷, 심지어 겉옷에까지 피가 묻기 일쑤이고, 습습한 여름 공기 같은 기분 나쁜 꿉꿉함을 종일 느끼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움직일 때마다 생리대가 쓸리는 피부는 아프기까지 하다. 아기들이 똥기저귀를 오래 차고 있으면 엉덩이가 짓무르는 것을 생각해보라.
생리컵의 장점은 비단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 머물러 있지 않다. 미리서 차 놓았다가 허탕 치고 버려야 하는 생리대와는 달리, 미리서 넣어 놓아도 상관이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고, 습기가 차지도 않을뿐더러, 피부 쓸림도 전혀 없다는 것도 엄청나게 끌리는 점이다.
일회용 생리대가 버리기에 편리하다고?
생리컵은 생리 내내 편리하다.
처녀막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의외로 만연하다. 사실 처녀막이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작은 사람, 큰 사람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상하리만큼 처녀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처녀막 재생 수술' '이쁜이 수술'등 말도 안 되는 별의별 수술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친구는 이 '처녀막'이라는 용어 자체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단어가 가진 권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의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처녀막이라는 기존의 단어를 고치고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요즘에는 처녀막이라는 단어에 '섹스를 하기 이전의 여자, 처녀'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을 문제로 여겨, 처녀막이라는 단어 대신 '질막'이라는 의학적 용어를 쓰려고 한단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인 나조차도 몰랐던 이야기다. 질막과 처녀막은 별개의 것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아직은 처녀막이라는 단어가 만연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생리컵을 파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 대상은 '대중'이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어는 사회적 약속인 만큼 그에 걸맞은 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적절한 언어의 사용은 정말 중요하다. 친구가 불편했던 이유도, 친구는 처녀막이라는 단어에 담긴 대중의 인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보다 나은 새로운 단어를 사용한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내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해봤자 아직 사회적으로 널리 약속되지 않은 단어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나는 처녀막이라는 단어가 싫어. 그러니 다른 언어를 쓰겠어!"라고 해봤자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결국에 고쳐져야 할 것은 '처녀막'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아니라, 처녀막에 담긴 우리의 '인식'이다. 아직은 잘못된 인식이 만연한 상태에서, 처녀막이라는 용어를 새로운 단어로 바꾸어 봤자 겉모습만 바뀔 뿐, 그 안에 담긴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질막은 여전히 처녀막이다.
애초에 우리가 처녀막에 대해 말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게 맞는 일 아닐까. 처녀막이라는 단어 사용 하나에 이렇게 민감해진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처녀막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만연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굳이 Q&A란에 처녀막에 대한 의문을 적어 넣은 것이 그 때문이었다. 실제로 생리 컵에 끌리는 상당한 수의 여성들이 '처녀막 문제'로 걱정을 한다. 하지만 그 걱정을 직접적으로 묻기는 겁이 난다. "질 안에 삽입하는 게 무서워요."라고 돌려 물어봤자, 정작 자기가 진짜로 걱정하는 '처녀막'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게 된다. 그렇게 긁어지지 못할 걱정을 대놓고 까발려서 시원하게 긁어버리고 싶었다.
이상 변명 1,2,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