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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래 Jun 10. 2019

예비 보건교사의 진로 방황기

나는 보건교사가 되고 싶은 걸까

"쌤, 여행을 서울로 온다고요?"



 같이 간호학 스터디를 하고 있는 선생님께 여행 계획을 알리니 깜짝 놀란다. 누가 여행을 서울로 오냐는 말이다. 저 지방 사람이잖아요, 라며 당당한 척 말했지만 그땐 사실 조금 부끄러웠다.




 손에 쥐어진 목표는 간호학과에 입학하기 전부터 보건교사였다. 원하던 과에 입학하지 못해 길을 잃은 내게 부모님은 보건교사가 되라며 간호학과를 추천했다. 원래 내가 가진 꿈보다 작고 초라해 보인 보건교사는 꿈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반항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일단'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교직이수자를 뽑을 때도 '일단' 신청했고 선발되었다. 학과 공부가 재미없고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해서 수석으로 졸업했다.



 겉으로 보기엔 잘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간순간 작은 부표만을 잡기 위해서 수영했을 뿐, 실상은 끝이 없는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왜 공부해야 하는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일단' 열심히 해서 시험에 붙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살기는 싫었다. 일단 무언가를 이루고 나면 순간 기분이 좋긴 했지만 마지막엔 결국 허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한 언니의 조언을 듣고 짧게 여행을 가기로 했다. 지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젊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서울로 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나도 뭔가를 깨닫지 않을까 해서 서울로 가기로 한 것이다.




 이태원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오후쯤 일어나 노트북을 챙겨 지하철을 탔다. 광화문을 둘러싼 고층건물들도 보고 교보문고에 가서 차분하고 우아하게 책을 읽기 위해서다. 웃기게도 가는 내내 온 힘을 다해 서울 사람인 척을 했다. 지하철 안에서 촌티가 나지 않도록 표정관리를 하고, 일부러 긴장하지 않은 척을 했다. 미리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은 뭔가 초보 티가 나지 않을까 싶어서 일부러 지하철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제야 내렸다. 그렇게 환승을 거쳐 교보문고에 도착했다.



 큰 문을 거쳐 도착한, 내 상상 속 우아한 교보문고는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랐다. 넓은 길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앉을 수 있도록 소파나 큰 테이블이 제법 있었으나 모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심지어 그 주변에 서있으면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서울이라는 공간에 던져놓으면 서울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도서관에 몸을 던져 놓으면 어떻게든 공부가 굴러갔던 것처럼. 내 미래에 대한 생각도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많은 서울로 오면 어떻게든 굴러가서 답을 찾아낼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서울의 모습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결국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스스로 생각할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서울로 오는 것은 핑계였던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회피하고 마치 무기력의 원인이 집과 도시에 있는 것처럼 도망 나온 것이다. 결국 책 두 권을 황급히 사고 나와 가까운 카페에 찾아가 카페라테를 마시며 본격적으로 내 진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커피빈에서 카페라떼와 샌드위치. 어떻게든 여행의 흔적을 남기려 사진 한 장을 기어이 찍었다.



글이 쓰고 싶어 보건교사 '일단' 택했다.

 글 쓰는 것을 취미로 하고 싶은데, 간호사가 되어 3교대를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에 간호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한편 중고등학생 때 보건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보건교사가 된다면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보건실에서 글을 쓸 수 있겠지 싶었다(생각해보면 근무태만인데 뻔뻔하게도 그게 로망이었다). 그런 로망에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도 한몫했다. 보건교사가 목표라고 하면 '엄청 꿀 빠는 직업'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고등학교 교사인 아빠조차도 선생님들 사이에선 딸 낳으면 보건교사를 시켜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되기만 하라고, 보건교사 편하고 좋아 보인다며 항상 말해왔다.



 대학교 3학년, 교직실무 수업에서 강사로 오신 교감선생님께서 내 이런 생각을 듣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아주 잘못 생각하고 계시네요. 저희 학교 보건 선생님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시는데요. 허허허. 이번에 정수기 문제 때문에 엄청 골치 아파하시더라고요. 보건 선생님 한가하지 않아요. 엄청 바빠요.



 많은 학생들 앞에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당한 것도 창피했지만 내 로망이 정말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직면한 것이 충격이었다. 아빠와 달리 초등학교 교사인 엄마가 내 로망이 잘못된 것이라 항상 말해왔지만, 제삼자가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4학년 때 직접 보건 교생을 나가서 직접 내 눈으로 본 보건 선생님은 확실히 로망과는 차이가 있었다.



 교생을 나가게 된 고향집 근처에 있는 여자 중학교는 전교생 400명 정도의 크지 않은 학교다. 그럼에도 보건실은 쉬는 시간마다 꽤 바빴고, 다녀간 학생의 이름을 적는 보건 일지는 하루에 몇십 번까지 채워졌다(보건 선생님께서는 이것이 다른 학교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 하셨다). 게다가 과거에 일 년에 한두 번씩 보건 선생님이 들어와 성교육 비슷 무리하게 한 것과는 달리 '보건'이라는 고정 과목이 있어 하루에 2~3시간씩 보건수업을 나갔다. 겨우 4주일 간 관찰한 보건교사의 업무이지만, 차분하게 차를 마시긴 개뿔,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마저 별로 없어 보였다. 당황한 내 모습을 보셨는지, 선생님께서는 "생각과는 다르죠? 이래도 보건교사가 하고 싶어요?" 라며 장난스럽게 웃으셨다.


 선생님으로부터 잠깐 이야기를 들은 것 중 하나는, 특히 남학교에 배정받게 되면 환자가 끊이질 않고 업무강도가 세서 동기 중 한 명은 남학교 1년 있다가 바로 휴직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보통 보건은 담임을 맡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동기 중에 담임을 맡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규모가 큰 학교에 가게 되면 정말로 '밥 먹으러 갈 시간'이 없어서 급식실에서 식판을 갖다 준다고도 한다. 바쁘게 일하지만 보통 한 학교에 보건교사는 한 명이기 때문에 보건 업무는 오로지 혼자서 해야 하고, 티가 나지 않는 일들을 하기 때문에 동료 교사들은 편하게 일하는 줄 알고 잡무를 떠넘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간호사에 비하면 느긋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주위 사람들, 심지어 같은 학교 선생님들마저도 그렇게 말하는 '꿀 빠는 직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건 수업을 하는 나. 주위 선배들에게 보건교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수업을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각하면 할수록 아직 되지도 못한 보건교사에 대한 애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또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을 질투하듯 보건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로. '교사' 좋다. 병원 실습에 시달리다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 자존감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깜짝 놀랐던 것이, 아빠뻘인 선생님께서 고작 실습생인 내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시고 정말 동료로서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 신경질적으로 "학생!"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움츠러들던 병원 실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병원에서는 내 존재가 처음 입원하는 환자에게 주는 병실생활안내 팸플릿만도 못하게 느껴졌었다. 그냥 바이탈 재는 기계 정도? 그런 미개한 실습생 입장에서도 신규 간호사는 연차 있는 간호사들에게 '동료'로 대접받고 있다기보다는 가르쳐야 할 골치 아픈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니 모든 사람들이 예민해져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처음 간호사가 되어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자존감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것 같았다. 물론 아직 교사가 되지 않아 학교 안에서 신규교사가 받는 대우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같은 실습생 입장에서 비교했을 때 인격적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보건교사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게 자존감은 돈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보건실'이 좋다. 보건실의 특성상, 동료 교사와 다르게 내 공간이 따로 있고 비교적 다른 업무를 한다(동료 교사와 협력하지 않는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독립적인 공간에서 내 일을 홀로 멋있게 처리해내는 모습은 내가 꿈꾸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그런 특성 때문에 보건교사가 교사들 사이에서 소위 '왕따'와 비슷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많은 학과 친구들과 섞여 있었을 때에도 왕따나 다름없었으니 오히려 왕따가 되더라도 업무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핑계가 생겨 좋아 보였다.



 세 번째로, '학교'가 좋다. 학교는 매년 비슷한 일정이 반복된다. 따라서 일 년이 예상되고 그에 따라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하루, 일주일, 더 나아가 일 년이 계획이 세워져 있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 '평일은 직장에 나오고 주말에 쉰다'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가 어떤 곳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내 업무가 정해져 있고 계획된 시간 안에 그 업무를 배치할 수 있어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고시생의 일상과 고민을 글로 남겨 브런치에 올려보기로 했다.


 보건교사가 되고 싶은 이유 3가지가 떠오르자, 중학교 2학년에 꿈을 처음 가졌을 때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로 보건교사가 되고 싶어 졌다. 이 외의 다른 삶은 내 삶이 아닌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싸고 숙소가 있는 이태원으로 향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길게 느껴졌던 방황의 끝을 축하하는 폭죽 소리 같았다.



 벌써 6월의 중반을 향하고 있다. 지금쯤 노량진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을 임용고시생들이 훤하다. 3박 4일 동안 서울에 와서 한 것은 별거 없다. 원래 있던 곳에서도 할 수 있는 책 사기와 카페 가기가 전부였다. 이제 와서 미친 짓을 한 건가 무서워지기도 한다. 며칠을 써서 여행을 오고, 비생산적인 활동을 한 나는 치열하지 않은 임용고시생이다. 공부를 하다 보면 분명 지칠 때가 오고 그때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생긴 이상, 다시 두근거림을 느끼며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조금 더 치열해질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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