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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Dec 11. 2022

후쿠오카, 여행 감각 되찾기

3년만의 해외 여행, 만 5년만에 다시 찾은 도시


3년 만이다. 2019년의 대만을 마지막으로, 국제선 문턱을 넘은 것이.

그간 소리 소문 없이 만료된 여권도 새롭게 갱신했다.

빗장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 실감나지 않지만, 더이상 지체할 이유는 없다.


꽤 많은 도시 여행을 다녔지만 브런치의 첫 여행기를 장식한 도시가 다름 아닌 후쿠오카다.

("후쿠오카, 커피 마실 시간이다",  https://brunch.co.kr/@veryberryyy/6 )

그리고 다시 시작된 기록도 이 곳에서 부터다. 이 정도면 꽤 낭만적인 인연인 것으로 해두고, 지난 시간 앓았던 도시여행의 루틴을 차근차근 부활시키고, 감각을 되찾기로 했다.



시작은, 찐한 로컬 커피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고 철도를 타고달려서 하카타역에 내렸다. 그리고 곧장 구석구석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참을 수 없는 로컬 커피점을 마주하게 된다. 이름하야 FUK COFFEE. 도착 첫 날 오후의 피로를 각성해줄 커피를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이제 막 도착한 여행자들의 설렘과, 로컬들의 평화로운 나른함이 적절히 어우러진 곳이다.


미니 사이즈의 캐리어와 헤드폰을 내려놓고, 기본형의 커피를 주문해다 놓고 좌석에 널부러진다. 그리고 기분 좋은 신분의 변화(?)를 조금씩 느낀다. 스트레인저(stranger)로 전락하는 기분이 이렇게나 좋았었지, 그랬지.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 로컬 커피점에서의 워밍업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이 귀여운 메뉴 찾기


늦은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중심가에서 골목 쪽으로 옮겨가다 보니, 바와 음식점을 겸하는 한 가게에 들어서게 됐다. 점심 손님들이 쭉 빠져나간 오후라 여유롭게 낮술을 즐기는 인원들 일부만 자리하고 있었다.


친절한 인삿말과 함께 건내어 준 메뉴의 구성은 꽤나 귀엽다. 형형색색의 도형으로 구성된 귀여운 표지판 같은 비주얼이다. 이 구성의 실물을 궁금해하지 아니할 수 있을지. 망설임은 잠깐, 바로 이 표지판을 가리키고 기다렸다.


속닥이는 낮술 일행들과 압도적인 메뉴판



메뉴판을 그대로 재현한 테마리 스시를 마주하니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단단하고 납작한 트레이에 오와 열을 맞추어 15개의 재료가 각자 주인공이 된 스시들이 놓여있었다. 아래와 옆으로 각 잡힌 젓가락과 가루들, 와사비와 생강까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완전체다. 귀여운 것들을 하나씩 집어먹으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지만, 공백기를 지나서도 여전히 귀여운 것들 일색이라 점점 더 신이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귀여울 노릇인가. 일렬로 흩뿌려진 가루들의 자태도 놓치면 안된다.



골목골목을 구경하며 걷는 것 만으로도 컨디션이 쭉쭉 오른다.




최애는 다시 한 번


후쿠오카행을 준비하면서, 그간 꽤 많은 것들이 변해있음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 때 그 곳'으로 기억하는 스팟들이 사라진 경우도 있었던 것. 특히 골목마다 각자의 개성으로 무장했던 작은 가게들은, 끊긴 발길이 다시금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고 운명을 다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다행히도, 나의 후쿠오카 최애 커피점은 무사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주었다.


본격 '커피이기를 거부하는' 새로운 커피를 지향하는 이 곳. 나의 모닝 커피 머그도 이 곳에서 구매한 굿즈다. 조금씩 생채기가 나고 있던 차에 납작한 글라스를 새로 구입했다. 무지하게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조그마한 목소리로 '감사'와 '최고'를 털어놓기에 그쳤다. 다음 후쿠오카 여정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커피를 마시러 이 곳에 올 것이다.



종류가 늘어난 NO COFFEE 의 굿즈들, 호위대처럼 매장을 지키고 서있다.


통창으로 넘겨다 보는 야쿠인역 인근의 골목, 그라데이션이 만족스러운 꼬소한 라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기


크게 변하지 않은 여행 루틴을 가동하며 감각을 회복했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는 한 잔의 모양새는 달라졌다. 비행기가 멈추었던 지난 시간동안 취향이 변한 탓이다. 머리가 띵하게 차갑고 부글부글한 맥주와 하이볼 보다는, 어둑어둑하고 고즈넉한 위스키를 마시는 편이 조금 더 좋아졌다. 일본 도시마다 유명한 위스키바는 있을 터, 더듬이를 곤두세우니 보물같은 공간을 만나게 되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리미티드 보틀 천국이었던 곳, 가성비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다.



아직 능숙하게 위스키의 취향을 서술하고, 일관된 리스트를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본래 독특한 향을 좋아하는 탓에 피트한 류를 즐겨찾는다. 마스터와 짧게 인터뷰(?)를 마치니, 끝없이 늘어선 보틀 중에서 쏙쏙 골라서 내어주신다. 한 모금씩 홀짝이면서 꽤 여러번의 탄성을 낮게 뱉었다. 퀴퀴하고 씁쓸하지만 후- 하고 불어보니 스모키한 잔향이 그윽하게 남는다.


그간 일본의 도시 여행에서는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하이볼바나 이자카야에서 시끌벅적하게 마무리했던 기억이 많았는데, 이 곳에서는 친절한 마스터로부터 일본의 위스키 트렌드나 지식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약 30년 경력의 바텐더가 일본 위스키를 매우 비추하는 것은 안비밀이었다.) 고요한 바에서 하루 여정을 정리하면서 아직 2박이나 남은 내가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쉽게 만나보기 힘들것이라고 자신하는 마스터와, 멈추지 못하는 위린이. 환상이자 환장의 조합이다.




숙소로 향해 걷는 길엔 반가운 나카스 야타이를 거쳤다. 그리웠던 풍경을 이제서야 눈 앞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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