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죤이 얼마 전에 제이드에게 장난스럽게 "뚱땡이"라는 발언을 했다. 올해 들어 공부 스트레스로 인해 살이 부쩍 찐 제이드는 그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죤은 그런 제이드가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그런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 제이드는 그 발언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뚱땡이'라는 말이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거기에 대해서 죤은 장난으로 한 말인데 뭘 그러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했다. 물론 죤도 제이드의 상처에 대해 인지를 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제이드도 그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그에겐 마음에 상처로 남아 계속해서 악몽처럼 떠오르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제이드가 받았던 상처들에 대해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죤에게 한 번 더 이야기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죤은 나의 말들에서 세대차가 난다고 했다. 참고로 우리는 약 20살가량 차이가 난다.
"근데 확실히 세대차가 이런 데서 나는 거 같기도 해.
나도 자꾸 내가 실수한다고 하면 맘 놓고 말은 못 할 듯 해. 암튼 미안해, 여러모로."
그래서 내가 말했다.
"죤, 내가 생각하기엔 세대 차이는 아닌 거 같아."
그대가 살아온 삶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서, 마음이 많이 곪지 않았어?
그렇게 참았기 때문에 아프게 살아왔고,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많잖아.
이게 일반화일 수는 있어. 하지만 내 입장에선 솔직함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 상처도 다 제각각 받는 거야. 언니가 괜찮다고 해서 모든 게 다 괜찮을 순 없어. 언니도 그 누구보다 그 부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최근 죤과 '말'로 인해 티격태격 부딪힘이 잦다. 가까워지고 편해진만큼 말이 쉽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 가벼운 말들은 가슴을 파고들어 생채기를 낸다. 그 상처는 나만 아는 것이지 그는 모른다. 나는 그에게 상처받음에 대해 말하며 말을 조심해달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말하면서도 그 상처의 경계는 죤이 가늠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는 내가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는 대화할 때 서로의 감정을 최대한 살펴야 한다. 편한 사이일수록 더 귀 기울이고 눈치를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했어도 그 자리에서 '그건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라고 말하고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갖을 수 있다. 이 필요성을 무시한다면 그 관계는 소원해지고 멀어진다.
사람마다 가진 콤플렉스가 다르다.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상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다. 배려란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을 생각하고 한 행동이라도 그 행동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배려가 아니라고 느낀다면 그건 배려가 아니라고. 그렇기에 공감과 배려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