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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요가생활 Feb 18. 2021

너의 일상

궁금하고 또 궁금한 너의 하루

초록아, 네가 심장 수술을 한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났어. 넌 대견하게도 너무나 잘 버텨주고 있었지만 우린 첫 면회 이후로 네 소식을 들을 길이 없어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나 궁금했단다.


네 아빠는 혹시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면회 3일 후 출근 전에 병원에 들렀어. 중환자실에 필요한 물품을 전해준다는 명목을 내세워 그 앞까지 갔지. 하지만 정작 궁금하던 건 물어보지도 못하고 물건만 전해주고 나왔다지 뭐야. 그러곤 또 네 생각에 정신이 팔려 출근길에 사고가 날 뻔했대. 네 아빤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하면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한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져 버리는 경향이 있거든. 일이든 생각이든 생활이든 멀티를 잘하는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졌단다. 각자 장단이 있으니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운전 중엔 너무 다른 생각에 잠기지 않아줬으면 해. 길을 잘못 드는 정도는 괜찮지만(자주 그런단다) 사고가 나면 큰일이지 않겠니? 스스로에게도 너와 나,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네 아빠가 병원에 찾아가 물어보려고 했던 건 담당 의료진이 너의 수면 마취 상태를 깨웠냐 하는 거였어. 지난 면회 때 넌 마취로 계속 잠들어 있었고 담당 교수님께선 널 하루 이틀 사이에 깨울 거라고 하셨거든. 의식은 깨어났는지 그 후 신체 반응은 어떤지 넌 어쩌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다음 면회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었단다. 그러고 그 이틀 후에 수술을 담당하셨던 교수님께 전화가 왔어. 그제야 널 마취에서 깨웠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지. 그게 우리가 예상했던 날보단 사나흘 늦었지만.


잠에서 깬 너의 일상이 궁금해. 몇 날 며칠을 잠들어있다 깨었을 때 네가 처음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런저런 관들로 연결되어 고개도 제대로 못 돌리는 넌 어떤 풍경을 보고 있을까? 누군가 너에게 눈을 맞춰주긴 할까? 신생아 때는 시력이 나빠 제대로 보긴 어렵고 대신 청각을 많이 사용한다고 하던데, 넌 어떤 소리를 듣고 있을까? 중환자실로 면회를 갔을 때 들리던 기계장치들의 삑-삑-거리는 소리, 기도에 삽입된 관을 통해 들리는 쌕쌕거리는 네 숨소리, 바쁘게 움직이는 중환자실 의료진들의 발소리 그리고 그 외엔 어떤 소리가 날까? 누군가 너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긴 할까? 아직 병원에 이름을 등록하지 않아 네 이름도 알 길 없는 태명도 불러줄 수 없었을 텐데. 유축해 전달해준 모유를 먹기 시작했는지, 아직이라면 수액만 맞고도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불편하고 울고 싶어 질 때는 어떻게 하는지, 안아줄 수도 없는데 누군가 어떤 방식으로든 달래주고 있는지. 뱃속에서 기억하던 엄마나 아빠를 찾진 않는지, 아니면 너무 잠깐 만난 우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게 존재하는지도 인식하지 못하는지 등등. 그 큰 침대에 홀로 누워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경험들을 축적하고 있을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면회라도 자주 갈 수 있었더라면 너의 일상에서 작은 한 부분이라도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시기가 또 원망스러워져.


초록아 사랑해. 곧 매일같이 서로의 일상에 녹아들 날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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