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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Jan 24. 2023

할머니 손맛은 위대하다

미국 사람들도 꼼짝 못 하는 '우리 할머니' 레시피


신당동에 떡볶이 좀 하시는 <마복림할머니>, 장충동에서 보쌈하시는 <뚱뚱이할머니>, 황학동에 곱창 전문 <안경할머니>가 계시듯… 엘에이에도 요리왕 할머님들이 여럿 계시다. 길거리에 Grandma's Deli(할머니 델리)라고 쓰여있는 간판, Grandma's recipe(할머니의 레시피)라고 쓰여있는 메뉴판을 보며 남편이 ‘여기 분들도 할머니 참 좋아하시네...’라고 할 정도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코리아타운 근처 ‘아말리아 할머니‘의 과타말라 식당.


한국 요리에서 양념맛이 중요하다면, 서양요리는 각 재료가 어우러져 맛을 내서 꼭 '레시피' 대로 만들어야 같은 맛이 난다. 그래서 미국에서 자주 거론되는 게 '할머니 레시피'. 어려서 먹고 자란 '집 밥'의 맛을 똑같이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할머니 레시피'를 대대손손 계승하는 문화가 있다.


말하기 좋아하는 엘에이 사람들은 음식을 설명하면서도 '할머니 레시피' 얘기를 자주 한다. '우리 할머니 타말레(Tamales: 옥수수 반죽에 속을 채워 찐 멕시코 전통요리) 레시피를 재현했어요,' 라고 하기도 하고메뉴판에 '우리 할머니 레시피대로 구워낸 버터빵'이라고 적어놓기도 한다. 마케터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나는 이걸 '할머니 브랜딩'이라고 부른다. 같은 타말레도 '할머니 레시피'라는 걸 듣고 나면 더 전통적으로 느껴지고, 같은 버터빵도 '할머니 레시피'대로 구워냈다고 하면 더 부드러운 것 같기 때문이다. 할머님, 손주들이 진심이 아니라는 게 아니다. 나만 해도 우리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어떤 맛집도 할머니 손맛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엘에이에서 유명한 베이커리인 <PORTO'S(포르토스)> 역시 '할머니 레시피' 하나로 대박 친 가게다. 빵을 좋아한다면 성지순례를 해야만 하는 must visit. 어느 정도냐면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놀러 온 친구에게 '엘에이 어때?'라고 물었더니 '<포르토스> 먹었어!'라는 답변이 왔을 정도다.



PORTO'S Bakery & Cafe (포르토스) - Glendale 지점

Address: 315 N Brand Blvd, Glendale, CA 91203

Website: https://www.portosbakery.com/


<PORTO's(포르토스)>의 역사는 1960년대로 돌아간다. 쿠바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베이킹 금손' 로사 할머니의 빵이 점점 유명해져 결국 빵집까지 차리게 된 것. 로사 할머니의 성을 따서 <포르토스>가 된 에코파크의 작은 베이커리는, 가족이 함께 키워내며 현재는 남가주 지역에 6개 매장을 둔 랜드마크 체인으로 성장했다. LA타임스가 꼽은 '남캘리포니아 최고의 베이커리' 타이틀에 이어, Yelp(미국 맛집 정보 대표 사이트)에서 '미국에서 먹어봐야 할 Top 100 레스토랑'에서 1등을 하기도 한 전국구 맛집. 


버터냄새가 켜켜이 찌든 오래된 매장을 예상했는데, 현대식 인테리어의 넓은 공간이 백화점 푸드코트 못지않다. 매장 내에 교차하는 테마는 'old and new'. 진열장의 유리는 번쩍이며 광이 나지만, 벽에는 포르토 가족의 오래된 가족사진이 걸려있는 식이다. 이제는 기업이 되었지만 소박했던 가족 베이커리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포르토스> 의 시그니처 노란 박스


우리 할머니 집에 가면 늘 김치며 음식을 바리바리 들고 서울에 올라가는데, <포르토스>를 나오는 사람들도 모두 양손 가득 커다란 노란 박스를 들고 나온다. 엘에이 사람들이 딱 보고 '거기 박스다!' 라고 하는 이 노란 박스는 <포르토스>의 상징과 같다. 커다란 박스에 빵을 가득 포장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에서 우리 할머니가 챙겨주던 명절음식 생각이 난다. 


이곳의 베스트셀러인 치즈롤(Cheese roll)은 고소한 치즈 필링이 들은 손바닥만한 패스튜리. 가볍고 버터리해서 바스락 바스락, 두 세 입이면 금새 사라진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최소 6개는 싸 가게 된다. 구아바, 망고 같은 열대과일을 사용한 베이커리도 이곳의 스페셜티다. 새콤달콤한 구아바 잼이 더해진 치즈롤(Guava cheese roll) 처럼. 매장 한쪽에서는 식사메뉴도 제공하는데, 훌륭한 쿠바 가정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안에 고소한 치즈가 들은 베스트셀러 치즈롤.


초보 요리사는 레시피대로 완벽한 요리를 만든다. 오히려 요리 근육이 생기면 완벽하지 않은 자신만의 요리를 하게 되는데, '내공이 있다'는 건 그럴 때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할머니 레시피' 또한 완벽해서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자식들을 먹이며 키워낸 할머니들의 내공이 묻어있기 때문에 사랑받는게 아닐까 생각을 한다. 

 

사실 모든 할머니들이 '레시피'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나의 할머니는 '레시피' 따위는 절대로 적어놓지 않으시는 데다 요리할 때마다 구경하는 나를 아리송하게 만드시는데. 요리하는 할머니 옆에서 좀 가르쳐달라고 하면 꼭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셔서 나를 당황하게 하신다. 


'국에 들어갈 무는 이렇게 숭덩숭덩 썰어야 맛나' 

(...이렇게 써는게 어떤 건지...?)


'나물은 너무 슴슴하면 맛이 없어!' 

(... 그럼 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하지만 참 신기한 일이다. 레시피가 없어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어도, 할머니 음식을 먹으면 바로 느낄 수 있다. 자식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할머니 마음. 어쩜 우리네 할머니 음식은 다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한다. 누구도 똑같이 만들 수 없는 무형문화재, 열 분의 할머니가 만든 음식은 열 가족의 역사다. 어쩌면 할머니 레시피가 아니라, 할머니 손맛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며… 세상의 모든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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