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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Jan 10. 2022

프롤로그

나를 키워준 나의 엄마에게


이 책을 쓸 생각은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와 키우며 하게 됐다. 


처음에는 내 이야기만 쓰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것을 쓰려고 할 때마다 엄마가 옆에서 해준 이야기들이 먼저 떠올랐다.


30여 년을 '누구 엄마'로 살아온 엄마는 처음 강아지를 키우는 나를 보며 자주 한심해하고, 애틋해했다. 개는 개라고 주장하면서도, 내가 어린것을 제대로 보살필 줄 모른다며 많이 혼을 냈다.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가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지가 보였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나의 유년기가, 엄마의 가장 젊고 싱그러웠던 날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엄마는 한 번도 우리를 키우며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난 무식하고 용감하게 강아지에게 약속했다. 


'내가 널 잘 키워줄게.' 


처음 만났을 때 손바닥 위에 사뿐히 올라가던 조그마한 털 뭉치는 일 년 만에 10킬로에 육박하는 진짜 '개'가 되었다. 열심히 먹고 싸고 무럭무럭 자라는, 매일 숨 쉬고 변화하는,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책임지겠다는 약속은 무거웠고,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생각 가는 대로 손쉽게 처리해버리지 못하는, 하루하루 조심스럽게 공을 들여 완성해나가야 하는 작업이었다.


키워지고 키우고 키워준 사람을 찾아가는, 돌고 도는 회전목마. 


나는 강아지를 키우며 엄마를 자주 생각하고 엄마를 자주 찾았다. 스무 살 지나고는 쭉 밖에서 따로 살아온 딸이었다.


엄마 루디 이해가 안 돼.

엄마 루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엄마 루디가 말을 안 들어.


엄마, 엄마는 우리 키울 때 안 힘들었어?


힘들지 않았다는 말 대신 엄마는 말했다. 아니 흘러가듯 툭 던졌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나는 너네를 낳고 기른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야.


별 일 아니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자신은 모든 걸 주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더 바랄 것도 없다는 말투였다.


이상하게 계속 그 말이 생각이 났다. 


귀찮다는 엄마를 주말마다 불러내 얘기 좀 해달라고 졸랐다.


무슨 얘기?

그냥, 엄마가 우리를 키우면서 느낀 거?


왜?

그냥.


참 내.


엄마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술이나 커피를 홀짝거리며 술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말들을 정신없이 주워 담아 종이에 옮겼다. 그건 작은 책이 되었다. 바로 이 책.


주변에서 책에 컨셉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엄마가 들려주는 육아 이야기> <다시 쓰는 엄마의 육아 일기>, 뭐 이런 것들.


하지만 라벨을 붙이기가 조심스러웠다. 생각해보면 이건 내가 조금은 일방적으로, 아니 완벽하게 나만의 모티브를 가지고 벌인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엄마를 위해서 이 책을 만들고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을 키워준 엄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않는 엄마에게, 덤덤하게 너네를 키운 일이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엄마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책은, 

내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며 느낀 점들을 엮으려 시작되었지만. 


강아지를 키우며 오히려 엄마가 더 많이 생각나서, 엄마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져서, 엄마의 이야기들을 담게 된 책이다.


엄마를 위한 책.


강아지를 입양하고 나 나름의 육아 여정이 시작되었다 생각했었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딸로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엄마가 엄마의 엄마의 딸로 태어난 것에서, 

나의 할머니가 할머니의 엄마의 딸로 태어난 데서일수도 있고.


키워내고 키워지는 과정 속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어있을테니.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에 대한 간단한 소개.


나의 엄마는 1965년 익산에서 할머니로부터 태어났고, 

나는 1990년 서울에서 엄마로부터 태어났고, 

나의 강아지는 2018년도에 부천에서 푸들 사월이로부터 태어나 내게 입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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