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요가 생활 - 여유
내 꿈은 한량
아마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내 꿈은 한량으로 사는 것이었다. 그저 느낌적인 느낌으로 써먹던 이 ‘한량’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이렇게 보니 아무래도 그렇게 잘 알고 써먹었던 단어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당시 가지고 있던 한량의 이미지란 세상살이에 절절매거나 안절부절못하지 않고, 조급해하거나 서두르며 뛰어다니는 일이 없는 여유만만한 사람이자, 풍류를 아는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돈 많은 백수랑 비슷한 느낌이기도 한데, 내가 집중했던 포인트는 좀 달랐다. 물론 돈은 많으면 좋겠지만 풍족하진 않더라도 그 삶의 태도가 쪼그라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집안 사정을 보아도 그렇고 능력 있는 여성이 되는 것이 당연한 과제였던지라 백수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바쁜 중에서도 삶의 여유를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몸은 바빠도 마음만은 여유로운 사람이 되자는 생각도 자주 했던 것 같다.
자라며 필요에 의해 이런저런 직업적인 장래희망을 가졌고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여 여러 번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한량의 태도로 살아가고 자하는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면 대학생 때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꿈꾸었던 나의 미래는 이렇다. ‘업계(큰 분류가 아니라 쪼개지고 쪼개진 분류)에서 나름대로(이 단어가 중요) 인정받아 주변 동료들이 꾸준히 찾는 엔지니어’이자 ‘큰 자리를 맡기보단 퇴직할 때까지 실무를 보는 것을 택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소신 있게 회사생활을 해나가는 회사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하자면 맘 편하게 회사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와 현실을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참 어려운 꿈을 꾸었구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꿈이 무어냐?’하는 질문에 보통 직업 등 명사형으로 이야기했지만 최근에는 ‘꿈을 동사나 형용사형으로 정리해보라’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직업이 한 가지로 한정되는 시대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삶을 어떤 방향으로 또는 어떤 태도로 꾸려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왕년의(위에 적은 것 외에도 수두룩한) 내 장래희망들과 최근의 관심을 바탕으로 내 꿈의 키워드를 뽑아보았다. 형용사는 ‘여유로운’, ‘자유로운’, ‘조화로운’, ‘다정한’ 동사는 ‘시도하다’, ‘배우다’, ‘즐기다’, ‘쓰다’, ‘나누다’, ‘배려하다’, ‘요가하다’. 종합해서 다시 명사로 돌아오면 ‘다정하게 요가하는 한량’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언젠가는 이루리라 꿈꾸는 미래의 것이기보단 현재의 일상 속에서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꿈, 그리고 조금 더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게 만드는 꿈.
요가를 할 때는 어떤 자세 안에서라도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숨이 몸속으로 들고 나는 것을 바라본다. 휴식 자세를 제외한 아사나에서는 보통 어떤 부분은 늘리고 어떤 부분은 조이는데, 늘린(또는 이완한) 부분은 몸속 공간이 조금 더 넓어진다. 척추를 신장하는 자세에서는 척추 사이사이 공간이 넓어진다. 척추를 앞으로 굴곡하면 등 부위로, 척추를 뒤로 신전하면 복부나 가슴 부위로, 옆으로 기울이면 반대쪽 옆구리와 흉강으로, 몸을 비틀었을 때는 열린 어깨와 가슴 그리고 반대편 허리 부근으로. 몸통뿐만 아니라 어깨와 팔-손-손끝으로 이어지는 상지나 골반과 다리-발-발 끝으로 이어지는 하지에 있는 공간을 열어줄 수 있는 자세들도 있다. 몸 깊숙한 곳에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안으로 호흡을 채운다. 실제로 폐를 채우는 공기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호흡의 기운을 그 주변으로 전달시킬 수 있다. 그로써 조금 더 공간이 확장되고 긴장으로 조였던 부분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이런 호흡으로 조금 더 깊게 아사나로 들어갈 수 있다. 아사나에서 빠져나오면 어느새 몸이 훨씬 가벼워져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 일상에서도 이런 식으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나에겐 요가 자체가 그 공간이 되어준다. 아사나를 하면서 또는 명상을 하면서 일상에 빈 공간을 만들고 호흡을 채워준다. 머릿속에 얽힌 생각들을 잠시 비워내고 나의 움직임과 호흡에 의식을 집중한다. 몸 깊숙한 곳에 공간을 만들고 호흡을 채운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도 공간을 만들고 호흡을 채운다. 그럼으로써 내 일상에도 공간을 만들어 호흡을 채울 수 있다. 이렇게 내 삶에 여유를 들인다.
요가가 일상을 꽉 채우기 위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이 시간 또한 빈 공간으로 만들어내기는 힘들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은 하나를 더하기보단 비워내는 감각으로 여겨보길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