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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Nov 01. 2023

딱 이맘때의 아침 산책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의 아침 산책은 7시. 준원의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 함께 집을 나선다. 요즘은 그때 밖에서 떠오르는 빨간 해를 보게 된다. 해가 짧아지고 일교차가 커지며 아침 거리는 몰라보게 한산해졌다. 얼마 전까진 운동하는 사람도 다른 강아지도 많았는데. 길에서 뭔가를 먹기 좋은 계절엔 미처 치우지 않은 쓰레기도 자주 보였는데 이 즈음이면 길에 뭐가 잘 없다. 대신 낙엽이 수북하다.


같은 계절이라도 아침과 저녁 시간에 따라 거리의 에너지는 사뭇 다르다. 아침에 일터나 학교로 향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표정은 일과를 마친 후 초저녁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전체적으로 반쯤 잠들어 있는 차분한 분위기랄까.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배달 오토바이도 아침엔 없다. 아침의 이런 고요함은 물론 겨울로 갈수록 더 깊어진다.


토리와 함께 걷는 속도는 꽤 느리다. 토리에겐 곳곳의 냄새를 맡는 것이 산책의 주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 운동 효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토리가 열심히 후각으로 세상을 둘러보는 동안 내가 하는 일은 주변을 관찰하는 것. 위험한 걸 밟거나 주워 먹지 않도록, 다른 개가 오는 지도 잘 살펴야 한다. 때문에 내 시선은 발밑으로 향하는데 화단의 나무와 꽃, 곤충들, 흙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게 된다. 덕분에 계절의 작은 변화나 오늘 펼쳐질 날씨에 대해 예전보다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30분 남짓을 토리의 속도로 느릿느릿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때 떠오르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은 자극적인 릴스나 가십을 접할 때와도, 정신없이 일에 쫓길 때와도 확연히 다르다. 조금은 더 내면을 향해있고, 나의 중심에 가까운 것들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길고 험난했던 산책 훈련 덕이기도 하다. 토리가 미친 듯 줄을 당기던 때에는 생각에 잠기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여전히 다른 강아지가 오면 사색의 호사는 끝이 난다.)


해가 더 짧아지면 산책 시간은 좀 더 뒤로 밀려날 것이다. 겨울은 아침 산책이 가장 힘든 계절이다. 추운 걸 무척 싫어하기도 하지만 얼어붙은 눈에 미끄러지지 않을까, 염화칼슘을 밟진 않을까 조심해야 할 것이 무척 많아진다. 산책 전 나와 토리를 따뜻한 옷으로 꽁꽁 싸매는 일까지 번거로움은 배가 된다. 머리까지 얼어붙는 추위에 사색 따위는 사치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딱 이맘때, 얼마 안 남은 귀한 아침 시간을 감사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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