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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요가생활 Dec 30. 2019

일상 요가 생활 - 돌봄

남편의 부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

 종종 삶이 유난히 피곤하게 느껴질 때 사고라도 나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주의한 차량이 나를 슬쩍 치여 불가피하게 얼마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그런 상상(그 와중에 병원비는 아까우니 부주의한 운전자의 보험에 모든 비용을 맞긴다는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하지만 대체로 사고 시의 충격(아픔)과 수족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떠올리면 차라리 ‘그냥 어떻게든 할 일 해놓고 편하게 노는 게 낫다’하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남편도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키 시즌 첫날, 남편은 다리를 다쳤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지만 한동안 무조건 안정하고 움직이지 않을 것을 처방받았다.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길게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게 된 남편은 빠른 회복을 위해 한 주 동안 회사를 쉬었고 그 이후로도 몇 주간 한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한창 재미 붙여  4회 이상을 치던 테니스와 얼리버드 시즌권을 끊어놓고 시즌 시작하기만 기다렸던 스키를 포기해야 함은 물론이고,  손과  다리가 멀쩡함에도 생각보다 많은 활동이 제한되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 적인 활동인 걷기와 앉았다 일어나기가 불편하다 보니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내가  도우미가 되었다.


 주말에 남편이 하기로 약속하고 미뤄두었던 덩어리  집안일  가지가  차지가 되었고, 혼자서 집에 있을  보다 어쩐지 3 정도 늘어나는 추가적인 집안일이 모두  몫이 되었다. 환자가  남편은 쉽게 어지르고 너무 아프다며 도통 치우질 못했다. 그리고 정말 수없이 나를 호출했다. 내가 수업하러 나가는 시간만을 제외하고 일주일을 내내 붙어있었더니 남편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판이었다.

하고 싶은 활동을 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집안 여기저기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대거나 책을 뒤적거리거나 언제쯤 다시 테니스를   있을지를 가늠하게 위해 인터넷을 뒤지는 남편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남편 병수발 한답시고 온갖 자잘한   맡아해주고 있으려니  사람이  귀찮게 하려고 다친 건가 하는 억측까지 들기도 했다. 볼멘소리를 하는 내게 엄마는 그럴수록   챙겨줘야 한다고 했지만, 차라리 내가 아파 드러눕고 싶다는 마음이 잠시 들기도 했다. 집안에만 처박혀 있으려니 좀이 쑤셔 절뚝거리면서도 집안을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는 남편을 보며 제발 정물처럼 가만히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금요일쯤 되니 스트레스가 몸으로 와서 평소에 상태가 좋지 않던 오른쪽  어깨에 담이 단단히 와서 며칠 고생했다.  와중에 남편은 나에게 장난을 잘못 걸었다가 기여코   폭발시켰다. 그쯤 되니 남편도 불편한 다리에 적응도  하고 눈치도 보며   일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돌아온 월요일, 남편이 다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부상으로 한 주 미뤘던 양가 부모님 댁에 방문했다(왼발 부상이라 다행히 운전은 가능하다.) 물리치료를 하며 다음 한 주 더 보냈더니 이제는 제법 많이 회복되어 다리에 무리 가지 않는 정도의 집안일들도 하고 그저 몸 푸는 정도지만 테니스 연습도 시작했다. 그리고  사이 부글부글 끓던 또는 한껏 예민해졌던  마음도 진정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생겼다.


 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누군가를 돌보는데 소질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책임감은 높은 편이라 내가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지는 못한다. 전부터 알고 있던 점이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혼자   없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서로서로 도움을 구하는 일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나도 어떤 경우에 돌봄을 받게  것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돌봐주어야  일이 생길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만약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관계를 원활히 유지하면서도 나와 나의 일상을 지킬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얼마 전에 읽은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문장이 생각났다.

저항하지 않고(무저항), 판단하지 않고(무판단), 집착하지 않는 (무집착)
-   가지는 진정한 자유와 깨달음의 세 가지 측면이다.


돌봄의 책임을 맡게 되었을   의무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다면, 남편의 의도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면  마음은  편안했을까? 밀도 높은 돌봄의 상황에서 벗어났을  자연스럽게 일상의 평안이 찾아왔다. 남편과 산책 삼아 동네 도서관과 마트에 들렀다가 잔뜩 불어난 짐을 혼자 들고  때도 전혀 짜증이 올라오지 않았다. 이렇게   상황이 지나갈 것임을 인지하고 흘려보냈더라면(무집착)  스트레스받았을까? 


결국 내가 바란 것은 자유와 평안이다. 스스로를 역할 속에 가두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있는 지혜를 얻길 바란다. 더불어 적절한 정도와 벗어날 때를 아는 지혜와 실천할 용기도. 마지막으로 남편이  나만큼만 건강하고 아프지 않길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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