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르사아사나를 통해 배우는 것들
얼마 전 배우자가 머리서기에 성공했다. 나를 따라 요가를 시작한 지 1년 만이다. 수련이라고는 일주일에 딱 한 번이 전부인데 어떻게 저렇게 진도가 빠르지? 싶었다가 그는 평생 꾸준히 생활 운동을 해온 사람이란 걸 기억해 냈다.
아무튼 머리서기를 해낸 첫 순간이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이다. "축하해!"라는 말과 박수가 절로 나왔다. 그에게도 기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머리서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가 아사나 중 하나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성취해 냈기 때문일까? 요가를 시작하고 3년 만에야 겨우 10초 정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머리서기만큼 꼭 ‘이루고 말 거야’ 생각했던 자세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머리서기가 될 듯 말 듯한 상태가 이어지던 2019년, 연말에 하와이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꼭 와이키키 해변에서 머리서기를 하고 말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뤘다.
지금은 최대 20분까지 유지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도 매번 머리서기를 할 때마다 처음의 성취감이 떠오른다. 몸으로 뭔가 그럴싸한 것을 해냈다는 기분 좋은 감각. 어쩌면 나는 그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자주 머리서기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별다른 준비 동작 없이도 바로 할 수 있다는 것도 머리서기의 장점이다. <요가디피카>에도 이렇게 쓰여있다. "시르사아사나로 균형 잡는 법을 배운 후, 다른 아사나를 하기 전에 시르사아사나와 그 일련 동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머리서기는 아사나보다 무드라(mudra: 신체의 특정 부위, 특히 손의 제스처를 통해 에너지를 조절하는 기술)에 가깝다는 관점도 있다. 꾸준히 머리서기를 해온 내가 느끼기에도 배가 가득 찬 상태만 아니라면 수련을 시작하는 첫 자세로 삼아도 무리가 없다.
가끔 시간이 부족하거나 간단하게 수련하고 싶은 날, 머리서기에서 여러 가지 변형을 더해가며 15~20분 정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수련을 마친다. 머리서기 상태로 가부좌를 틀고 전굴, 후굴, 그리고 비틀기까지 연결해 본다. 짧은 시간이지만 뭔가 제대로 해낸 기분으로 개운해진다. 이 정도면 무척 효율적인 아사나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머리서기는 즉각적인 전환을 가져다주는 자세다. 한참을 유지해야만 느낄 수 있는 깊은 자극도 분명 있지만, 몸을 거꾸로 하는 역자세다보니 잠깐씩만 해도 꽤 강력하다. 딴생각을 하면 바로 떨어지기 때문에 좌법에서보다 훨씬 집중할 수밖에 없다. 가끔 일을 하다가 너무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는 대신 머리서기를 5분 정도 하곤 하는데 효과적이다.
여기저기서 멋진 사진을 남길 수도 있는 것도 머리서기의 매력. (잠깐의 부끄러움만 감수한다면) 실내 매트가 아닌 해변, 숲과 같은 탁 트인 공간에서 거꾸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해보면 알겠지만 꽤 근사하다.
머리서기를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골반이 열려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복근과 버티는 힘도 받쳐줘야 한다. 하지만 완성을 위해 가장 마지막에 필요한 건 균형 감각이다. 계속 반복하며 나만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발을 땅에서 띄우는 데까지 성공했는데 다리를 올리는 순간 바로 떨어진다면, 혹은 다리를 펴고 잠깐의 지속이 어렵다면 아직 균형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근데 균형점이라는 건 강사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 나 스스로 발견해야만 한다. 지도자는 가이드만 줄 뿐이다. 다리를 땅에서 띄우는 데 성공했다면 점점 더 편안한 나만의 균형점을 찾아본다. 처음엔 휘청휘청 떨어질 것만 같다. 5초도 지속이 어려운 처음을 지나 5분, 10분을 넘게 지속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강사의 핸즈온이 아닌, 내 몸에 집중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일정 기간 필요하다. 매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몸을 일으켜 요가 매트 위에 가져다 놓는 것부터 시작이다.
균형점을 찾는다는 개념을 삶에도 가져와본다. 갑자기 고작 스물세 살 때 인생에 대해 정의 내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이 말을 고쳐야겠다. 인생은 새로운 경험에 그저 힘 없이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물론 그 모든 것은 나 혼자 해야 한다. 머리서기처럼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하지만 무뎌진다는 표현 대신 균형점이란 단어가 주는 어떤 위안이 있다. 외로운 주체의 무게를 어디 한 번 감당해보자 싶은 용기를 준다.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고 방황하는 마음이 들 땐 머리서기를 해본다. 매 순간 미묘하게 달라지는 균형점에 집중해 본다. 그리고 머리서기를 한창 연습하던 그때를 떠올린다. 나는 지금 삶에서도 균형점을 찾고 있는 중인 거라고. 흔들릴지언정, 가끔은 떨어질지언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