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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요가생활 Oct 14. 2019

일상 요가 생활 - 소비

끊임없이 좋은 것을 누리고픈 욕망

맛있는 차와 케이크 그리고 멋진 경치를 구매했다.
'나'다운 삶을 위해 소비를 줄이고자 결심했지만,
끊임없이 좋은 것을 누리고픈 딜레마.


 남편과 나는 매달 생활비를 정산을 한다. 가계부를 상세하게 쓰진 않더라도 대략 어디에 얼마만큼의 돈을 쓰고 있는지 체크해보기 위해서다. 둘 다 소비력이 높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결혼 초기엔 정산을 하고 보면 소비가 예산을 초과한 경우가 많았다. 더 의식적으로 소비를 하고 조금씩 더 아껴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머지않은 어느 날 탁 트인 공간에 세워져 커다란 창으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고 커피와 케이크가 맛있는 카페에 들렀다. 그 카페는 동네 안에 있는 카페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었고 집에서 먹는 것보단 당연하게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나'다운 '우리'다운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소비를 줄이기로 결심했지만 금세 좋은 것을 누리고 싶은 욕망을 누르지 못했다.


 대게 많은 사람들은 얼마를 벌어들이든 간에 좀 더 벌었으면 한다. 적게 벌면 적게 버는 대로, 많이 벌면 많이 버는 대로 쓰다 보면 없는 게 돈이고, 항상 모자란 듯 느껴지는 것이 돈이다. 내가 처음 제대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사회 초년생치고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이 기준은 항상 상대적인 것이므로 어떤 부분에선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었으나 우리나라 사회 초년생들의 소득 평균을 기준으로는 괜찮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돈으로 적금도 넣고 집세도 내고 생활비도 쓰고 명절이나 집안 행사마다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취미생활을 하거나 종종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적지도 않은 돈을 벌고, 비싼 것을 사모으는 취미도 없는데 항상 돈이 부족할까?' 어디서 돈이 세는 건 아닌지 답답한 마음에 카드 사용 내역서를 꼼꼼하게 체크해보고 가계부도 써 보았지만 다 내가 살뜰하게 쓴 돈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결론은 '회사에서 월급을 안 올려주는 게 문제다'로 정리하곤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물론 업계의 사정으로 퇴사할 때까지 몇 년간 연봉이 오르기는커녕 깎이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여겨지던 상황도 문제이긴 했지만, 월급이 올랐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까?


 자본주의 시대, 소비의 시대에서는 어디에 얼마만큼 돈을 쓰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성향 또는 삶을 대하는 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나타낸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식비나 외식비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서 구입비에, 특별한 취미가 있는 사람들은 그 취미를 유지하는데 많은 돈을 소비한다. 나의 경우엔 자취를 시작하고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는 다양한 식재료를 구매하는데 돈을 제법 투자했다. 스윙 댄스 동호회에 빠져들었을 때는 바 입장료와 뒤풀이 비용으로 용돈을 다 날려먹곤 했다. 요즘에 큰돈은 거의 요가 관련 수업을 듣는데 들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데 돈을 쓰면서 죄책감을 덜 가지게 되는 것이 요가 강사가 되고 좋은 점 중 하나이다. ('안'이 아니라 '덜'인 이유는 투자에 비해 수입이 여전히 낮기 때문)

 내가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곳에 돈을 쓰면 만족도가 높다. 돈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항상 주의해야 한다.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내 수입의 일정 비율을 넘어서서 돈을 계속 까먹는 일이 되면 나의 재정적 환경은 물론 나의 정신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비는 유동적인데 비해 수입은 제한되어있으므로 소비에 수입을 맞추려고 들면 일상이 불만족스러워지고 스트레스가 높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산 것과 앞으로 살 것 때문에 끝도 없이 당장 돈을 벌어들이는 일에만 자신을 소모시키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모된 자신을 위로 해기 위해 충동적인 소비를 이어가고 늘어난 소비는 우리를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충동적인 행위를 예방해 줄 수 있다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막무가내 퇴사 방지 등), 내 인생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내 소비를 위해서 소비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결국 자유롭기 위해서는 소비를 조절해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자라오면서 많은 '좋은 것'들을 실제로 경험했고, '좋을 것 같은 것'들을 다양한 통로를 통해 수시로 접하게 된다.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것(또는 좋을 것)들을 너무 잘 알아서 자꾸만 소비의 욕망이 차오른다.

 요가에선 좋은 것을 좋다고 여기지 않고, 싫은 것을 싫다고 여기지 않아야, 그로써 헛된 집착에서 벗어나야 마음에 평화가 온다고 가르친다. 이 말이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으니 되는대로 살라는 말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이 또는 싫다고 여기는 것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인가?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순간의 욕망 - 저것이 가지고(하고) 싶다 - 에 휩쓸리지 않고 과연 내 일상에 반드시 필요한 소비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는 스스로와의 타협을 어렵지 않게 하는 사람으로서 소비를 타당하게 할 많은 변명을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기준이나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닐 것이므로 나를 잘 분석해서 기준과 우선순위를 세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한다. 이 소비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이 소비가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할 것인가 오히려 빈곤하게 만들 것인가? 이 소비는 나를 가둘 것인가 자유롭게 할 것인가?

 그리고 헛된 집착에서 벗어난다. (사실 이 부분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가치의 우선순위를 세웠다고 해서 항상 만족스러울까? 사실 그 기준은 바뀔 수 있는 것이어서 주변의 상황이나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기도 하지만, 어떤 날엔 순식간에 순위를 뒤바꾸기도 한다. 그러므로 소비를 하든 하지 않든 그 선택의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대상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가지게 된 것은 있는 그대로 누리고 잃은 것에는 미련을 버린다. 어떤 교훈이나 남길 것이 있다면(잔고 변화라던가) 다음 소비를 위한 우선순의 기준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의 욕망은, 소비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로써 소비하든, 하지 않든 자연스럽게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로 돌아올 수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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